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실 문을 열고 나와 다른 분야와 손잡아라

동종 업계의 우물에서 나와, 나만의 판을 함께 짤 동업자를 만나기

1. 같은 전공끼리만 모여 있을 때 생기는 한계


음대 연습실 복도를 지나다 보면 늘 익숙한 풍경을 목격한다. 피아노 전공자들은 피아노 전공자들끼리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주제는 늘 비슷하다. "너 이번 실기 곡 어떤 거 쳤어?", "손가락이 잘 안 돌아가서 죽겠다" 같은 소소한 푸념과 정보 공유다.


물론 같은 고충을 겪는 동기들과의 대화는 따뜻한 위로와 깊은 공감을 준다. 하지만 냉정하게 시장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같은 전공자끼리의 친목이 나에게 실질적인 일거리나 수익을 만들어주기는 어렵다.


시장에 나가는 순간, 같은 전공 동기는 나에게 일거리를 줄 수 있는 수요자라기보다, 같은 시장 파이를 나누어야 하는 구조적 한계 속에 놓인 이들이다. 동종 업계의 좁은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비교하며 자의식을 소모하거나 헛된 위안을 나누는 시간을 조금 줄여야, 비로소 진짜 세상의 새로운 기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2. 다른 파트 전공자를 만날 때 진짜 일거리가 생긴다


내 전공인 피아노라는 악기의 가장 큰 강점이자 약점은 혼자서도 완벽한 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피아노 전공자들은 독주(Solo)에 익숙해지기 쉽고, 자연스럽게 타 악기나 타 파트 전공자들과 교류할 기회를 놓치곤 한다. 하지만 학교라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야생의 필드로 나가는 순간, 피아노가 가장 자주 정직한 수입을 만들어내는 자리는 독주회가 아닌 누군가를 뒷받침하고 협연하는 자리다.


실제로 나 역시 지역 음악협회 이사이자 연주자로 활동하며 필드에서 여러 일을 맡아보았을 때, 나에게 진짜 일거리를 건네주고 연주 무대를 만들어준 이들은 단 한 명도 피아노 전공자가 아니었다. 모두 성악, 작곡,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다른 파트 전공자들이었다.


성악가 및 합창단 반주, 작곡가의 신작 발표회 연주, 현악 연주자의 입시 및 독주회 반주, 실내악 앙상블 등은 피아노 전공자에게 졸업 후 필드에서 가장 직관적이고 꾸준한 수입 구조를 만들어내는 소중한 일거리들이다. 대학 시절부터 타 파트 전공자들과 합을 맞추고 깊은 신뢰 관계를 쌓아둔 피아노 전공자는, 졸업과 동시에 필드에서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는 우선순위 반주자 및 연주 파트너가 된다. 학창 시절 타 파트 전공자들과 쌓아둔 관계는 단순한 친분을 넘어, 졸업 후 현장에서 즉시 작동하는 연주 네트워킹이자 가장 강력한 일자리 공급망이 되어준다.


3. 음대 건물 밖으로 나가 경영, 디자인, 공학 전공자와 연대하라


더 넓은 판을 짜고 싶다면, 아예 음대 건물을 나와 교양 수업이나 중앙 동아리, 타과 수업에서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볼 필요가 있다. 내가 가진 연주 기술이나 음악적 지식은 원재료인 콘텐츠에 불과하다. 이 콘텐츠를 시장이 원하는 가치 있는 상품으로 포장하고, 알리고,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은 모두 음대 건물 바깥에 존재한다.


경영/마케팅 전공자: 내가 가진 연주나 레슨 기술, 스튜디오를 어떻게 시장에 브랜드로 정착시키고 수입을 창출할지 구조를 알게 해주는 든든한 파트너가 된다.

디자인 전공자: 내 연주회 포스터, 스튜디오의 비주얼, 포트폴리오의 퀄리티를 높여주고 타인과 차별화된 세련됨을 만들어준다.

공학/IT 전공자: 내가 가진 음악적 아이디어를 앱이나 플랫폼, 디지털 콘텐츠라는 새로운 시장의 언어로 변환할 수 있는 기술적 고리를 제공한다.


이들과 연대하지 않고 오직 내 악기 테크닉만 아는 상태로 시장에 나오면, 결국 남이 만들어놓은 판에서 수동적으로 일하거나 외주 비용으로 거액의 돈을 지불해야 하는 소비자로 남기 쉽다. 반대로 대학 시절부터 타 전공과 교류하며 시야를 넓혀둔 예술가는 완전히 다른 기회를 움켜쥔다. 특히 요즘 문화재단이나 정부 부처에서 청년 예술가들에게 판을 깔아주는 예술X기술(Art&Tech), 융복합 크리에이티브 같은 고액 지원사업 공모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게 된다.


공학 전공자의 기술적 프레임에 나의 예술적 콘텐츠를 얹고, 디자인, 경영 전공자의 마케팅 감각으로 사업계획서를 구성할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남들은 생각지 못한 독창적인 기획을 제시하며 지원금과 기회를 사로잡는 진짜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


4. 학교라는 안전지대에서 내 팀의 씨앗을 뿌려라


나 역시 대학 시절, 전공과 아무런 상관없는 학생들이 모여 독립영화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잠시 음악감독직을 맡아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영상 음악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기에 솔직히 커다란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작업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은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음대 연습실 밖에는 전혀 다른 전공을 하던 학생들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카메라를 들고, 자신만의 판을 만들어 도전에 나서는 생생한 현장이 있었다. 그들과 부딪히며 작업해 본 덕분에 '아, 세상에는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협업하고 판을 만들어가는구나' 하는 야생의 감각을 배울 수 있었다.


슬롯에 나와서 전문 마케터, 디자이너, 개발자를 고용하거나 기획 자문을 구하려면 많은 품과 비용이 든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는 학업과 순수한 협업, 그리고 프로젝트 동아리라는 명목으로 이 귀한 타 분야의 인재들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다.


비록 처음이라 미숙할지라도 타 전공자들과 대화하고 엉켜 붙으며 그들의 시선을 배우는 경험을 대학 시절에 반드시 해봐야 한다. 그들과 교류하며 맺은 파트너십과 감각은 훗날 내가 내 스튜디오를 열고, 나만의 브랜드나 단체를 만들어 비즈니스를 확장할 때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된다.


우물 안 교실을 벗어나자.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달래줄 동종 전공자의 위로만이 아니라, 내 예술에 날개를 달아줄 타 분야 전공자와의 건강한 연대다. 그들과 함께 나만의 판을 짜기 시작할 때, 진짜 야생에서의 단단한 자립이 시작된다.



Henri Matisse, Dance II (1910), Public Domain.


정리하며: 스스로에게 던지는 4가지 질문

나는 지금 나에게 실질적인 일거리를 서로 나눠주기 힘든 '동종 전공자'들 안에만 갇혀있지 않은가?

필드에서 바로 수입 구조를 만들어줄 다른 파트 전공자와 합을 맞춰보았는가?

내 예술 기술을 멋진 상품으로 변화시켜줄 경영·디자인·IT 전공자를 음대 밖에서 만나보았는가?

나는 순수한 기술자로 남을 것인가, 다른 전공자들과 손잡고 나만의 판을 짜는 플레이어가 될 것인가?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