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마을을 벗어나니
구멍이 많다
잠깐 방향을 잃었을 뿐인데
언젠가부터 나는 묵시적 무국적자인 셈이었다
세월을 측량했던 바늘이 도처에 비산하여
한낱 왜바람에 꿈틀거리고
지구에 갇힌 공기가
시간에 갇힌 사람들을 오염시킨다
불시의 요동은
신기원의 징후인지 대멸종의 전조인지
폐허의 지평에 놓인 자들은 구분할 수 없다
흰 가운을 두른 사람은
흰 가운을 두른 사람끼리
굽은 것은 굽어 있는 것들끼리
무국적자들은 미망의 과거를 딛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떠나는 중이겠지
시간이 나무를 베어내니
숨이 모자라다
국경을 떠난 바람은 무지의 깃발을 흔들고
죽은 별의 잔광처럼
소멸 이후를 배회하는
무명국의 무명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