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는 로켓을, 페라리는 아이폰 디자이너를 들였다.

판을 바꾸는 발상은 울타리 밖에서 온다

by정나영

2018년 2월 스페이스X는 팰컨 헤비 로켓에 일론 머스크의 빨간 테슬라 로드스터(Tesla Roadster)를 실어 우주로 쏘아 올렸다. 8년 뒤 테슬라는 순서를 뒤집었다. 2026년 10월 15일 새 로드스터를 공개하며 홈페이지에 이렇게 적었다. "로드스터를 로켓에 실었다. 이제 로드스터에 로켓을 넣었다." 자동차 회사가 신차의 핵심 기술을 자동차가 아닌 로켓에서 가져왔다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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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X 팰컨 헤비에 실려 우주로 향한 테슬라 로드스터 vs (2026) 테슬라 로드스터 (2026)


바로 아래에는 짧은 한 줄이 붙어 있다. "그러니까, 네, 날 수 있다(So yes, it can fly)." 과장이 아니었다. 미국 텍사스의 시연장에서 로드스터는 반원 트랙 꼭대기에 거꾸로 매달렸다가, 뒤집힌 채 공중으로 뛰어올라 자세를 바로잡고 착지했다. 지금까지 어떤 자동차도 보여 주지 못한 움직임이었다.


(2026) 테슬라 로드스터 공개 시연 영상


경쟁사의 신차를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닷새 뒤 베네데토 비냐 페라리 최고경영자(CEO)는 로드스터에 기술 10점, 연출 10점을 줬다. 이유는 그의 다음 말에 있었다. 페라리의 첫 전기차 루체(Luce)를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끼리만 일했다면 지금 같은 결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테슬라와 페라리는 같은 곳에서 답을 찾고 있었다. 자기 업계의 바깥이다.


로켓을 단 자동차

자동차의 속도에는 오래된 한계가 있다. 아무리 강한 모터를 달아도 차는 타이어가 땅을 움켜쥐는 힘 이상으로 달려 나가지 못한다. 자동차 회사들은 한계를 넘으려고 타이어와 모터, 차체를 끝없이 다듬어 왔다. 테슬라는 답을 자동차 밖에서 찾았다. 스페이스X와 함께 로켓이 우주에서 자세를 바꿀 때 쓰는 냉가스 추진기를 개발해 차에 달았다. 테슬라는 추진기가 타이어보다 4~5배 큰 힘을 낸다고 설명했다. 타이어를 더 좋게 만드는 대신 타이어에 기대지 않는 길을 택한 것이다.


물론 로드스터는 아직 많이 팔 수 있는 차가 아니다. 하늘을 나는 모델은 도로 주행 승인을 받지 못했고, 양산은 2028년 이후로 예고됐다. 판매보다는 상징에 가까운 차, 브랜드 전체에 후광을 드리우는 이른바 '헤일로(halo) 제품'이다. 2008년 1세대 로드스터가 전기차는 느리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며 테슬라를 알렸듯, 새 로드스터도 테슬라가 여전히 가장 대담한 자동차 회사라는 인상을 남기는 데는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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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디자이너를 부른 페라리

페라리에게 전기차는 정체성이 걸린 모험이다. 페라리를 페라리로 만든 것은 귀를 울리는 엔진 소리와 손끝에 전해지는 운전의 감각이었다. 전기차에서는 엔진 소리가 사라진다. 페라리는 첫 전기차의 답을 자동차 업계 바깥에서 찾기로 했다. 2021년부터 아이폰 디자인을 이끈 조니 아이브의 크리에이티브 콜렉티브 러브프롬(LoveFrom)과 손잡았다.


