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같은 시간, 다른 마음

마음의 힘, 관계의 흐름 - 2

by류겸

2부. 우리는 왜 어긋나는가


13-1. 같은 시간, 다른 마음


같은 공간에 있고, 같은 시간을 보내는 데도 마음이 엇갈릴 때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기억하는데, 다른 한 사람은 그날 유난히 외로웠다고 말합니다. 함께 식사를 했고,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같은 길을 걸었는데도 두 사람의 마음에 남은 풍경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나는 좋았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느꼈어요?”


분명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어떻게 전혀 다른 마음이 남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관계에서 이런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같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해서 같은 시간을 살아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에게 그날은 관계가 가까워진 날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무언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 날일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은 이미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시계를 바라보며 살아가지만, 마음에는 저마다 다른 시간이 흐릅니다.


에픽테토스는 『엥케이리디온』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을 흔드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바라보는 생각이다(Men are disturbed not by things, but by the views which they take of things.).”


같은 사건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비가 내리는 날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비는 불편함이지만, 오랫동안 비를 기다린 사람에게는 반가운 소식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래전 이별하던 날을 떠올리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우산을 함께 썼던 기억을 불러옵니다. 비는 같은 비이지만 마음이 그려내는 풍경은 다릅니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하루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은 ‘바쁜가 보다’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은 ‘마음이 멀어진 것은 아닐까’ 하고 불안해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같은 침묵이 어떤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외면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지금 일어난 일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약속 시간에 십오 분 늦었다고 생각해봅니다. 늦은 사람에게는 교통이 막혀 생긴 작은 일이지만, 기다리던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감정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중요한 약속이 자주 지켜지지 않았거나, 가까운 사람에게 반복해서 소홀한 대접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면 단순한 십오 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조금 늦었을 뿐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요?”


늦은 사람에게는 시간을 말하는 질문이지만, 기다린 사람의 마음속에는 다른 말이 흐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또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현재의 작은 사건이 오래된 감정을 깨운 것입니다. 그래서 감정은 언제나 눈앞의 사건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지금의 반응 속에는 살아온 시간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가 크게 반응하면 흔히 “왜 그렇게 예민해요?”라고 묻습니다. 별것 아닌 일을 오래 마음에 담아둔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감정의 크기만 보면 그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쉽게 믿는 사람이 있고, 믿기까지 오래 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금세 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래 곱씹어야 비로소 마음에서 놓을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단순한 성격 차이이기도 하지만, 살아오며 만들어진 각자의 마음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감정이 움직이는 속도도 다릅니다. 한 사람은 마음이 상하면 바로 말해야 편합니다.

“지금 이야기하고 풀어요.”


그러나 다른 사람은 감정을 충분히 가라앉히고 정리한 뒤에야 말을 꺼낼 수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첫 번째 사람에게 침묵은 불안입니다. 왜 말을 하지 않는지, 관계를 포기한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반대로 두 번째 사람에게 계속되는 대화 요구는 압박이 됩니다. 아직 자신의 감정조차 정리되지 않았는데 대답을 요구받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두 사람 모두 관계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같습니다. 다만 한 사람은 말함으로써 가까워지려 하고, 다른 사람은 잠시 떨어져 있음으로써 다시 가까워지려 합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선의조차 갈등으로 바뀝니다. 대화를 원하는 사람은 침묵을 거절로 받아들이고, 시간을 원하는 사람은 대화를 강요로 느끼게 됩니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방식이 더 옳은가를 가리는 일이 아닙니다. 상대의 마음에도 그 나름의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속도에는 익숙하지만 타인의 속도에는 쉽게 답답함을 느낍니다. 내가 사과했으니 상대도 이제 괜찮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그러나 사과가 도착하는 시간과 마음이 회복되는 시간은 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 순간 마음이 풀리지만, 다른 사람은 사과를 받아들인 뒤에도 상처가 가라앉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별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관계가 끝난 뒤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는 같은 길과 음악, 계절 하나까지 오래 기억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제 그만 잊을 때도 되지 않았어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는 정해진 회복 기한이 없습니다. 슬픔의 속도도, 용서의 속도도, 사랑이 깊어지는 속도도 저마다 다릅니다.


