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 열 줄 소설 1화~4화

한밤에 나타난 것 / 피로 / 사무실 괴담 / 손짓하는 여자

by이사금

001. 한밤에 나타난 것

이상하게 오늘 시현은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이건 시현이 낮에 마신 진한 커피 탓도, 늦게까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은 탓도 아니었다.


그저 TV에서 해 주는 그런 이야기를 보지 말았어야 했다고 시현은 뒤늦게야 후회했다.

흉흉한 사건이 터졌다는 방에서 낯선 이의 존재감이 계속 느껴진다거나, 한밤중에 기묘한 소음이 나는 곳에 이상한 그림자가 비친다거나, 어쩌다 사고 현장을 지나쳤더니 알 수 없는 존재가 혼자 사는 자신의 집까지 쫓아왔다거나 하는 누군가가 진짜로 겪었다는 오싹한 경험담은 사람의 시선을 끌기 쉬웠다.


그래서 원래 즐겨보던 방송이 아니었음에도 오늘따라 그런 이야기들이 시현에겐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다.


방송국에서 수집한 이야기니 어느 정도 가공되었거나 과장되었을 거라고 판단했기에 당장은 무섭지 않았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눕기 전까지는.

하지만 방송의 내용이 계속 기억에 남은 탓인지 아까부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고, 시현이 억지로 잠을 청하려 눈을 감은 순간 스르륵- 검은 것이 정확하게 그의 눈가를 스쳐 지나갔다.


이에 시현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히익, 바퀴벌레야…!!”



002. 피로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진우는 가슴이 답답한 증상과 함께 온몸이 피곤하고 팔과 다리가 쑤시는 걸 느꼈다.


거기다 분명 한여름이 되었건만, 진우는 몸살이라도 생긴 건지 종종 한기를 느꼈다.


벌써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석 달이 되어 가는데도 그는 편하게 잠든 기억이 없었다.

어제는 기억은 안 나지만 악몽을 꾸었고, 일어났을 때는 긴 거리를 터질 듯이 뛰어다닌 것처럼 팔과 다리가 뻐근했다.

이사 오고 난 뒤로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동료들에게 넌지시 털어놓았을 때는 터가 안 좋은 거 아니냐며 아는 점집이 있으니 같이 가지 않겠냐고 권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걸 믿지 않는 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동안 과로한 자신의 컨디션 문제라고 믿고 넘어갔다.


진우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깊은 밤 그가 잠들 때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와 이목구비가 흐릿한 어린아이들 셋이 어김없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누워있는 진우의 상반신을 밟아대며 입이 찢어지게 웃어댔다.


그리고 납빛처럼 새하얀 얼굴을 가진 어린아이들 셋은 밤마다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낄낄거리며 그의 팔과 다리를 마구 잡아당겼다.


003. 사무실 괴담

- 밤 10시 이후 혼자 사무실에 있을 때 어떤 소리가 들려도 돌아보지 마세요.


사무실 안에 놓여있는 화이트보드 위에는 선명하게 그런 글이 쓰여 있었다.

서아는 그 문장을 보자마자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나폴리탄 괴담을 연상하며 황당해했다.


분명 팀장님도 지난 회식 때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 이건 야근하는 사람을 놀리려고 적어놓은 거야, 뭐야.


혼자 사무실에 남아 잔업을 처리하던 서아는 괜히 뒤숭숭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서아의 뒤에서 철이 마찰하는 것도 같고, 목쉰 사람의 음성 같은 것이 들린 것 같았다.


이에 기겁한 서아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고 먼저 본 경고문도 있은 채 그대로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이내 그는 새하얗게 질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한 곳을 바라보면서 그 자리에서 털썩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지금 서아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지금은 사라진 회사의 옛 유니폼을 입은 창백한 여자가 뭐라고 중얼거리며 그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004. 손짓하는 여자

드디어 태풍이 지나갔고 효진의 눈에 하늘의 구름이 저 수평선에서부터 서서히 걷히는 게 보였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위험하다며 물가나 바다 근처에는 나가지 말라는 안전 문자가 여러 번 핸드폰으로 들어왔고, TV의 뉴스에서도 수해가 생겼을 시 대비 방법을 꾸준히 안내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난 지금은 놀랍게도 공기가 가라앉았고, 아직 바람이 조금 세긴 하지만 바다는 평화를 되찾은 것 같았다.


큰비가 내리는 동안 집안에 틀어박혔던 답답함을 해소하려는 듯 효진은 별생각 없이 바닷가 근처 도로를 거닐었다.


그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리의 바위 근처에서 어떤 여자가 효진을 향해 긴 머리를 너풀거리며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아마 나처럼 답답해서 태풍이 지나가자마자 바닷가에 나온 사람이었을까?


뭔가 애타게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손짓에 효진은 의문을 가지면서도 천천히 여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때 훅- 하고 강한 바람이 불었고 깜짝 놀란 효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 순간 바위 사이에서 손을 흔들던 여자는 감쪽같이 사라졌고, 이내 효진은 크게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몇 발자국 떨어진 커다란 바위 사이에는 긴 머리가 해초처럼 늘어진 여자의 시신 하나가 빠져나오기 힘든 형태로 끼어 있었던 것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