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

제로일지라도

by장기표


아무리 작은 확률이라도 내가 먼저 그것을 부정하지는 말자.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수도 있고,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스스로 가능성을 믿는다면, 그 확률은 더 이상 완전한 0이 아니다.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남아 있다면, 나는 그 가능성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이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내 손으로 지워 왔을까.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에게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가능한 일이 나에게는 유독 어렵게 느껴졌고, 누군가가 당연하게 누리는 기회조차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처럼 여겼다. 아직 시도조차 해 보지 않은 일 앞에서 실패를 먼저 상상했고, 내가 가진 능력보다는 부족한 점을 들여다보는 데 더 익숙했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점점 작게 만들어 갔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원해서 선택한 태도라기보다 그렇게 자라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에 밴 습관이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겸손이라고 배웠고,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상처받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기대가 작으면 실망도 작을 테니까. 꿈이 크지 않으면 실패했을 때 무너질 일도 적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나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나의 가능성까지 함께 가두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려 한다. 나를 작게 생각한다고 해서 세상이 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도 아니고, 미리 포기한다고 해서 실패의 아픔을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가면, 언젠가는 실패보다 더 깊은 후회가 남을지도 모른다.


한번도 내 무대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내가, 이제는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나는 왜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왜 다른 사람에게는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토록 엄격한 기준을 들이밀었을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기도 전에 왜 안 될 이유부터 찾아왔을까.


물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간절하게 바란다고 세상이 반드시 응답해 주는 것도 아니다. 현실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고, 내가 아무리 애써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것과, 해 보지도 않은 일에 불가능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나는 이제 적어도 후자만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 낮은지 판단하는 일은 그 가능성을 향해 걸어가 본 뒤에도 늦지 않다. 지금의 내가 부족하다면 배우면 되고, 경험이 없다면 경험을 쌓으면 된다. 당장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의미 있는 일이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무대를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실패가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나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무대에 올라서야 비로소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될 수도 있다. 기대했던 만큼의 박수를 받지 못할 수도 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을 견뎌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순간이 두렵다는 이유로 무대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면, 나는 평생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나를 믿어 보고 싶다.


나는 작지 않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 온 것만큼 작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능력이 있을 것이고, 경험하지 못한 세상 속에서 새롭게 피어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모습만으로 나의 미래를 단정할 수는 없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나의 전부가 아니듯, 지금의 내가 가진 한계 역시 나의 마지막 모습은 아닐 테니까.


나는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믿으며 살아가고 싶다.


이 말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거나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선언이 아니다. 나에게도 충분히 시도할 자격이 있고, 나만의 것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으며,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걸어갈 권리가 있다는 믿음이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어떻든, 지금까지의 결과가 어떻든, 적어도 나 자신만큼은 나를 함부로 단정 짓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이제는 적어도 그런 마음으로 가슴을 펴고 살아 보자.


그리고 얼마 전, 엔플라잉의 「잔불」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노래를 듣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가장 밝게 빛나는 순간만을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잘 풀리고,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타나며,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순간을 인생의 빛나는 장면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어쩌면 삶을 진정으로 빛나게 하는 것은 그런 순간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직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작은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살아가는 순간. 몇 번이고 흔들리고 넘어지면서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하루일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 어쩌면 그런 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장면일 것이다.


「잔불」이라는 노래는 내게 지금 이 순간도 충분히 빛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아직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아니어도 괜찮다. 세상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화려하게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 작고 희미하게 남아 있는 불씨라도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면, 다시 불을 피울 가능성은 남아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얼마나 밝게 빛나고 있는지가 아니라, 내 안에 남아 있는 불씨를 내가 스스로 꺼뜨리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노래를 들으며 엔플라잉이 걸어온 시간과 그들의 서사도 함께 떠올랐다. 지금 우리가 듣는 한 곡의 노래 뒤에는 무대 위에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다 알 수 없는 수많은 시간들이 쌓여 있을 것이다. 기쁜 순간도 있었을 것이고, 마음처럼 되지 않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음악을 세상에 들려주기 위해 견뎌야 했던 시간과 그럼에도 계속 노래해야 했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모든 시간을 내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노래를 통해 전해지는 감정과 그 안에 담긴 시간을 상상하다 보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결과만으로 누군가의 삶을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어떤 순간에도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과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이상하리만큼 가슴 아리면서도 따뜻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잔불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향해, 누군가는 지켜야 할 사람들을 위해, 또 누군가는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자신만의 삶을 찾아 나아간다. 겉으로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보여도 각자의 마음속에는 쉽게 꺼뜨릴 수 없는 무언가가 남아 있다.


나에게도 그런 불씨가 있다.


그동안 현실을 살아가느라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해야 할 일을 해내고, 바카라임져야 할 것들을 바카라임지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정작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 돌아볼 여유조차 없어질 때가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꿈을 품고 있었는지 희미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희미해졌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내 안에 남아 있는 불씨를 다시 들여다보고 싶다. 그리고 그 불씨를 향해 조심스럽게 바람을 불어넣고 싶다. 당장 큰 불꽃을 만들어 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좋다.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고, 내일도 그 일을 이어 가며, 내가 원하는 삶에 조금씩 가까워지면 된다.


이제는 나를 믿어 보자. 내가 나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가능성을 다시 열어 주자. 아직 세상에 보여 주지 못한 나의 모습이 있다면, 그것을 꺼내 놓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보자.


누구보다 뛰어나야 할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보다 빨리 도착해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나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내가 먼저 부정하지는 말자. 내가 나를 믿지 못했던 시간만큼 이제는 나를 믿어 주는 시간을 만들어 가자.


언젠가 지금을 돌아보았을 때, 적어도 나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후회만큼은 남기고 싶지 않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앞으로도 수없이 흔들릴 것이다. 때로는 다시 나를 작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오늘의 다짐을 기억하고 싶다. 가능성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시도해 볼 것. 결과를 두려워하기 전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디딜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을 것.


내가 나를 믿는다고 해서 세상이 당장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 그 변화가 나의 선택을 바꾸고, 선택이 나의 행동을 바꾸며, 그렇게 쌓인 시간이 언젠가 지금과는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러니 이제는 가슴을 펴고 살아가자.


내 안에 남아 있는 잔불을 믿으며, 아직 오지 않은 나의 가능성을 믿으며.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먼저 나를 믿어야 한다.


가능성을 내 손으로 없애지 말자.


아무리 작은 확률이라도, 내가 스스로 0이라고 단정 짓지 않는 한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내 삶의 무대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내가 원하는 무대를 만들어 가면 된다.


그리고 언젠가 그 무대 위에 당당히 서서, 지금까지 나를 믿어 주지 못했던 시간마저도 나의 일부였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직 늦지 않았다. 내 안의 잔불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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