문제는 우리가 자신의 감정 시계를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할 때 생깁니다.

‘나는 괜찮은데 왜 아직도 저럴까요.’

‘나는 준비됐는데 왜 저 사람은 아직 마음을 열지 않을까요.’

‘나는 벌써 지나갔는데 왜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낼까요.’


그 순간 상대는 너무 느린 사람이 되고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질문을 조금 바꾸면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집니다.

‘저 사람에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판단이 이해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심리학의 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의 경험은 내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이루어진다(My experience is what I agree to attend to.).”


우리는 같은 자리에 있어도 똑같은 것을 보지 않습니다. 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 사람은 배우자가 자신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한 일을 기억합니다. ‘오늘 나를 위해 참 애썼구나’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식사 도중 상대가 휴대전화를 여러 번 확인했던 장면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내 이야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나 봅니다’라고 받아들입니다.


두 사람 모두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은 사랑의 표현을 보았고, 다른 사람은 관심이 끊긴 순간을 보았습니다. 같은 시간이었지만 서로 다른 부분에 마음이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관계에서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마음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실은 하나일 수 있지만, 그 사실을 통과한 경험은 둘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지난 뒤 상대가 예전의 서운함을 꺼낼 때도 있습니다.

“그때 정말 서운했어요.”

상대는 당황합니다.

“그때는 아무 말도 안 했잖아요.”


맞습니다. 그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감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자신도 무엇이 서운한지 정확히 몰랐을 수 있습니다. 관계를 잃을까 두려워 참았거나, 괜한 싸움을 만들고 싶지 않아 삼켰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때의 마음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감정은 언제나 사건과 동시에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나온 뒤에야 알게 되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때 나는 화가 났던 것이 아니라 서운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원했던 것은 해명이 아니라 이해였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미워했던 것이 아니라 버려질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감정에는 뒤늦게 도착하는 이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왜 그때 말하지 않았어요?”라고 묻기보다 “그때는 말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있었나요?”라고 물을 수 있다면, 오래된 마음이 비로소 현재의 대화 속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사랑의 시작도 두 사람에게 같은 시각에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은 첫 만남부터 마음이 움직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여러 번 만나고 상대를 충분히 알아간 뒤에야 천천히 마음을 엽니다.

한 사람은 답답합니다.

‘나는 이렇게 좋아하는데 왜 저 사람은 확신을 주지 않을까요.’


그러나 상대에게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그 마음이 도착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전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사람을 믿는 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마음은 재촉한다고 빨리 움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안전하다고 느낄 때 스스로 열립니다. 관계에는 다가갈 용기도 필요하지만, 상대가 문을 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멀어지는 마음 역시 동시에 시작되지 않습니다. 이별을 통보받은 사람은 흔히 말합니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마음이 변할 수 있어요?”


그러나 상대에게는 하루아침이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서운함이 쌓였고, 수없이 고민했으며, 혼자 마음을 정리한 끝에 비로소 그 말을 꺼냈을지도 모릅니다. 한 사람에게 이별은 오늘 시작되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관계에서 가장 아픈 순간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같은 시간 속에 있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때입니다. 한 사람은 여전히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은 이미 마음속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일수록 가끔 마음의 시간을 확인해야 합니다.

“요즘 우리는 어떻습니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없습니까?”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이런 질문은 문제가 생긴 뒤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여전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은 표지판과도 같습니다.


그렇다고 상대의 시간을 존중한다는 것이 무한히 기다리거나 자신의 마음을 억누른다는 뜻은 아닙니다. 건강한 기다림에는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는 마음과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태도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기다리겠습니다.”


이 말에는 두 사람의 시간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나의 마음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재촉하지 않습니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속도 사이에 여백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 여백 속에서 감정은 가라앉고 생각은 정리되며, 다시 이야기할 힘이 생깁니다.


침묵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조용해지면 우리는 그 침묵에 쉽게 의미를 붙입니다.

‘화가 났나.’

‘나에게 관심이 없나.’

