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면 시작되는 이야기

미련 없이 떠나는, 미련 때문에 떠나는

by히은

아직 떠나려면 일주일이 남았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지금, 계절 옷을 정리하면서 동시에 짐을 싸고 있다. 입지도 못할 겨울 옷들을 꺼내 걸고 여름내 입던 낡은 옷들은 여행용 캐리어에 넣었다.

벌써 3년째 겨울 옷을 입지 못했다. 조금만 찬바람이 불어도 스웨터가 입고 싶어진다. 캄보디아의 겨울도 꽤 춥지만 스웨터를 입을 정도는 아니다. 떠나기 전에 조금 더 추워지기를 바래본다. 한번 정도는 입을 수 있지 않을까.


짐을 싸면서 10여 벌의 옷을 버리려고 내놓았다. 오래전 캄보디아에서 산 원피스는 이미 색이 많이 바랬고 호주에서 산 수영복도 구멍이 숭숭하고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나는 태국에서 산 바지도 너덜너덜하다. 여행하며 사 입었던 옷들은 버리기 쉽지 않다. 그 옷에는 그날의 여행이 담겨있다.


너무 많이 입어서, 또는 안 입고 처박아 두어서 낡고 색이 바랜 옷들을 정리했다. 옷에도 이렇게 미련이 남아 미루다가 이제야 버리려고 분리해 두었는데 다시 한두 개는 원단을 잘라 써볼까 생각이 들어 다시 집어 들었다가 "아니다, 이러다 못 버린 옷이 많다" 싶어 다시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사는 건 쉬운데 버리는 건 대단한 결단이 필요하다. 어떤 물건엔 시간이 담긴다. 그 시간을 잡아두고 싶은 것일까.


23kg 가방에 짐을 채우면서 버릴 것도 챙길 것도 새로 살 것도 많다. 그렇게 많이 캄보디아를 다녔는데 아직도 짐을 챙길 때는 결정하지 못해 분주하다.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 무엇을 가져가지 말 것인가?


올해로 16년째 캄보디아를 오가고 있다. 지인들은 예전엔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냐며 물었는데 이제는 지겹지도 않은지 물어본다. 혹은 내가 아직도 캄보디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다.

최근 3년간은 캄보디아 <하비에르 예수회 학교>에서 매년 4~5개월씩 지내고 있다. 물론 그전에도 일 년에 2주에서 한 달 정도는 캄보디아에 갔었다. 일이 있든 없든.


2017년 캄보디아를 떠나면서 일 년의 한 번은 오겠다고 말했었다. 그때는 반티에이 쁘리업이 있었으니까. 나와 함께 살고 일하던 동료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반티에이 쁘리업은 2021년 문을 닫았다. 그래도 코로나 시절 2년을 제외하고 매년 캄보디아를 갔다. 누가 불러 주지 않아도.


올해는 짐을 꾸리며 생각했다.

나는 캄보디아에 애정이 넘치는 건가? 미련이 있는 건가?

이 정도면 습관처럼 가는 거지. 왜 나는 올해도 캄보디아행 짐을 꾸리고 있는 걸까?


2026. 10월 14일 작성

이번 캄보디아 일상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꾸준히 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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