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 2점대지만 인턴 시켜주시면 안돼요?
나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다니고 있다. 자세한 학과명은 밝히지 않겠지만...
위 성적 요약 표에서 보이듯이, 내 학점은 처참한 수준이다. 심지어 나는 10개 학기를 다니고 있다!(건축학과도 아니고 수의학과도 아니고 의예과도 아니다.)
학점이 낮은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다. 일단 일반고 출신으로써 1학년부터 대학 공부가 어려웠다. 둘째로 이 어려움을 도울 선후배 관계가 코로나(나는 2020학번이다)와 군대(2021 to 2022)로 인해 없다시피했다. 물론 내가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껴 노력을 안 한것도 있다. 셋째로 전역하자마자 나는 우울장애와 불안장애에 시달렸다. 지금까지도 시달리고 있다. 넷째로 전공공부에 흥미를 잘 느끼지 못했다. 나는 사실 화학공학과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물론 화학공학과를 갔어도 전공공부는 못 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항상 연구자가 되고싶다는 꿈만큼은 놓지 않았다. 공부 자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즐거움을 알고 있었고 내 적성이 무언가를 탐구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도, 주변에서도 알아주었기 때문이다.
이 학점으로 많이들 선호하는 SK 하이닉스나 삼성, LG디스플레이와 같은 대기업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학점 외의 스펙도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견기업에도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대학원을 가자니 전공지식이 거의 없다시피한데! 내가 적응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나는 대학교 4학년, 아니 5학년 동안 전공공부보다는 철학과 뇌과학, 심리학에 빠져있었다. 이는 내 다른 글들에서도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삶의 이유를 탐구했으며, 내가 왜 우울하고 불안한지 뇌과학적으로 고찰하고, 심리학을 공부해가며 스스로를 이해하려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뇌과학 쪽 대학원을 알아볼까.. 했으나 한국에서 그다지 발전되지 않은 분야라는 생각도 들고, 해외로 나가기는 싫었다. 또한 내 성적에 다른 학과를 지원하자니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던 와중, 내 눈에 들어온 단어가 뉴로모픽 반도체(neuromorphic semiconductor)이었다. 뇌 뉴런 신경망의 작동방식을 모사한 반도체라니! 얼마나 근사한가? 내 관심사와도 겹친다고 생각했고, 관련된 교수님들도 자연히 찾아보게 되었다. 교내에 관련 주제를 다루는 교수님들은 같은 학과에 세 분 정도 계셨고, 한 교수님께 올해 2월, 아래와 같은 메일을 보내게 된다..
지금 보면 참 양식도 안 맞고 당돌해 보인다. ㅋㅋㅋㅋ 뭐, 어찌되었건 교수님께서 성적표와 경력을 제출하라고 하시며 3월 초에 면담을 잡아주셨다. 그동안 나는 논문 두 편을 골라서 열심히 읽고 노트정리를 해서 가져갔다.
면담은 잘 진행되었다. 교수님은 입학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셨고 내 얘기를 잘 들어주셨다. 성적이 낮은 것에 대해 질문하셨지만 건강때문이라고 대답하자 적당히 수긍하시는 것 같았다. 또 논문 읽어간 것도 좋게 봐주신 것 같아 열심히 공부해간 티를 냈다. 뉴로모픽 디바이스들과 딥러닝의 작동방식에 대해 공부할 교재와 논문들을 보내주셨다. 그 논문들을 나는 약 2개월간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5월이 되었다. 나는 곧 여름방학이니까 교수님께 인턴 전 면담 요청 메일을 보냈는데, 교수님이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고 하시고는 감감무소식이었다... 6월까지 소식이 없자 나는 오피스에 잘 계시지도 않으셨던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사무실 앞에서 기다렸다. 운이 좋게도 점심식사를 하고 온 교수님을 1시간 정도 기다리자 만날 수 있었다. 교수님은 나를 보자 기억이 나시는듯 바로 면담을 하자고 하셨다.
면담에서 교수님은 살짝 고민하시는 것 같았다. 이미 학부의 공식 인턴 프로그램을 통해 5명이 뽑혀있었고(대형 랩이라 인원이 많았다), 대상자가 아니었던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처우를 고민하시는 것이었다. 특히 나는 성적이 낮은 편이니 더 고민이 되시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성적얘기를 꺼내셨다. 나는 그 때 별로 좋은 대답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건강이야기와 시험에 좀 약하다는 점을 말씀드렸다. 교수님께서는 아주 잠깐 고민하시더니 '음, 그래요 뭐 해 봅시다' 라며 메일을 통해 연락을 주시겠다고 하였다. 그와 함께 교수님은 인턴기간동안 나에 대한 평가를 할 것임을 암시하시며, 그 결과를 보고 대학원 입학여부를 결정하시겠다고 하셨다.
교수님은 내게서 무엇을 보았기에 인턴을 시켜주셨을까? 사실 메일 수신인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나 외에도 뽑을 수 있는 인턴은 4명이 더 있었다는 것이다. 왜 내가 남은 한 자리에 들어간 걸까? 이에 대해 교수님께 언젠가 기회가 되면 질문해 보고 싶다. 지금 내가 내린 결론은 직접 찾아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수님도 학부생 시절, 대학원생 시절이 있었던 만큼 직접 찾아와 말하는 것의 부담을 알고 계시고, 이를 실행하는 내 모습을 보고 뽑아주신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나는 7월부터 8월 말까지 인턴으로 랩에 출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