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그래도 돈은 필요하다

by대건

“다들 힘들다고 하면서 결국 다 해요.”

엊그제 팀장이 했던 말이다.


물량이 많아지면 여기저기서 힘들다는 소리가 나온다. 도저히 다 못하겠다며 다른 사람에게 물량을 넘기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대부분 자기 물량을 끝까지 배달한다는 것이다.


팀장도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나도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면 조금 덜 하면 될 텐데, 왜 굳이 다 끌어안고 하는 걸까 싶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말을 다시 떠올릴 일이 생겼다.


옆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형님이 있다. 평소에도 물량이 많은 편인데, 최근에는 일이 더 늘어난 모양이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힘들다며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이 많은 물량을 어떻게 다 하느냐며 다른 사람에게 일부를 넘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이미 마음을 정한 사람 같았다. 이제 누가 대신 해줄지만 정해지면 당장이라도 물량을 나눠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정작 물량을 넘겼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날 자정까지 혼자 배달을 마쳤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팀장의 말이 떠올랐다.


힘들다고 하면서 결국 다 한다더니, 정말 그랬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그렇게 힘들다고 하던 사람이 어떻게 자정까지 배달할 생각을 했을까.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할 수 있었을 텐데. 집에 가서 밥도 먹고, 씻고, 다리라도 뻗고 쉴 수 있었을 텐데.


같은 일을 하는 나도 자정이라는 시간이 가볍게 들리지는 않았다.


택배는 운전만 오래 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차를 세우고, 물건을 찾고, 들고 내리고, 문 앞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한 집을 끝내고 나면 다음 집이 기다린다.


밤이 깊어져도 차에 물건이 남아 있으면 그 과정은 계속된다.


그걸 알면서도 끝까지 혼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돈 생각이 났다.


우리는 배달한 물량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다. 다른 사람에게 물량을 넘긴다는 것은 내 일을 덜어내는 동시에, 그 일을 해서 받을 돈도 함께 넘긴다는 뜻이다.


말로는 간단하다.


힘들면 나눠주면 된다. 조금 덜 벌고 조금 더 쉬면 된다.


그런데 막상 내 수입에서 얼마가 빠지는지 계산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건으로 볼 때는 빨리 없애고 싶은 짐이었는데, 돈으로 바꿔 생각하면 쉽게 내주기 아까워지는 것이다.


애초에 돈을 더 벌려고 가져온 물량이었다.


해보니 예상보다 힘들었을 수 있다. 이 정도까지 늦어질 줄은 몰랐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남에게 넘겨버리자니 처음에 그 물량을 가져온 이유가 다시 떠올랐을 것이다.


기껏 돈을 벌겠다고 일을 늘려놓고, 정작 그 돈은 다른 사람에게 주게 되는 셈이니까.


물론 쉬는 시간을 얻는 것이니 손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몸도 쉬어야 다음 날 다시 일할 수 있다.


다만 그 순간에는 쉴 시간보다 손에 들어올 돈이 더 크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마침 수수료 지급일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 달 동안 배달한 물량이 통장에 찍힐 금액으로 바뀌는 때다. 하루하루 일할 때는 언제 끝나나 싶다가도, 지급일이 가까워지면 이번 달에는 얼마나 들어올지 생각하게 된다.


그때는 아침에 쌓인 물량도 조금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오늘 이것까지 직접 배달하면 얼마를 더 받겠구나. 남에게 맡기면 그만큼은 줄어들겠구나.


형님이 실제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른다. 내가 그 속사정까지 들은 것은 아니니까.


당장 나가야 할 돈이 있었을 수도 있고, 조금이라도 더 벌어두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다. 특별한 사정 없이, 할 수 있을 때 더 해두자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매일 비슷한 고민을 한다.


아침에 물량이 적으면 일찍 끝나겠다는 생각에 반갑다. 그러다가도 이런 날이 계속되면 이번 달 수입이 얼마나 줄어들지 걱정한다.


