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아빠가 불쌍해!

후회해! 그 순간을!

by어모쌤 손정화

우리 6남매는 엄마 아빠에게 각자가 진심이다.

우리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너네 집 같은 집 없어"

"집사님네 같은 집 없어"

우리는 각자의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그만큼 우리 6남매는 특별하게 엄마, 아빠를 챙긴다.


엄마, 아빠가 암 진단을 받지 않으셨던 때에도 우리는 매주 토요일이면 친정을 찾았다.

거의 매주 토요일 아무 일 없이 원가족이 모였다.

모두 가까이 살기도 했지만 그냥 당연한 일상이었다.

한 주라도 얼굴을 못 본 사람이 있으면 이상하리 만큼 당연한 만남이었고, 모임이었다.

그렇다고 언제 모여라 라는 약속을 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제일 먼저 온 사람이 "어디야? 나 엄마집 왔는데?" 하며 그다음 사람을 부른다.

그다음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나 엄마집에 왔는데 바빠?"

이런 식으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면 다 모이는 것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019년 6월 아빠가 폐암 4기 진단을 받으셨다.

그때부터 우리 6남매는 어벤저스가 되었다.

각자 자신이 잘하고 할 수 있는 것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첫째인 언니와 막내 남동생은 아빠 병원 통원 치료를 번갈아가며 맡아 하기 시작했다.

4번, 5번 동생은 아빠의 식단을 바카라임졌다. 매주 코스트코에 가서 부모님 1주일 드실 장을 봐왔다.

3번 동생은 검색에 능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데에 능숙해 폐암에 대한 모든 정보를 찾아 공유해 주고, 아빠에게도 정확한 사실 전달을 하며 병과 싸워 이겨나가실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2번인 나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실 수 있도록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드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역할을 했다. 집이 가장 가까워 부르면 바로 달려가는 역할을 했다.

우리 6남매는 순번을 정해 매주 토요일에 집 청소를 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역할을 나열한 것인데 이 밖에도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그런 우리 6남매가 아빠를 요양병원에 모시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시켜야만 했다.

2022년 여름 엄마도 암을 선고받으셨다.

난소암!

아빠 병간호 하시고, 마음 쓰시느라 몸 돌보시지 않으셔서 생긴 병이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빠의 폐암은 4기 진단을 받으셨음에도 뇌로 전이된 암도, 폐에 자리 잡은 커다란 암세포도 모두 초기에 방사선 치료로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 상태가 되었다.

아빠는 늘 그러셨다.

아픈 곳이 하나도 없는데 병원만 간다고!

항암의 과정이 어렵지 않으셨다.

항암약의 부작용이 있기는 했지만 고통을 호소하시지는 않으셨다.


엄마는 달랐다.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하셔야 했고, 독한 항암 주사를 맞으셔야 했다.

항암주사를 맞으시면 1주일은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애간장이 타들어갈 것만 같은 고통을 호소하셨다.

자식으로서 이게 맞는 것인지를 자꾸 혼자 되묻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살아서 무슨 권세를 누리려고 내가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와 같은 아픈 말을 뱉어내시는 엄마를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었다.


아빠를 더 이상 돌보실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되돌이표 같이 돌아오는 항암 기간이 엄마와 우리 6남매에게는 늘 고비였다.

2024년 여름 건강하시던 아빠가 폐에 흉수가 차셔서 입원을 하셨었다.

집으로 돌아오셔야 하는데 걷지 못하시는 아빠를 3층까지 계단을 이용해 모실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또 갑자기 응급 상황이라도 생기면 3층에서 어떻게 모시고 내려와 병원에 모시고 가냐며 집은 아니라 했다.

엄마가 항암주사를 맞으시고 일주일은 본인 몸도 지탱을 못하시는데 아빠가 오시면 아빠 병시중 하셔야 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우린 아빠가 요양병원에 가셔야 하는 이유를 서로가 서로에게 납득시켰다.


요양병원!

아빠는 겁쟁이다.

요양병원, 요양원에는 절대로 가지 않으실 거라고 평소에 늘 부탁처럼 말씀하셨었다.

아빠를 모실 요양병원을 집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깨끗하고, 가장 활기찬 곳으로 정하기 위해 우리 6 남매는 검색과 발품을 들였다.

