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한동안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고 우리들에게 마른 인형 세트를 한 번씩 보내주셨던 기억 밖에는.
그렇게 5~ 6학년을 연립주택에서 살았다. 그 당시 할아버지 할머니는 바다가 있는 마을 쪽으로 이사를 가셔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며 보내고 계셨다. 주말이나 방학 때가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댁으로 가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때 할머니가 해주셨던 통조림 꽁치찌개가 생각나는데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니의 손맛은 정말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맛이었다.
그렇게 내 기억 속에는 슈퍼, 연립주택, 할아버지 할머니댁 이 세 가지가 남아있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 우리는 한 집으로 모이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고모 되시는 분이 혼자 살고 계신 집이었는데 바닷가 인근에 살고 계셨던 할아버지 할머니도 가계를 정리하시고 우리도 연립주택을 정리하고 노할머니댁으로 모두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 집은 기역자 구조에 넓은 마당이 있었으며 한쪽으로는 화단이 예쁘게 가꾸어져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오른쪽으로 보면 마루와 연결되는 현관문이 있고 문 옆 안방 앞으로는 포도나무가 있었다. 마루와 연결된 작은방과 안방, 미닫이 문을 사이에 두고 안방과 연결된 작은방, 작은방에 딸린 부엌과 연결된 작은 나무문이 있었다.
집 안쪽으로는 부엌과 연결된 작은 골목처럼 생긴 길을 지나 왼편으로 돌면 부엌이 딸린 방 하나가 있었고 맞은편으로 부엌이 딸린 두 개의 방이 있었다. 그곳을 지나 마지막에 방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 위에는 옥상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 집은 7개의 방이 있고 세 개의 부엌이 있는 집이었다. 맨 끝에 방도 지금 생각해 보면 바깥에 부뚜막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당시 부엌이 딸린 뒤쪽 두 군데에는 세를 살고 있었다. 부엌이 있는 두 개의 방이 딸린 곳에는 남자아이, 여자아이, 그들의 부모님 이렇게 4 가족이 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은 맨 끝에 있는 방을 사용하셨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마루와 붙은 방, 우리는 안방과 연결된 부엌에 딸린 작은방과 부모님 방에 흩어져서 사용했던 것 같다. 그 당시 다른 곳에서 지내던 고모도 함께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11 식구가 되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