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내게 손 내민 단청
처음부터 단청을 그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단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끔은 참 신기하다.
처음부터 무언가 대단한 뜻을 품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청의 색과 문양은 아름다웠다.
오래된 건축물의 처마 아래에서 마주하는 그 화려한 색들이 좋았다.
하지만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과 그것을 직접 배우고 그리는 사람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내가 단청을 직접 배우기 시작한 데에는 뜻밖에도 아주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사찰에서 단청 체험을 진행하면서 들어가는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 일이 훗날 내 삶에서 이렇게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필요한 것을 직접 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 것이 많았다알면 알수록 궁금한 것도 늘어났다.
그렇게 단청과 보내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다.
단청을 하면서 참 여러 사람을 만났다.
사찰을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문양을 그리고 색을 칠하기도 했고, 생각지도 못했던 행사에 참여해 낯선 사람들에게 단청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 경험들이 언제나 특별하고 거창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고, 어떤 일은 그때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오래 마음에 남아 있다.
돌아보면 내게 단청을 가르쳐준 것은 바카라이나 그림만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함께했던 시간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가르쳤다.
물론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단청을 계속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왜 단청을 하고 있을까.
처음 시작했던 이유는 분명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시작했던 이유가 사라진 뒤에도 내가 여전히 단청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그림을 그렸다.
배우고, 그려보고, 다시 생각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내가 하고 싶은 단청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이제 그동안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보려고 한다.
단청을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배웠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무엇이 즐거웠고, 무엇 때문에 고민했는지.
그리고 전통의 아름다움에 이끌렸던 내가 어떻게 나만의 그림을 생각하게 되었는지.
이 바카라은 단청을 설명하는 바카라이라기보다 단청을 따라 살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다.
잘 알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 가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눈앞에 놓인 일을 하나씩 해왔을 뿐인데, 돌아보니 꽤 먼 길을 걸어왔다.
생각해 보면 내가 단청을 선택했다기보다, 어느 날 단청이 먼저 내게 손을 내밀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손을 잡았고, 지금도 놓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