아빠를 설득했다.

아빠가 요양병원으로 가시던 날!

난 몰래 울었다.

아마도 우리 6남매 모두 몰래 울었을 거다.


2024년 7월의 어느 날 아빠가 집에서 버스로 30분 정도의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아빠가 조금이라도 회복되시면 집으로 모시려고 이사를 계획했다.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이동이 편하실 테니까!

언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동으로 그 해 겨울 엄마가 이사를 했다.

아빠가 오시면 필요한 것들도 아빠 방에 채우며 우린 아빠를 주말마다 집으로 모셔오자는 계획을 세웠다.


처음 이사한 아파트로 아빠가 오신 날!

난 듣지 못했는데 동생이 전해 줬다.

"겁나 좋다! 옥황상제한테 내 명 좀 더 길게 해달라고 해라!"

탁 트인 거실로 들어서시며 이 좋은 집에서 좀 원 없이 살아보게 명을 길게 해달라고 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 첫 외출에서 다시 요양병원으로 돌아가시던 날!

아빠가 갑자기 고열이 나셨다.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갔고 잠시 또 입원을 하셔야 했다.


우리 계획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요양병원에 가신 순간부터 아빠는 몸을 잘 움직이지 않으셨다.

집에서는 엄마 등쌀에 못 이기셔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걷기 운동을 하러 나가셨는데 귀찮게 하는 사람이 없으니 침대에서만 생활하셨다.

점점 근력이 떨어지시는 것을 보고 알면서도 뭘 어찌해드리지 못했다.

조금 좋아지시면 집으로 모시고 오겠다는 계획이 무산되었다.


처음 요양병원에 가셔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내가!

요양병원에서 조금 좋아지셨을 때에는 동생이!

아빠를 모시고 집으로 오자는 말을 했을 때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으로 모시고 오고 싶지 않은 자식이 누가 있을까?

모시고 오면?

그 말을 꺼낸 사람이 뭘 할 수 있기는 하고?

온통 언니가 다 하게 될 일이었다.

우린 말만 하고 정작 엄마와 아빠를 곁에서 돌봐드리고 하루 종일 함께 하는 것은 언니니까!

누구도 언니에게 그걸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린 서로가 서로를 설득했다.


6남매가 각각 주 2회씩 요양병원으로 아빠를 뵈러 갔다.

나와 언니는 평일 낮이나 오후에! 동생들은 주말, 토요일 일요일에!


어느 날! 다리에 힘이 없으신데 새벽에 혼자 일어나 움직이시려고 하니 간병인이 낙상이 걱정된다며 침대 난간을 묶어 아빠가 움직이지 못하시게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빠를 뵈러 가보니 침대 양 옆 난간이 흰 무명천 같은 것으로 묶여 있었다.

그때부터 아빠는 침대에서 스스로 한 번도 내려오지 못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후회되고 화가 나는 일이다.

건강하셨고, 멀쩡하셨는데...


남편이 하늘나라 간 다음날!

그러니까 내가 남편 입관식을 하던 그 시간에 아빠가 돌아가셨다.

드라마에서나 볼만한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다리가 풀려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아주버님과 서방님이 부축해서 일으켰다.

작년 겨울 그렇게 난 하루 사이에 두 번의 장례를 치렀다.


남편이 마지막 입원해 있던 한 달간 아빠를 뵈러 못 갔었다.

아빠를 마지막으로 뵌 날이 언제인지가 생각나지 않아 통곡했다.

그렇게 집에 오고 싶어 하셨는데...

그때라도 잠깐이라도 아빠를 모시고 올 걸...


"언니! 아빠가 불쌍해!"

동생이 아빠를 모시고 오고 싶다고 말했을 때!


죽음은 후회와 같이 다닌다.

남은 자에게 자꾸 후회가 쌓인다.

"아빠 돌아가신 그 주 월요일에 아빠 뵈러 갈까? 생각났을 때 갈걸!"


슬퍼하는 언니, 동생에게 위로의 말을 준다.

"그래도 우리 아빠 하나도 안 아프시고 하늘나라 가셨잖아! 암 환자 원래 고통 속에 힘들어하다가 하늘나라 가는데 우리 아빠는 진짜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안 아프셨네"


"아빠! 천국에서 만나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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