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질까 봐, 끊지 못한 말

by은파랑

거절(拒絶)
막고 끊는다는 뜻

이 말에는 처음부터
이별의 기척이 들어 있다.
아니요 한마디가 나가면
그와 나를 이어둔 실이
툭 끊어질 것만 같다.

2003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신경과학자 나오미 아이젠버거는 동료들과 함께
사람들을 뇌 스캐너 안에 눕혔다.

그리고 화면 속에서
단순한 공 던지기 놀이를 하게 했다.
참가자는 다른 두 사람과 인터넷으로
공을 주고받는 중이라고 믿었다.

처음에는 공이 고르게 돌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이 자기들끼리만 공을 던졌다.

화면 속 나는
아무도 던져주지 않는 자리에 홀로 남았다.

돈을 잃은 것도 아니고
몸을 다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공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짧은 시간에
뇌에서는 몸이 아플 때 반응하는 자리와
겹치는 곳이 환하게 켜졌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헤아렸다.
옛날의 사람에게 무리에서 밀려나는 일은
곧 살아남기 어려워지는 일이었을 것

그러니 거절이 아픈 것은
우리가 예민해서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몸이 기억해 온
가장 깊은 경보였다.

부탁 하나 하려다가
혹시 귀찮아하지는 않을까
몇 번이고 문장을 고쳐 썼고

결국 보내지 못한 채
화면을 끄고 말았다.

반대로 누군가의 부탁 앞에서는
싫다는 말이 입술까지 왔다가
스스로 돌아갔다.

그 사람이 서운해할까 봐,
내가 이 사람에게서 멀어질까 봐,
늘 괜찮다는 쪽으로 마음을 굽혔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두려워한 것은
거절이라는 말이 아니었다.

말 뒤에 숨어 있는
혼자가 되는 장면

공이 오지 않는 자리에
나만 서 있는 모습이었다.

두려움은 그렇게
말 뒤에 몸을 숨기고
내 대신 대답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알아보자
조금 달라졌다.

거절은 실을 자르는 가위가 아니었다.
서로의 실이 얼마나 팽팽한지 가늠하는 손이었다.

너무 당겨진 실은
언젠가 스스로 끊어진다.
한 번쯤 느슨해져야
오래 이어질 수 있다.

아니요,라고 말한 날에도
그 사람은 내 곁에 남아 있었다.

남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끊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팽팽함 위에서만
이어져 있던 인연이었다.

두려움은 지금도 찾아온다.
거절을 앞둔 저녁이면
가슴 어딘가가 먼저 조여 온다.

그럴 때는 손님에게 차를 한 잔 건넨다
알고 있어, 네가 나를 지키려는 것

그리고 나는 천천히 말한다.
어렵겠어, 마음은 고마워

말이 나간 자리에
실은 끊어지지 않은 채
조금 느슨하게 흔들린다.

흔들림 속에서
처음으로
숨을 깊이 들이쉰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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