‘내가 뭔가 잘못했나.’


그러나 침묵은 사람마다 다른 뜻을 가집니다. 누군가에게는 생각하는 시간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이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더 이상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한 멈춤일 수 있습니다. 물론 때로 침묵이 관계를 피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확인하는 일입니다.


“지금은 혼자 있고 싶은 건가요?”

“조금 뒤에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까요?”

이런 질문은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면서도 관계가 끊어진 것이 아니라는 마음을 전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계절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은 지금 봄을 지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고, 무엇인가 다시 시작하고 싶은 때입니다. 그러나 그 옆의 사람은 여전히 겨울 속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래된 상처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아가기보다 자신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간입니다.


봄을 사는 사람이 겨울을 지나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왜 이렇게 마음을 열지 않아요?”

그러나 겨울인 사람은 아직 대답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계절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계절을 재촉한다고 봄이 빨리 오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도 그렇습니다. 슬픔에는 슬픔의 시간이 있고, 회복에는 회복의 시간이 있으며, 사랑에도 사랑이 깊어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좋은 관계는 상대의 계절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겨울이라면 잠시 겨울 곁에 머물고, 봄이 찾아오면 함께 걸을 준비를 합니다.


이해한다는 것도 반드시 같은 마음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까지 서운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느껴도 괜찮습니다. 다만 그 뒤에 한마디가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는 것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상대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그 감정이 존재할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습니다. 내가 쉽게 용서한다고 해서 상대도 금방 용서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빨리 잊는다고 해서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마음의 시간은 경쟁이 아닙니다.

누가 더 빨리 회복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지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두 사람이 같은 시계를 차는 일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시간을 품은 채 함께 걷는 일입니다. 때로는 내가 조금 앞서가고, 때로는 상대가 먼저 나아갑니다. 어떤 날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걷습니다. 바로 그런 순간 우리는 ‘잘 맞는다’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언제나 나란히 걸을 수는 없습니다. 관계의 깊이는 같은 속도로 걸었던 시간에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속도가 어긋났을 때 먼저 간 사람이 돌아볼 수 있는지, 뒤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속도를 솔직히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다시 서로의 보폭을 맞출 수 있는지가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인연은 흔히 타이밍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래가는 관계에는 타이밍보다 더 깊은 것이 있습니다. 타이밍이 어긋났을 때에도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조금 늦게 도착해도 기다릴 수 있는 것, 아직 상처 속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내지 않는 것,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자신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런 태도가 관계를 오래 이어줍니다.


같은 시간을 살아도 우리는 서로 다른 마음의 시간대를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지금 나와 같은 지점에 있지 않다고 해서 관계가 잘못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서로가 어디쯤 있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여기 있습니다.”

“당신은 어디쯤 있습니까?”


이 질문을 계속 주고받을 수 있다면, 잠시 다른 속도로 걷더라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같은 시간을 보낸다고 같은 마음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관계는 서로의 마음이 도착하는 시간을 기다려주는 데서 깊어집니다.


□ 마음의 여운 - 마음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


우리는 종종 상대가 나와 같은 순간에 같은 마음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내가 기쁘면 함께 기뻐하고, 내가 마음을 열면 상대도 곧 마음을 열며, 내가 괜찮아졌다면 상대 역시 이미 괜찮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음에는 저마다의 시간이 있습니다. 어떤 마음은 빨리 다가오고, 어떤 마음은 한참을 망설인 뒤에 도착합니다. 어떤 상처는 짧은 시간에 지나가지만, 어떤 상처는 오래된 계절 하나를 지나야 비로소 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계에는 상대의 마음을 재촉하지 않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왜 아직도 그래요?”라고 묻기보다 “아직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라고 생각하고, “왜 이제야 말해요?”라고 다그치기보다 “그때는 말하기 어려웠나 봅니다”라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관계는 언제나 같은 속도로 걷는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먼저 간 사람이 기다리고, 때로는 뒤에 있는 사람이 조금 천천히 가달라고 말하며 서로의 걸음을 맞추어가는 일입니다.


같은 시간 속에 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마음의 시간을 존중하면서도 끝내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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