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워야만 하는 졸업식.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중3 가을 어느 토요일. 오전수업을 마치고 친구와 놀다가, 집으로 향해 사과밭길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 멀리 자전거를 끌고 오는 아버지가 보였다. 4월에 은퇴하신 아버지는 등산을 하시거나 친구들과 놀러 다니셨기에 낮시간에는 집에 계시지 않으셔서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나를 본 아버지는 "자전거 체인이 빠졌으니, 집에 끌고 가거라"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아버지를 보면서, 걱정이 앞섰다. "아버지! 뭔 일 있어요?" "니 오 래 비가 사고가 났단다. 교통사고. 내 아들이 사고가 났어 " 아버진 주저앉으셨다. "저도 가요.아부지" "걱정 말고 자전거 끌고 집에 가라. 엄마가 놀랐으니, 잘 챙겨주고. 아버지 니 오래비델꼬 병원 가서 집으로 전화할 테니 엄마 모시고 병원온나.알겠제! 울지 말고. 퍼뜩 집에 가거라" 오빠는 행정공무원이 되어 우리 면 의 면사무소에서 근무를 한 지 2년이 된 무렵이었다. 토요일 오전근무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던 중 술을 마신 공사차량 운전사에 의해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오빠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중환자실에서 처참하게 누워있었다. 엄마는 기절하셨다. 1년간 엄마는 오빠옆에서 병간호를 하 시었 고, 의사들도 가망 없다고 하였지만, 엄마는 사랑하는 아들을 살려내셨다. 그 후 오빠는 퇴원하여 일상으로 돌 아왔지만 , 심한 후유증으로 입원 과 퇴원 을 여러 차례 하게 되면서 우리 가족은 오빠가 아프면 병원으로 가야 하였기에, 늘 긴장하며 살았고 자연스럽게 정적인 생활이 되어버렸다. 새벽 여 명이 밝아 올 즈음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 다. 조용한 시골동네에 휘 잉! 휘 잉 ! 세차게 부는 바람 소리만 더해졌을 뿐이었다. 또각또각 어제 사서 신은 구두소 리에 옆집 개들이 자 다가 놀랐는지, 짖어 댔다. 조용히 나의 방문을 열어 옷가방을 내려놓고 코트를 벗어 놓으려고 할 때 엄마 가 들어오셨다. 자다가 일어나셨는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다듬으며 들어오셔서 , "일찍 도착했네. 아 부 지랑 오빠는 아직 잔다. 쉬고 있어라 이따가 밥묵자." 부엌에서 달그락거리 며 식사준비하는 엄마의 소리를 들으며 새벽 3시에 회사버스 를 타고 내려와야 했기에 피곤한 몸을 누이며 잠에 빠져들었다. 몇 시간 후 "엄마 졸업식 갔다 올게. 마치고 친구들과 놀다가 늦게 올 거니깐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라" "아침은 먹고 가야지 ! " 엄 마가 부르는 소리에도 아득하게 들릴만큼 빠르게 달려 나왔 다. 수원에서 한 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주 구정 연휴가 있어 열흘간 휴가를 지내고 수원으로 가면 되기에, 내일부터 가족들과 신나게 지내면 될듯 하였 다. 상업고등학교이기에, 3학년 2학기후반부터 취업을 하기 시작하였고 나와 친구 10명 은 수원에 있는 S그룹 반도체에 성적순과 면접을 통해 1월부터 취업을 한 상태였다. 2교대 주. 야간 근무 시스템이라 힘들 기도 했지만 학교 친구들이 있었고, 다른 학교에서 온 또래 친구들이 있었 기에, 피곤한 줄 모르고 재미있게 근무를 하였다. 졸업식행사를 위한 강당엔 후배들과 친구들이 모여있었다. 취업한 친구들은 벌써부터 성인이 된 향기를 품어내었다. 곱게 화장한 여자 친구 들이 많았으며, 머리에 살짝 웨이브도 넣었고, 굽 높은 구두도 신고 학교에 오기도 하였다. 남자아이 들은 깔끔하게 이발을 하고 깔 끔한 정장에 반짝반짝 구두까지 신고 와서 멋을 뿜어냈다. 어릴 때 신은 빨간 색 구 두 가 아닌 원피스 를 입고 하얀색 하이힐에 갈색 코트 와 전날 수원의 어느 미용실에서 머리드라이까지 하 여 졸업식 에 참석한 나였다. 공무원이었던 오빠는 면장님 을 모시고 학교졸업식 참석하러 왔다가 나를 보더니 "오래 놀지 말고 일찍 와라" 꽃다발을 건네주 고 면장님과 식장을 떠나갔다 . 친구들은 부모님과 가족들과 사진을 찍었다. 나는 오빠가 준 꽃다발은 있었지만 , 축하하러 와 준 가족들이 없었기에 멋쩍어 뒤로 물러나있었다. 나의 졸업식에 한 번도 부모님이 오시지 않았다. 국민학교 졸업식엔 아버진 군인의 신분이었고, 엄만 외갓집의 부고로 대구 에 계셨다. 휴가 나온 오빠와 작은언니가 축하해 주러 와서 짜장면을 같이 먹었고, 가난한 군인이 었 던 오빠는 막냇동생의 졸업 사진을 찍어주지 못했다. 중학교 때는 오빠의 사고로 부모님이 경황이 없으셨고, 고등학교땐 오시지 않을 거라고 생 각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오시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나의 졸업사진 은 가족과 찍은 사진이 없다. 졸업식을 마치고, 친구 몇 명과 선배오빠가 일하고 있는 대구에서 제법 유명한 나이트클럽으로 향하였다. 우리 이제 진 짜 성인이 네 ! 아이들과 함성을 지 르며 나이트클럽에 입성하였다. One Way Ticket (♤클릭 하 여 그 시절로 가보아요! 전 이 노래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Harlem Desire ( ♤ 클 릭해 보이소 ) 가족들이 없었던 쓸쓸한 졸업식이었지만, 누구보다 축하해 주는 나만의 졸업식 이어야 했기에, 그날밤 처음 가본 나이트클럽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