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위안짜리 친구

1997년 초 칭화원, 한 달 반 동안 배운 것

by권종현

내가 있던 1996년 겨울에서 1997년 초의 베이징은 격변의 한가운데였다. 수십 년 동안 1마오에 묶여 있던 버스 요금이 하루아침에 5마오로 올랐다. 당시 환율로 50원, 한국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돈이었지만 중국 사람에게는 다섯 배였다. 외국인에게만 쓰게 하던 태환권이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3환 바깥으로 4환 공사가 한창이었으며, 아시아 최대 규모라던 북경서역이 막 문을 연 때였다. 우리는 4환 공사 현장을 지나며 "재미 들렸나? 이러다 5환도 나오고 6환도 나오겠네" 하고 웃었다. 그 농담이 몇 년 안에 전부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북경서역은 지금 가봐도 국제공항급의 위용에 압도되는 곳인데, 그때는 그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는 외국인 유학생 기숙사에 배정됐다. 하루 2만 원쯤 하는 방이었는데, 3성급 호텔 트윈룸 정도의 서비스가 나왔다. 중국 학생들이 8인실을 쓰는 것에 비하면 초호화였고, 그들에게는 터무니없이 비싼 값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싼 값이었다. 밥도 그랬다. 중국 학생 식당에서는 한국 돈 백 원, 이백 원으로 배가 터지게 먹을 수 있었고, 유학생 식당에서는 수천 원을 내면 요리 한두 개가 나왔다. 같은 캠퍼스 안에 값이 다른 두 세계가 있었고, 우리는 그 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갔던 셈이다.


붐비는 식당과 고요한 식사 공간.png같은 캠퍼스 안의 두 식당

수업 말고도 하는 일이 있었다. 유학생들은 중국 학생과 개인교습을 했다. 칭화대 학부생은 한 시간에 8위안, 대학원생은 10위안쯤 줬고, 최상위 대학이 아니면 6위안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거래는 대개 오래가지 않았다. 서너 번 만나면 친구가 됐고, 친구가 되면 돈을 받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친구 몇을 얻었다. 8위안으로 시작해서 공짜로 끝나는 관계였는데, 돌이켜보면 그 시절 중국 사람들이 외국인을 대하는 방식이 그 안에 다 들어 있었다.

그만큼 우호적이었지만, 생각까지 같지는 않았다. 동북공정 같은 말이 나오기 훨씬 전이었는데도 역사를 보는 눈은 분명히 달랐다. 고대사부터 한국전쟁까지, 우리는 매시간 되지도 않는 중국어로 논쟁하고 설득하려 들었고, 결과는 늘 같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네가 잘못 알고 있다"고 말하고 끝났다. 그때는 그것이 답답했는데, 지금은 그 대화가 내 공부의 출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같은 사실을 두고 왜 다르게 아는가. 30년 뒤에 내가 논문으로 쓰고 회사 일로 재고 있는 질문이 그 기숙사 방에서 처음 나왔던 것이다.


심야 기숙사 지도 회의.png매시간 "네가 잘못 알고 있다"로 끝나던 대화

다섯 배 오른 버스 요금에 대해서도 친구들은 담담했다. 그때 대졸 사무직 월급이 800위안쯤이었을 텐데, 대부분 "그동안 너무 오래 쌌고, 나라에 필요한 조치"라고 받아들였다. 반대로 자부심은 넘쳤다. 기차가 몇 차례에 걸쳐 빨라졌다거나, 중국이 어떤 국제기구에 새로 가입했다거나, 시내에 입체교차로가 들어섰다는 이야기에 눈이 빛났다. 지금 눈으로 보면 뉴스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었다. TV를 켜면 북한보다는 낫지만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아나운서가 지도자들의 동정을 보도한 뒤 우리 뉴스에는 나오지도 않는 세계 방방곡곡의 소식을 전했고, 친구들은 그 나이 든 남녀 아나운서를 극찬했다.

나는 그때 그 자부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은 이미 올림픽을 치렀고 그해 OECD에 들어갔다. 입체교차로 하나에 기뻐하는 모습은 열세 살에 세운 "한국의 10년 전"이라는 가설을 그대로 확인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5환, 6환 농담도 같은 자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가 이미 지나온 길을 뒤따라오고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은 한 달 반 동안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그 뒤로 11년이 더 걸렸다. 2008년의 베이징에서였다.


1990년대 밤, TV 앞의 아이들.png5환도 6환도 나오겠네, 하고 웃던 해

그렇게 칭화원 안에서의 한 달 반이 지나갔다. 8위안짜리 친구들과 매일 싸우고, 두 식당 사이를 오가고, 4환 공사 현장을 보며 웃던 날들이었다. 그러나 베이징을 떠나기 전에 할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중국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다음 글은 그 첫 중국 여행 이야기다.


권종현 · ㈜망고스타코리아 대표 · 고려대 동아시아문화산업 박사과정. 글로벌 AI가 K브랜드를 어떻게 읽는지 조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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