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1월 1일, 철길 하나가 열렸다.
드넓은 밭이 전부였던 한밭 땅에
대전역이 처음 문을 열었다.
기차가 서는 자리에 마을이 생겼고
마을이 모이는 자리에 도시가 생겼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만나자
하루아침에 새 도시가 되었다.
그곳에는 오래 살아온 말이 없었다.
서울에서 올라온 말과
부산에서 올라온 말과
호남선을 타고 온 말이
역 앞에서 처음 마주쳤다.
1883년 제물포도 그랬다.
수천 명이 살던 작은 어촌에
일본과 청과 서양 배가 닿았다.
여러 나라 말이 항구에 내렸다.
1962년 울산은 더 가팔랐다.
인구 8만 5천 농어촌 읍이
어느 겨울 공업지구로 정해졌다.
고사, 유환, 나붓골, 골목각단
정겨운 이름의 마을들이 가장 먼저 헐렸다.
십여 년 만에 사람이 두 배 넘게 불어났다.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고향 말을 들고
같은 공장 문 앞에 섰다.
오래된 고을의 욕에는 족보가 있다.
바람이, 산이, 눈이 빚은 결
새로 생긴 도시의 말에는
그런 족보가 없었다.
서로 알아들어야 했으므로
말 모서리가 먼저 닳았고
바쁜 일터에서는
말이 짧고 빠르게 줄어들었다.
고향 말은 접어서 가방에 넣고
모두의 말에 자신을 맞추었다.
광주는 새 도시가 아니다.
오래된 이름을 가진 도시
그러나 한 해 봄을 함께 건넨 기억은
그곳 사람들 말에 가볍지 않은 무게를 얹었다.
낯선 도시에 처음 닿은 날
입에 익은 말을 삼키고
남들의 말투를 흉내 내며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그날 저녁 혼자 내뱉은 짧은 한마디가
내 것도 남의 것도 아닌 소리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신흥도시의 욕은
어느 한 땅에서 자란 말이 아니라
여러 땅의 말이 부딪치며 깎여 나온 말
소리 밑에는
고향을 내주고 온 사람들의 서툰 그리움이 있었다.
뿌리가 없다는 것은
아직 뿌리를 내리는 중이라는 뜻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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