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은 정해진 시간에 출발한다
전철은 늘 정해진 시간에 출발한다. 은행은 아침이면 어김없이 문을 연다. 계절마다 피는 꽃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제때 피어난다. 세상에는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치는 수많은 변함없는 존엄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내가 살아 있음을 선명하게 느끼는 순간은 그 변하지 않는 존재들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일 것이다.
변함없는 것 그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산을 바라보며, 내가 얼마나 자주 방향을 잃는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 한결같이 흐르는 강물을 보며, 또 난 얼마나 쉽게 마음이 바뀌는 사람들인지 알게 된다. 인간은 흔들리는 존재다. 어제 옳다고 믿었던 것이 오늘은 틀려 보이고, 오늘의 확신은 내일이면 또 의심으로 변한다. 감정에 흔들리고 때로는 두려움에 흔들린다. 세상이 혼란스러운 이유도 어쩌면 인간이 흔들리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또 바람이 전혀 없는 곳에서는 나무도 자라지 않는다. 물결 없는 바다는 생명력을 잃는다. 인간이기에 흔들리고 고민하고 방황하고 또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누구나 삶이 꽉 막힐 때 산을 찾는다. 도심을 벗어나 높은 산등성이에 오르면 이유 없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삶의 답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그곳에서 위로를 받는다. 수천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산의 침묵 속에서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산이기 때문이다. 겨울의 눈보라를 견뎌낸 나무는 봄이 오면 다시 푸른 잎을 틔운다. 구름이 하늘을 가려도 태양은 그 자리에 있다. 자연은 말없이 가르쳐 준다. 인간이 자연을 사랑하는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내가 잃어버린 기본을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산과 바다 나무와 하늘은 늘 같은 모습으로 나를 맞이한다. 있는 그대로 포근하게 품어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칠 때 자연을 찾아가는 지도. 자연은 그저 존재함으로써 위로가 된다. 어쩌면 절대자도 그러할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자신과 약속을 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욕심을 버리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부처님 앞에 두 손을 모은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변함없이 기다려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그 믿음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신기한 일이다. 젊은 날에는 어머니가 그저 사랑을 주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존재가 얼마나 특별한지 알게 된다.
어느새 자식은 멀리 떠난다. 자신만의 길을 찾겠다고 집을 나서고,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상처 입고, 때로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어머니의 한결같은 사랑.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단 사람. 그래서 어머니는 인간이 가늠할 수 없는 무한대의 사랑, 그 가장 넓은 존엄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세상을 살다 보면 길을 잃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한다. 확신했던 것이 무너지고, 믿었던 것이 사라진 때가 있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언제나 그대로인 존재들이 그대로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이면 떠오르는 태양. 계절마다 싹을 틔우는 나무. 묵묵히 서 있는 산. 말없이 품어 주는 자연.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온기.. 그리고 끝까지 내편이 되어 주시는 단 한 사람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다.
인간은 흔들린다. 앞으로도 더 흔들릴 것이다. 그래서 삶이 살아볼 가치가 있는 이유는 흔들릴 때마다 돌아갈 자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존재들. 말없이 기다려 주는 존재들. 그 귀한 존재가 있기에 또 완전히 길을 잃지 않는다.
-----~~~~~==--ㄱ
삶의 귀한 것은 어쩌면 또 돌아갈 수 있도록 그 자리를 지켜 주는 존엄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하고 인간은 흔들리지만, 끝내 살게 하는 것은 변함없이 기다려 주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 존엄은 아무 말 없이 나의 삶의 뒤편에서 조용히 온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