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닥파닥 물고기 한 마리

by배가본드

한 작가님의 페이지를 발견했다. 글들이 좋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댓글 다는 건 쉽지 않지만 감동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부끄러워 라이킷만 놓고 가자니 "날 좀 봐 줘요 라이킷 라이킷" 이게 될 것 같고.


내 댓글은 보통 짧지 않다. 댓글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글쓴이에게 글을 제대로 읽었다는 느낌을 드리는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정답은 없고 그냥 내 취향이다. 누군가에게는 댓글이 글쓴이와의 관계를 확인하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글쓴이의 생각을 넘겨받아 내 생각을 얹어서 되돌려 드리는 일에 가깝다. 나는 이것을 ‘마음맞춤’이라고 부른다. '잘 읽었습니다' 말고, 진짜로 잘 읽은 사람이라야 할 수 있는 말을 쓰고 싶다.


문제는 시간이 걸린다. 천천히 읽어야 하고, 깊이 닿아야 하고, 사색해야 하고, 쓸 말을 떠올리고, 정리해야 한다. 하지만 나에겐 글 쓰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다. 결국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내 글만 쓰는 걸로는 생각이 커질 수 없으니까. 그 행위 자체가 나의 글쓰기 공부니까.




댓글을 달았다. 그분의 생각을 중심에 두고 내 얘기는 살짝만 곁들여야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너무 내 얘기만 하는 게 되진 말아야지.


학생 때 야구선수로 뛰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그 느낌을 기억한다. 포수가 공을 두 손으로 꽉 쥐고 박박 문질러 열을 내서 내 가슴팍에 일직선으로 정확히 던져주고 탁 넘겨받는 순간의 느낌. 투수들은 다 안다. 포수의 손의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고, 108개 실밥은 까슬하게 곤두서 있다. 공이 손에 착 붙는다.


투수는 많이 해 봤으니까 이젠 포수이고 싶다. 온라인카지노에서 독자로서 존재할 때는.

한 시간 정도 됐을까. 대댓글이 달렸다. 느낌이 이상했다. 내 댓글을 AI에게 그대로 던져주고 대댓글을 써 달라고 해봤다. 표현만 몇 군데 바뀌었을 뿐 내가 받은 대댓글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나는 글을 오래 읽고, 생각하고, 내 경험까지 꺼내서 공을 건네드렸는데 되돌아온 공에는 아무런 손의 온기가 없었다.


[기] 작가님께서 '○○○'하시는 모습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승] 특히 '□□□□'라는 말씀이 참 좋네요.
[전] 어쩌면 우리가 ♤♤♤한다는 것은 ◇◇◇하는 게 아니라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형화된 구조, 상투적이고 추상적인 말, 원글의 구체적인 감상이라기보다 핵심어만 추출해 요약한 문장. 그런 말들은 구절이나 말투를 바꾼다고 사람의 응답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통글에서는 몰라도 관계의 맥락이 있는 댓글에서는 그게 상대적으로 잘 보인다.


나는 댓글 하나를 쓰려고 상대의 글을 여러 번 읽고, 기억의 방을 뒤지고, 경험을 꺼내야 했지만, 정작 상대가 내 댓글을 긁어 "AI야, 여기 이 댓글 읽고 대댓글 좀 써 줘." 하며 던져 주는 모습을 상상하니 당혹스럽다. 내가 당혹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대댓글이 AI로 쓰였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건넨 것과 돌아온 것 사이의 거대한 비대칭이다.


온라인카지노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너무 낡은 바람을 가졌던 걸까. 어장 관리가 이성 교제의 영역에만 존재하는 게 아닌 걸까. 그분들도 다른 사람들까지 그러기를 바라시진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다 같이 시시해질 텐데 누가 그런 그림을 원할까.


댓글들 하나하나에 일일이 마음맞춤을 하는 게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 나는 안다. 만약 댓글이 수십, 수백 개씩 달리는 경우를 가정하면 얼마나 버거울지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니 꼭 내가 들인 만큼의 품을 들여 주시길 바라지 않는다. 87을 드렸으니 87을 달라는 게 아니다. 내가 건넨 게 뭔지라도 알아봐 주었으면 할 뿐이다.

사진 출처 : 여기에TV (유튜브)

심지어 이런 경우도 있었다. 나는 구경꾼의 입장이었는데, 댓글과 대댓글 양쪽 다 AI 느낌이 확연했다. 대화가 외주에 하도급됐네! 시방 이 대화는 누구와 누구의 대화이며, 무엇을 위한 대화일까?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찐따같이 우는 표정으로 으흐흐 웃어야 하나? 이 표정과 동작을 동시에 가장 잘 만들 사람은 박명수 정도 될 것 같다. 방금 내가 진짜로 해 보니 웃음과 울음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4차원적으로 꿀렁꿀렁해지는 기분이 묘하다. 그런데 이 상황은 그래도 대칭적이니깐 내 경우보단 나은 건가? 이 생각에 다다르니 조금 전의 박명수 흉내는 이젠 나에게 더 이상 흉내가 아니다. 으흐흐...~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