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면서 본 풍경은 서식지가 된다

by이윤서

어렸을 때 본 엄마는 늘 분주한 사람이었다.

재봉틀로 옷을 만들고, 식물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고, 베이킹을 하고, 취향의 가구나 그릇을 들이던. 심지어 엄마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집 구조를 바꾸곤 했다. 큰 가구들이 동서남북부터 대각선까지 방향을 트는 것을 볼 때마다 대체 저걸 혼자 어떻게 옮기는지 궁금해했다. 오랜 친구 정은은 바뀐 우리 집 풍경을 잘 알아채는 사람인데, 거실로 들어설 때마다 정은이 하던 말은 늘 같았다.


- 구조가 또 바뀌었네? 이모 언제 옮기셨대?


그 힘이 늘 궁금했다. 엄마도 일을 하던 사람이면서. 하교한 나와 남동생 매끼 다른 밥을 먹이던 사람이면서. 언제 그렇게 만들고 가꾸고 옮기고 치울까.

커가는 과정에서는 그런 걸 ‘굳이’ 하냐는 식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굳이 결린 어깨와 아픈 허리 두들겨 가면서까지 해야 할까. 지금 생각하면 한바탕 짐 옮기기를 마치고 침대에 풀썩 쓰러져있는 엄마가 못내 안쓰러워 보였던 것 같다. 안 하면 안 힘든 건데.


참 이상한 건 이젠 내가 그 일을 넘겨받았다는 것이다. (아, 엄마는 아직도 비슷하게 지낸다. 요즘은 캠핑에 빠져있다.) 2평이나 될까 하는 방에 어떻게든 다른 방향으로 침대를 욱여넣고 있는 내 모습에 엄마가 겹쳐 보였다. 한때는 번거롭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일을, 지금은 내가 일기를 쓰고 cd를 모으고 오늘의 집을 구경하고 그릇이나 바카라 따위를 대거 작은 방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엄마가 좋아하는 빈티지와 스타일은 조금 다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제2의 김혜영’이 들어온 것처럼 나는 내 방에서, 그녀는 나머지 공간에서 각자의 세계를 일구는 중이다. 점차 주인과 한 몸이 되어가는 내 방을 보면서 이게 내가 봐온 세계의 재구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힘은 노동의 형태가 아니라 환기의 과정이며 사용하면서 해소되는 것이었다는 걸 이젠 안다. 지금도 이토록 무용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일을 하고 있지 않나. 글 쓰는 힘의 원천은 그런 것 같다. 환기하고 해소하는 과정. 잘 사는 것도 비슷하다.


지금 나의 서식지는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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