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지나간 날을 그대로 담아두는 일이 아니라
마음의 뜻대로 다시 빚어
뒤쫓아가 건네받는 일
1688년, 스위스 젊은 의사 요하네스 호퍼는
먼 전쟁터에서 시름시름 앓는 병사들을 보았다.
열도 없고 상처도 없는데
고향 생각에 말라가는 사람들
그는 이 병에 이름을 붙였다.
돌아감(nostos)의 아픔(algos)
향수라는 말은 병명으로 태어났다.
한때는 고쳐야 할 병이었던 그리움이
이제는 누구나 품는 마음이 되었다.
1997년, 심리학자 미첼과 동료들은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여행 전과 여행 중, 여행 뒤에 나누어 물었다.
여행 중에는 말했다.
비에 젖었고, 다리가 아팠고
생각보다 지루했다.
몇 주가 지나 다시 물었더니
같은 길이 달라져 있었다.
빗줄기는 흐려지고
풍경만 선명해졌다.
심리학자들은 그것을
장밋빛 회고라 불렀다.
지나온 날을 실제보다
더 환하게 칠하는 마음
아픔은 먼저 옅어지고
기쁨은 오래 남는다.
감정에도 먼저 마르는 쪽이 있어서
궂은 빛은 빨리 바래고
고운 빛은 끝내 남는다.
그 안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진다.
기억은 꺼낼 때마다
잠시 말랑해져서
다시 저장되기 전까지
손 닿는 대로 빚어진다.
2000년, 신경과학자 네이더는
쥐의 기억이 불려 나오는 순간
단단하던 흔적이 다시 풀어진다는 것을 보였다.
꺼내는 일은 읽는 일이 아니라
고쳐 쓰는 일이었다.
해마는 장면을 건네고
편도체는 그 장면에 온도를 입힌다.
그리움이 클수록
따뜻한 쪽으로 쓰이고
따뜻할수록 자꾸 꺼내어
더욱 곱게 고쳐진다.
꺼내면 말랑해지고
말랑하면 고쳐지고
고쳐지면 고와지고
고와지면 또 꺼내게 된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견뎌낸 시간을 위로하려
마음이 베푸는 오랜 자비.
지나간 아픔에 덧대는
부드러운 천 한 겹이었다.
기억은 바람을 지우고
온기만 건네주었다.
꺼내면 말랑해지고
말랑하면 고쳐지고
고쳐지면 고와지고
고와지면 또 꺼내게 된다.
그렇게 고쳐 쓴 날들이
정말 우리의 것이 맞느냐.
빛바랜 사진 한 장을 창가에 비춰
바래서 더 고운 빛이
손등 위에 내려앉는 것을 본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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