반대로 물량이 많으면 한숨부터 나온다. 오늘은 또 몇 시에 들어가나 싶다. 그러면서도 이번 달 수수료는 조금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같은 물량을 두고 마음이 오간다.


출근해서는 퇴근 시간을 계산하고, 퇴근하고 나서는 오늘 번 돈을 계산한다. 어느 쪽도 내 생활과 무관하지 않아서 하나만 생각하기가 어렵다.


일은 적게 하고 싶지만 돈은 많이 벌고 싶다.


말로 꺼내놓으면 욕심처럼 들린다. 하지만 조금 덜 지치고도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그렇게 특별한 욕심일까.


문제는 내가 쉬고 싶은 만큼 지출도 함께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오늘 너무 힘들었다고 해서 이번 달에 낼 돈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하루쯤 쉬었다고 생활비가 쉬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조금 덜 벌면 된다는 말 앞에서는 각자 계산이 복잡해진다.


누군가에게는 없어도 괜찮은 돈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꼭 채워야 하는 금액일 수 있다. 그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무리하는 것 같아도, 본인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 역시 퇴근 후의 시간이 중요하다.


글을 쓰고 싶고, 바카라도 읽고 싶다. 일이 하루를 다 차지해버리면 아쉽다. 돈을 조금 더 버는 것보다 일찍 돌아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날도 많다.


그렇다고 수입이 줄어드는 것까지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지키고 싶은 시간이 있는 만큼, 그 시간을 보내는 생활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나 역시 어느 정도는 해야 하고, 어디까지는 감당할 수 있는지 생각한다.


그 형님과 내가 고르는 선이 조금 다를 뿐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쯤에서 돌아가고 싶고, 그 형님은 오늘 조금 더 하고 싶었던 것이다. 혹은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엊그제의 하소연도 다르게 들렸다.


나는 힘들다는 말을 듣고 곧 일을 줄이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넘기겠다는 말까지 했으니, 정말 그렇게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은 결정을 내리기 전에도 말을 한다.


너무 지쳐서 지금 마음을 털어놓을 때도 있고, 누군가에게 이만큼 힘들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할 때도 있다. 잠깐은 그만하고 싶었다가도 다시 생각해 보니 계속하는 쪽을 택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앞서 했던 말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정까지 배달을 마쳤다고 해서 사실은 할 만했던 것도 아닐 것이다. 끝냈다는 결과만으로 그날의 고생까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니까.


어쩌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결국 해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힘들다고 했던 말을 너무 쉽게 잊는지도 모르겠다.


다 했으니 괜찮았겠지. 다음에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일을 끝낸 사람에게 남는 것은 수입만이 아니다. 늦어진 저녁과 줄어든 잠, 다음 날까지 이어지는 피로도 함께 남는다.


그걸 감수하면서라도 돈을 버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팀장이 했던 말도 조금 다르게 들렸다.


“다들 힘들다고 하면서 결국 다 해요.”


처음에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들었다.


이제는 그 사이에 각자의 생활이 들어 있는 말처럼 들린다. 아침에 쌓인 물량을 보고 한숨을 쉬면서도, 남에게 넘겼을 때 줄어들 수입을 생각하면 쉽게 손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


결국 자기 차에 물량을 싣고 나가, 늦은 시간까지 하나씩 배달하고 돌아오는 사람들.


그 형님에게도 그런 하루였을지 모르겠다.


굳이 대단한 바카라임감이나 성실함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돈 욕심이 많아서라고 쉽게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일을 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가 그날도 남아 있었던 것뿐이다.


자정까지 배달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묻고 싶었다.


그렇게 힘들다면서 왜 남에게 주지 않았느냐고.


이제는 그 질문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 형님도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엊그제 했던 하소연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내일은 조금 적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날 번 돈만큼은 다행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힘든 건 힘든 거다.


그래도 돈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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