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스튜

간단하게 만드는 스튜

by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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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시는데, 머리 위로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공원에 매트를 깔고 앉으니 새소리와 가을을 즐기는 사람들의 소리가 아득하게 얹혔다.


요즘 들어 늘 하던 운동에서 조금 벗어나 보고 싶었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어느새 익숙한 자리에 머무는 것 같아서. 그래서 평소 다니던 센터 수업 대신 원데이 클래스를 찾아보다 한 강좌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날씨도 참 좋았던 긴 연휴 기간, 야외에서 즐기는 '선셋 요가'라는 이름의 클래스였다.


수업 장소는 어린이대공원.

늦은 오후 요가 매트를 들고 공원에 도착하니 나무 사이로 가을 햇빛이 비쳤다. 바람은 선선했고, 멀리서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렸다. 늘 답답한 실내에서만 하던 요가를 이런 계절, 이런 장소에서 한다니 시작하기도 전에 기분이 들떴다. 장소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1시간도 더 전에 도착했다.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긴커녕 오히려 즐겁고 설렜다. 바카라장을 넘기다 고개를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다시 바카라을 읽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속도가 달라지는 듯했다.


시간이 다 되어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을 보며 장소를 찾으러 다녔다. 시간에 늦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성격답게 이번에도 가장 먼저 도착했다. 처음 만난 선생님은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노을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찾으려 두세 번이나 자리를 옮겨주셨다.


하지만 선생님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노을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졌다.

천천히 몸을 풀며 붉게 물드는 하늘을 바라볼 생각이었는데, 수업이 시작될 즈음에는 해가 이미 넘어가고 있었다. 선셋 요가라는 이름에 걸맞은 풍경을 기대했던 터라 조금 아쉬웠다.


어둑해지는 공원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면 커다란 나무가 보였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서늘한 바깥 공기가 폐 안으로 들어왔다. 실내에서는 의식하지 못했던 바람과 풀 냄새가 동작 사이사이로 스며들었다.


평소라면 별생각 없이 지나갔을 동작도 그날은 다르게 느껴졌다. 매트 밖으로 시선을 돌릴 때마다 공원의 풍경이 들어왔다. 물론 모기 백 마리와의 싸움에서는 장렬하게 패배했지만.


평소라면 운동을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을 시간에, 나는 공원 잔디밭 위에서 천천히 숨을 쉬고 있었다. 비록 '선셋'요가는 아니었지만 어두운 밤, 풀향을 잔뜩 맡으며 한 요가는 참 좋았다. 아직 요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세를 완벽히 잡지는 못해도, 밤기운과 풀내음 속에서 온몸으로 수평을 잡던 그날은 쉽게 잊지 못할 하루가 되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지나간 건 지나간 대로 그냥 두세요."


완성하지 못한 자세를 억지로 바로잡으려 애쓸 필요도, 이미 지나간 노을을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었다. 요가 동작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이미 지나간 순간을 되돌리려 애쓰고, 뜻대로 되지 않은 일에 오래 마음을 쓰곤 하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날의 기분이 오래 남았다. 그래서였을까. 다음 날 아침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한강 공원으로 향했다. 혼자 요가 매트를 들고나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잔디밭 위에서 작은 동작들을 이어갔다. 전날의 경험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그저 다른 곳에서 몸을 움직이는 일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다시 해보고 싶었다.


요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얼마 전 친구와 들렀던 빵집의 토마토 스튜가 생각났다. 따뜻한 스튜에 빵을 곁들인 메뉴였는데, 집에서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다.


게다가 마침 며칠간의 여행을 다녀온 직후였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돌아온 덕에 배는 며칠째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이번 한 끼는 조금 가볍게, 하지만 대충 한 끼를 때우고 싶지는 않았다.


집에 있는 재료를 꺼내 스튜를 만들었다. 간단히 냉장고 속 재료를 한데 모아 끓이는 쪽에 가까웠다. 원래대로라면 생토마토를 사서 푹 끓여야 했지만 남은 건 토마토소스뿐이었다. 번거롭지 않게 만들 수 있겠단 생각에 토마토소스만으로 만들었다.



1. 토마토소스를 꺼낸다.

2. 물을 넣어 묽게 만든다.

3. 파프리카 가루를 추가한다.

4. 계란 한 개를 위에서 톡 깨뜨려 넣는다.

5. 계란은 젓지 않고 토마토소스와 함께 끓여낸다.

6. 다 된 스튜 위에 올리브오일과 치즈를 갈아 올린다.

7. 구운 빵을 토마토 스튜와 함께 곁들여 낸다.



토마토의 새콤한 향이 올라오고 재료들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자, 주방에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그릇에 스튜를 담고 빵을 올렸다. 빵을 한 조각 뜯어 스튜에 푹 찍었다. 숟가락으로 스튜를 떠먹다가 다시 빵을 집어 들었다. 물론 온라인카지노 가게에선 나보다 더 공을 들여서 만들었을 것이다. 약식으로 시판 소스를 사용했지만 맛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익숙한 일상을 바꾸는 데 필요한 건 생각보다 작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늘 하던 운동을 다른 장소에서 해보거나, 밖에서 먹었던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보거나, 평소보다 조금 천천히 걸어 보는 것.


가을은 아직 조금 더 남아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또 어디에 가서 몸을 움직여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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