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안에 자식
시선을 차창 밖으로 돌렸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창밖은 붉은 노을로 물들고 있었다. 꾹꾹 눌러 참았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옆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남편이 내 등에 손을 올리고 다독이며 말했다. “울지 마소. 내가 있잖소.” 그 말에 목이 메었다. 아들이 군에 입대하던 날이었다. 연천 훈련소에 아들을 떼어놓고 둘이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참 깐깐하고 바카라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뭐든 미리 해 놓아야 마음이 놓였고, 완벽해야 직성이 풀렸다. 반면 남편은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그러니 우리 부부가 서로 맞을 리 없었다. 생활용품 하나를 고르는 것부터, 외식 메뉴 정하는 것까지 갈등의 시작이었다. 나는 찜, 남편은 탕. 사소한 것에도 자주 부딪혔다.
술도 문제였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남편을 기다리느라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어느 날은 새벽까지 남편을 기다리다가 술집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남편분 데려가세요.” 그 순간 너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했다. “우리 이혼해!” 목 놓아 울다가 어린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 이혼하면 누구랑 살 거야?” 아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전 한 사람은 필요 없어요. 두 분 다 필요해요.” 그 한마디 때문인지 이혼 이야기는 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 뒤로도 남편의 술버릇 때문에 싸우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리며 속상해했다. 마음속으로 수없이 이혼을 생각했다. ‘아들만 독립하면 이혼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살았다. 그런데 그 아들이 군대에 갔다. 훈련소에 아들을 두고 돌아오는 길, 남편의 그 한마디 말 “울지 마소. 내가 있잖소.” 덕분에 얼어붙었던 마음을 봄눈 녹듯 풀어놓았다. 그 길을 혼자 돌아왔다면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들의 빈자리를 남편이 채워주니 든든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이 사람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들은 자기 짝을 만나 결혼했다. 외동아들이 독립하고 나니 집이 갑자기 너무 넓어졌다. 식탁도, 거실도 넓어 보이고 마음 한구석은 텅 빈 듯 허전했다. 그리고 넓어진 집에는 나와 남편 둘만 남았다. 그제야 느꼈다. 그동안 아들을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아온, 그 모든 시간을 함께 지나온 사람은 남편이었다는 것을. 물론 우리 부부가 갑자기 잉꼬부부가 된 것은 아니다. 그저 서로 다름을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안 맞는 사람이 남편이라고 생각했다. 로또보다 더 안 맞는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사람을 속상하게 하는 재주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화가 나 물불을 가리지 못할 때 묵묵히 참고 기다려 주는 재주도 있었다. “내 생전에는 이혼은 없소.” 당신 화가 풀릴 때까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라며 기다려 주던 남편. 돌이켜 보니 그것도 사랑이었나 보다. 남편도 나보다 조금 더 융통성 있는 사람을 만났다면, 편했을 것이다. 집에서 술 한잔 같이 기울이며 술친구가 되어주는 아내였다면 밖으로 술친구를 찾아 나서는 일도 조금은 적었을지 모른다.
이제 남편은 그토록 좋아하던 술을 줄이고 운동을 한다. 나 역시 운동하고 취미 활동을 하느라 늦게 들어오는 날이 종종 있다. 집에 돌아오면 남편이 나를 기다리다 곤히 잠든 모습이 보인다. 젊은 시절 내가 하던 기다림을 이제는 남편이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 짠하면서도 고맙다. ‘이 사람도 참 오래 나와 살아왔구나.’ 세월이 쌓이다 보니 서로의 모난 부분도 조금씩 둥글어졌다. 그리고 고치려고 애쓰기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일도 많아졌다.
어느 날 어린이집 원장님들 모임에서 “본인의 보물 1순위는 누구냐”는 질문이 나왔다. 젊은 원장님들은 망설임 없이 자녀를 꼽았다. 나도 몇 년 전만 해도 아들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잠시 망설이다 남편을 꼽았다. 아들은 이제 가정을 꾸려 내 품에서 떠났다. 참 신기했다. 한때는 그렇게 미웠던 사람이 이제는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떠올랐다.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자식과 함께한 시간도 소중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살면서 서로의 좋은 모습뿐 아니라 구질구질한 모습, 아픈 모습, 화난 모습, 늙어가는 모습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 남편이었다.
아들을 키우는 동안 우리는 부모라는 역할에 충실했고,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결혼까지 시킨 뒤에야 다시 남편과 아내로 돌아온 것 같다. 이제는 싸울 열정도 기력도 예전 같지 않다. 예전에는 밤새 싸우고도 모자라 다음 날까지 싸웠지만, 요즘은 싸우다가도 허리가 아프고 머리도, 목도 아프다. “당신 말이 맞아.” “아니야, 당신 말이 맞아.” 그러다 둘 다 잠들어 버린다.
세월이 참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자식은 자라 제 삶을 찾아 떠나고, 부부에게는 둘만의 시간이 다시 남는다. 앞으로 서로의 단점을 고치려 하기보다 조금 더 이해하고 아껴주며 살고 싶다. 자식들 앞에서도 서로를 따뜻하게 지켜주며 잔잔한 노년을 보내고 싶다.
창밖으로 노을이 천천히 저문다. 한때 나는 저 노을을 하루의 끝으로만 생각했다. 이제는 그 빛을 바라보면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된다. 젊은 날에는 미처 몰랐던 것을, 인생 육십 년을 살아보니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다. 사랑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채로 맞춰가며 오래 곁을 지켜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 노을이 내게 알려준 것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긴 세월 내 곁을 지켜준 사람이라는 것과.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함이었다. 참 오래 걸렸다. 이 사람의 소중함을 알아보기까지. 그래서 오늘은 저 노을이 참 고맙다. 돌아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로또 당첨은 바로 이 사람이었다.
남편이 묻는다. “오늘 저녁은 뭐 먹을 거요?” 나는 대답한다. “찜.” 남편은 “나는 탕.” 역시 우리는 안 맞는다. 나는 말했다. “그럼 된장찌개나 해 먹읍시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