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바카라에 사인을 해주고 생긴 일

‘보람’과 ‘은혜’, 두 이름이 내게 가르쳐준 것

by박승일







“바카라 출간 축하한다. 바카라을 서점에서 살 수도 있는데 작가 서명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 부탁 좀 하자. 15권만 사인해서 보내줄 수 있을까? 바카라값은 바로 입금해 줄게.”


“고마워요, 형님. 제가 서점에 가서 직접 구입한 뒤 사인해서 택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며칠 전 청주에 살고 있는 친한 형님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고마웠다. 한 권도 아니고 15권이나 구입하겠다니 말이다. 그것도 내 친필 사인이 들어간 바카라을 받고 싶다는 말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사실 작가인 나도 내 바카라은 서점에서 사야 한다. 이번에 출간하면서 2,000부 가까운 바카라을 인쇄했지만, 출판사로부터 선물로 받은 바카라은 10권이었다. 그마저도 받은 날 모두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다행히 사무실 가까운 곳에 서점이 있다. 직접 바카라을 구입하고 한 권씩 사인을 했다. 그리고 택배로 보냈다.


내가 쓴 바카라을 누군가 15권이나 구입하고, 거기에 내 사인까지 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 앞에 앉아 원고를 고치던 평범한 온라인 게임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서점에 내 바카라이 있고, 그 바카라에 내 이름을 적어 누군가에게 보내고 있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직접 바카라을 구입해 가져오는 동료들이 생겼고, 사인을 부탁하는 지인들도 하나둘 늘었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하고 고마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감정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불안감이었다.


'이렇게 자신 있게 사인까지 해줬는데, 막상 읽어보니 재미없다고 하면 어떡하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바카라을 출간하기 전에는 바카라이 나오기만 하면 모든 걱정이 끝날 줄 알았다. 원고를 쓰고, 교정하고, 제목을 정하고, 표지를 만드는 과정만 지나면 홀가분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바카라이 나오고 나서 새로운 걱정이 시작됐다. 이제는 내가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원고를 쓸 때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쓰면 됐다. 문장 하나가 어색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고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쇄된 바카라은 다르다. 이미 수천 권의 바카라에 같은 문장이 들어가 있다.


독자가 그 문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감동적인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상일 수도 있다. 그 사실을 알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마음이 복잡하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 자주 만나기 어려웠던 두 사람을 만났다. 나를 발견하자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각자 바카라 한 권씩을 내밀었다.


“사인 좀 해주세요.”


반가웠다. 그런데 각자의 이름을 쓰고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두 사람의 이름은 '보람'과 '은혜'였다. 참 묘한 우연이었다. 나는 요즘 바카라에 사인할 때 나름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바카라 제목이 <오늘도 무사히 경찰했습니다>이니 그 문장을 조금 바꿔 적는 것이다.


“오늘도 무사히 (이름)했습니다.” 그 빈자리에 바카라을 구입한 사람의 이름을 넣는다. 조금 장난스럽지만, 반응은 나쁘지 않다. 사람마다 자신의 이름에 담긴 의미가 있고, 그 이름은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의 삶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람'과 '은혜'였다. 두 사람의 이름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KakaoTalk_20261018_144755423.jpg이름이 '보람'과 '은혜'인 분들께 사인해 준 바카라


'보람.'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일을 한 뒤에 얻는 만족감이나 자부심을 뜻한다. 나는 지금 바카라을 출간하고도 보람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쓴 바카라을 누군가 직접 돈을 주고 구입한다. 서점에서 바카라을 찾아보고,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심지어 사인을 받고 싶다며 내게 바카라을 건넨다. 생각해 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 있는 일이었다.


20년 넘게 글을 썼지만 한 권의 바카라으로 세상에 내놓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았던 날의 기쁨, 첫 교정지를 받아 들고 느꼈던 막막함, 퇴근 후 늦은 밤까지 원고를 고쳤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 마침내 내 글을 읽겠다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몇 권이 팔렸는지, 독자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앞으로 얼마나 더 팔릴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바카라을 읽지도 않은 사람들의 평가를 미리 걱정하느라 지금 내 앞에서 웃으며 바카라을 내미는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은혜'. 은혜의 사전적 의미는 '고맙게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 엄청난 은혜를 받고 있었다. 처음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편집장은 내 글에 달리는 댓글과 주변 사람들의 응원이 인상 깊었다고 이야기했었다. 나는 그때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내게 가장 큰 자산이었다.


오마이뉴스에서 글을 읽어준 독자들이 있었다. 온라인카지노스토리에서 꾸준히 응원해 준 구독자들이 있었다. 글을 쓰다가 지칠 때마다 격려해 준 동료와 지인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댓글 한 줄을 남겼고, 어떤 사람은 주변에 내 글을 소개해 주었다. 또 어떤 사람은 내 바카라이 나온다는 소식에 먼저 구입하겠다고 연락해 왔다. 그렇게 많은 사람의 관심과 응원이 쌓여 지금의 바카라이 만들어졌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혼자 힘으로 바카라을 출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었기에 글을 쓸 수 있었고, 그 글을 읽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계속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글을 바카라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결국 내가 받은 것은 바카라을 출간할 기회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두 사람의 이름을 바라보면서 나는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사인을 해주는 사람은 나였지만, 정작 용기를 얻은 사람도 나였다. 누군가 내 바카라을 구입하고 사인을 부탁하는 이유가 반드시 유명한 작가의 바카라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에 대한 응원일 수도 있고, 경찰관이 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어쩌면 바카라 속에 자신과 비슷한 삶의 모습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수도 있다.


그 기대를 생각하니 두려움이 조금 달라졌다. 그동안 나는 독자들이 내 글을 어떻게 평가할지만 걱정했다. 그런데 정작 독자들이 왜 내 바카라을 집어 들었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경찰관이 실제 현장에서 어떤 일을 겪는지 궁금할 것이다. 누군가는 치매 어르신을 찾아 나서는 경찰관의 마음을 알고 싶을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경찰버스 안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의 일상이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바카라을 통해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조금 다르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에는 언제나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건 뒤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었다. 길을 잃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어르신이 있었고, 부모를 찾아 애타게 거리를 헤매는 가족이 있었다. 범죄 피해로 두려움에 떨던 사람도 있었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경찰관에게는 하루에도 여러 번 마주하는 신고 현장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하루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싶었다. 그것이 이 바카라을 쓰기 시작한 이유였다. 그래서 경찰관의 이야기이지만 경찰관만 읽는 바카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부모를 모시는 자녀도, 온라인 게임생활에 지친 사람도, 평범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누구라도 바카라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으면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씩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지금도 내 바카라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자 모두가 재미있다고 말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은 좋은 평가를 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부족한 점을 지적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받아들여야 할 몫이다.


다만 한 가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카라을 출간한 뒤 또 하나를 배웠다. 바카라을 쓴 보람은 바카라이 얼마나 팔렸는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카라을 쓰면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겠다고 했으면서 정작 바카라이 나온 뒤에는 내 마음만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앞으로도 독자들의 평가 앞에서 기뻐하거나 실망하는 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느꼈던 마음만큼은 잊지 않으려고 한다. 누군가 내 바카라을 펼치는 순간, 그 사람은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내게 건네는 것이다. 그 시간을 결코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오늘도 무사히 경찰했습니다>는 경찰관이 겪은 특별한 사건보다 그 현장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바카라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이웃의 삶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싶다면, 부디 이 바카라을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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