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
“귀엽다.”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 많을 것 같다.”
창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듣기 좋은 말이었다.
생각한 방향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는
확인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비슷한 말을 여러 번 들을수록
오히려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예쁘다는 말은 있었지만,
그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계산할 수 없었다.
누가 살지 알 수 없었고,
언제 필요한지도 알 수 없었다.
어느 정도의 가격을 받아들일지도 알 수 없었다.
예쁘다는 반응과 사업 가능성 사이에는
생각보다 많은 질문이 빠져 있었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의 반응에는
제품 외의 조건이 섞여 있었다.
무언가를 시작한다고 하니
응원해 주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굳이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 반응이 제품에 대한 평가인지,
나에 대한 응원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설문조사를 만들고, 사비를 들여 응답을 모았다.
돈을 쓰면서까지 설문을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아직 제품을 판매한 것도 아니고,
사업이 시작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시작하기 전이기 때문에
더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제품을 만든 뒤 팔리지 않는 이유를 찾는 것보다,
만들기 전에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보는 편이 나았다.
오픈채팅방에는 약 70명이 모여있었다.
그중 유효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응답은 23개였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응답 내용보다 숫자였다.
창업자가 궁금한 것과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답하고 싶은 것은 달랐다.
설문에 들어온 사람,
문항을 읽은 사람,
끝까지 답한 사람 사이에도 차이가 있었다.
관심이 있다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이미 그 단계부터 달랐다.
23이라는 숫자가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의미가 없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적은 응답 안에서도 반복되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원한 것은
새로운 자수 제품의 종류만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네임택에 관심이 있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진 물건에
자수를 넣는 방식에 관심을 보였다.
제품의 모양은 달랐지만 반복해서
나타난 조건은 비슷했다.
1. 한 개만 주문할 수 있을 것.
2.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3. 새 물건을 사지 않고, 가지고 있는 물건에
바로 자수를 넣을 수 있을 것.
정리하고 보니 세 문장으로 남았다.
1개부터.
당일.
내 물건에 바로.
처음에는 이것을 단순한 서비스 조건으로 봤다.
소량 주문을 받고, 빠르게 제작하고, 가져온 물건에도
자수를 해주는 방식.
하지만 응답을 다시 보니
제품의 특징보다 고객이 겪고 있던 불편에 가까웠다.
기존 자수 주문은 일정 수량 이상이어야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한두 개가 필요한 사람에게 대량 주문은 맞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물건을 보내고,
제작을 기다리고, 다시 배송받아야 했다.
작은 자수 하나를 넣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길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가방이나 옷에 자수를 넣고 싶어도,
어디에 맡겨야 할지 찾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자수 그 자체를 원한다기보다,
기존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던
작은 주문을 해결하고 싶어 했다.
이 차이를 보기 전까지
주로 무엇을 만들지 생각했다.
네임택을 만들 수 있고,
파우치를 만들 수 있고,
손수건이나 에코백에도 자수를 넣을 수 있었다.
자수로 만들 수 있는 상품은 계속 늘어났다.
하지만 상품의 수가 늘어난다고
고객이 선명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말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설문 뒤에는 질문의 순서가 조금 바뀌었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 보다,
어떤 사람이 기존 서비스에서
불편을 겪고 있는가를 먼저 보게 됐다.
대량 주문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사람.
하나만 빠르게 만들고 싶은 사람.
기성품을 새로 사기보다
자신이 쓰던 물건을 조금 다르게 만들고 싶은 사람.
나이나 직업처럼 사람을 구분하는 조건보다,
비슷한 상황과 불편을 가진 사람들이 먼저 보였다.
흔히 고객을 정할 때 연령, 성별, 직업부터 적는다.
20대 여성인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인지,
선물을 자주 사는 사람인지 구분한다.
물론 그런 정보도 필요하다.
하지만 설문에서 먼저 드러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었다.
평소 자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이름을 구분해야 하는 순간에는
자수가 필요할 수 있었다.
맞춤 제품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특별한 선물이 필요할 때는 주문을 고려할 수 있었다.
반대로 자수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지금 필요한 상황이 없다면
구매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고객군은 취향만으로 묶이지 않았다.
같은 불편과 같은 필요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고객군이 되기도 했다.
이 부분은 내가 처음 예상한 것과 달랐다.
예쁜 자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고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문에서는 예쁜 자수를 좋아하는가 보다,
소량 주문이 필요한가,
빨리 받아야 하는가,
기존 물건에 변화를 주고 싶은가가
더 구체적인 조건으로 나타났다.
취향보다 상황이 구매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23개의 응답만으로
고객을 확정할 수는 없었다.
설문에 답하는 데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필요하다고 표시하는 것과
실제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한 개부터 주문하고 싶다는 답변이 많아도,
그 한 개에 얼마까지 낼 수 있는지는 별도의 문제였다.
당일 제작을 원한다고 해도,
빠른 제작을 위해 추가 비용을 지불할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의 물건에 자수를 넣고 싶다고 해도,
실제로 물건을 들고 매장을 방문할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설문은 구매를 증명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다음에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보여줬다.
처음에는 예쁜 제품을 만들면
사람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문을 거친 뒤에는 사람이
어떤 조건에서 움직이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제품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과,
그 제품이 필요한 사람은 다를 수 있다.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과,
실제로 돈을 내는 사람도 다를 수 있다.
관심, 필요, 구매는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단어처럼 보였지만 서로 다른 단계였다.
창업 강의에서는
[고객 검증, 구매 의사, 고객군]
같은 말을 사용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비슷한 개념처럼 느껴졌다.
직접 설문을 해보니
각각 다른 질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누가 관심을 보이는가.
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가.
누가 실제로 돈을 내는가.
설문으로 확인한 것은 마지막 질문의 답이 아니었다.
대신 두 번째 질문에 가까운 사람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처음과는 달랐다.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는 막연한 문장에서 벗어나,
“이런 불편을 가진 사람들이 이 조건을 원한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예쁘다는 말은 여전히 필요하다.
처음 제품을 보게 만들고,
관심을 갖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쁘다는 말 뒤에 사용 이유가 없다면
구매까지 이어지기 어렵다.
설문을 돌린 뒤부터는 칭찬보다
반복되는 조건을 더 오래 보게 됐다.
무엇이 예쁘다고 평가받았는지보다,
어떤 불편이 여러 번 등장했는지.
사람들이 어떤 제품을 갖고 싶다고 했는지보다,
어떤 상황에서 서비스를 찾는지.
좋은 반응을 모으는 일보다,
비슷한 필요를 가진 사람들을 구분하는 일이 먼저였다.
설문은 고객의 답을 완성해 준 것이 아니었다.
다만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더
물어야 하는지는 알려줬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남았다.
필요하다고 말한 사람들은, 과연 실제로 돈도 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