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나가기에 대하여 2>
'차라투스트라의 원숭이'에게 차라투스트라는 날 선 비판을 가합니다. 자신의 말을 흉내 내는 자는 그 자신과 과연 어떻게 다를까요?
너는 무슨 까닭으로 끝내 개구리가, 그리고 두꺼비가 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그 오랜 세월을 늪가에서 살아왔느냐?... 난 너의 경멸을 경멸하노라. 내게는 경고하면서도 어찌하여 너 자신에게는 경고하지 않은 것이지?
'늪'은 변화와 성장이 멈춘 곳, 남을 헐뜯고 험담하는 저급한 정신의 공간을 뜻합니다. 개구리와 두꺼비는 축축하고 더러운 곳에 안주하며 평생을 갇혀 사는 존재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타인의 삶을 깎아내리는 데 골몰하며 오랜 세월을 허비한 이의 정신이 흉측하고 비루하게 변해버린 모습을 비유적으로 질타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대방은 차라투스트라를 향해 날 선 비판과 '경멸'의 시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그 경멸조차 가소롭게 여깁니다. 상대방이 정작 스스로의 비루함과 위선은 돌아보지 못한 채 남을 향해 경고의 잣대만 들이대는 내로남불 식의 자기기만(mauvais fois)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너를 애초에 투덜대게 만든 것, 그것은 무엇이었지? 그 누구도 네가 흡족해하리만큼 네게 아첨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렷다. 투덜댈 수 있는 구실을 많이 갖기 위해 너 이 오물에 주저앉았던 것이고. 또 허다한 앙갚음을 위한 구실을 갖기 위해!
'차라투스트라의 원숭이'가 투덜거린 이유는 세상의 부조리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자신의 비대해진 자아를 충분히 떠받들어 주지 않고 아첨해주지 않았다는 유치한 자기중심적 상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불행한 상황에 우연히 빠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오물 같은 늪에 주저앉았습니다. 남을 탓하고 세상에 복수(앙갚음)할 수 있는 '구실'과 '명분'을 계속 만들어내기 위해서입니다. 불행을 일종의 무기로 삼아 타인에게 죄바카라감을 주려는 심리는 타인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이것을 타인을 속이는 것보다 나쁘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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