1942년부터 1945년, 아시아 대륙에서 최대 1000만 명이 아사했다
1942년부터 1945년 사이,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여 전 세계가 전쟁터로 변한 가운데 아시아 대륙에서는 가뭄과 대기근으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중국의 허난성 대기근(1942~1943)
영국령 인도의 벵골 대기근(1943~1944)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자바 대기근(1944~1945)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베트남 통킹 북부 대기근(1944~1945)
이 네 차례의 거대한 기아 재난으로 인해 희생된 인구는 최소 500만 명에서 최대 1,000만 명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주요 전투에서 발생한 전사자 수를 상회하거나 필적하는 막대한 규모입니다.
이러한 대규모 아사(餓死) 사태를 가뭄이나 홍수, 태풍과 같은 순수한 자연발생적 기상 이변이나 식량 생산량 부족 등과 같은 단순하고 단선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1942~1943년 중국 허난성 대기근
1942년 여름부터 1943년 봄까지 중국 허난성을 휩쓴 대기근은 기상 악화와 중일전쟁이라는 지정학적 위기가 융합된 사태였습니다. 1938년 당시, 중화민국 국민정부를 이끌던 장제스 총통은 빠르게 내륙으로 진격해 들어오는 일본군을 저지해야만 했습니다. 하여 극단적인 방어 전략의 일환으로 화위안커우(花園口)의 황허 제방을 고의로 폭파하는 전술을 감행했습니다.
제방 붕괴로 인해 쏟아져 내린 황허의 거센 물줄기는 허난성과 안후이성 일대의 44개 현을 집어삼켰고, 이 지역의 비옥한 농지 면적은 단숨에 3분의 1로 급감하며 농업 생산 기반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또한, 1942년 극심한 가뭄과 대규모 메뚜기 떼의 발생으로 허난성의 농작물 수확량은 평년의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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