스마트폰 시대를 연 디자이너가 루체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화면을 줄이는 것이었다. 운전대에는 금속을 깎아 만든 버튼과 다이얼을 달고, 공조 장치는 손으로 젖히는 스위치로 조작하게 했다. 터치스크린은 내비게이션처럼 꼭 필요한 기능에만 남겼다. 엔진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서 운전의 감각만큼은 지키려는 선택이었다. 바깥에서 온 디자이너가 페라리다움을 지키는 쪽으로 기술을 덜어 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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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페라리 루체


공개 직후 반응은 냉담했다. 주가가 한때 8% 빠졌고, 전 회장과 정치권, 자동차 평론가들까지 나서 디자인을 비판했다. 하지만 정작 차를 사는 고객은 다르게 반응했다. 외신에 따르면 루체는 공개 두 달 만에 올해 생산 물량 약 500대가 모두 팔렸다. 페라리의 고객들은 바깥의 디자이너와 만든 첫 전기차를 받아들였다.


(2026) 페라리 루체 내부인테리어 영상


바깥을 들이는 세 가지 방식

자동차 밖에서도 판을 바꾼 발상은 대개 다른 업계에서 왔다. 운동화 회사 나이키는 충격 흡수라는 오랜 숙제를 로켓 엔진을 연구하던 항공우주 엔지니어 프랭크 루디의 아이디어로 풀었다. 기체를 채운 주머니를 밑창에 넣은 나이키 에어다. 제임스 다이슨은 쓸수록 흡입력이 떨어지는 청소기의 문제를 톱밥을 걸러 내는 제재소의 사이클론 탑에서 해결했다. 가구 회사 이케아는 스피커를 만들며 음향 업체 대신 신시사이저 회사 틴에이지 엔지니어링과 손잡았다. 업계 안에서 풀리지 않던 문제가 다른 업계의 원리를 만나 풀렸다.


바깥의 발상을 그때그때 협업에만 맡기지 않는 회사도 있다. 루이비통과 디올을 거느린 LVMH는 해마다 유럽 최대 기술 행사 비바테크에서 스타트업을 뽑아 시상하고, 파리에서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026년 수상 기업의 AI 영상 기술은 로에베와 펜디의 직원 교육에 쓰이고 있다. 수백 년 된 장인의 브랜드들이 바깥의 기술이 들어오는 문을 늘 열어 두는 것이다.


바깥을 아예 한 팀 안에 두는 방식도 있다. 일본의 아트 콜렉티브 팀랩은 아티스트와 프로그래머, 수학자, 건축가가 함께 작품을 만든다.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이 처음부터 한 테이블에 앉으면, 바깥의 발상을 찾으러 나갈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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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프랭크 루디와 나이키 에어 초기 프로토타입, (1990년대) 제임스 다이슨과 초기 다이슨 청소기


바깥의 발상, 안쪽의 질문

바깥의 발상이 힘을 갖는 이유는 관행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한 분야에 오래 있으면 일은 빨라지지만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을 의심하기는 어려워진다. 타이어 대신 추진기로 나는 차, 화면을 줄인 전기차, 봉투 없는 청소기는 모두 업계의 관행 밖에서 나왔다.


그렇다고 바깥의 발상이 저절로 성과가 되지는 않는다. 테슬라의 추진기는 화제를 모았지만 아직 도로를 달리지 못한다. 페라리의 선택이 고객의 지지를 얻은 것은 바깥의 디자이너가 운전의 감각이라는 페라리다움을 지키는 데 쓰였기 때문이다. 외부의 아이디어는 브랜드가 풀려는 문제와 맞닿을 때 비로소 힘을 얻는다.


러브프롬과 팀랩 같은 컬렉티브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 문제 앞에 모이면, 한 업계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인다. 앤와이가 크리에이티브 조직을 '앤와이 컬렉티브'로 꾸린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바깥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것과 고르는 것은 다른 문제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버릴지는 결국 브랜드가 지켜 온 코어가 정한다.


판을 바꾸는 발상은 바깥에서 오지만, 판을 지키는 기준은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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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s : Tesla · Reuters · Aviation Week · Dezeen · Ferrari · LVMH · team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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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나영
NWHY 대표이자 브랜드 컨설턴트. '브랜드 다음 NWHY'를 통해 지금 주목받는 브랜드의 움직임에서 다음의 WHY를 짚습니다. jeongnayo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