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와 걷는 대목장

by라이테

추석 대목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오일장에 간다.

대형마트의 온갖 특가 행사도 어머니의 재래시장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 비좁은 통로에서는 아슬아슬 비켜서야 하고, 전동 휠체어라도 만나면 무거운 장바구니를 든 채 그 뒤를 한참 굼뜨게 따라가야 했다. 그래도 반드시 재래시장에서 사야 하는 품목이 있었다. 품목에 따라 재래시장과 대형마트를 가르마 타듯 나누어 장을 본다. 대목 준비는 언제나 오일장에서 시작된다.

이른 아침부터 어머니와 대목장으로 향했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다 자그마한 꽃밭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두 평 남짓한 꽃밭이 오목조목 알뜰하게 가꾸어져 있어 모녀의 감탄은 한동안 그칠 줄 몰랐다.

모과나무가 담장 밖으로 뻗은 집 앞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드니 채소 노점이 시작되었다. 먼 마을에서 온 농산물들이 주인을 따라 나와 새색시의 색동저고리처럼 울긋불긋했다.

쪽파 껍질을 연신 벗겨 단을 만드는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에는 순금 가락지가 번쩍번쩍했다. 얼마나 이른 시간에 나왔을까. 옆에 앉은 이에게 새참을 권하며 웃는 촌부의 좌판에는 푸성귀가 오종종하면서도 소담스럽게 놓여 있었다.

얼갈이배추 묶음 앞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5000원’이 적혀 있었다. 가격표로 쓰인 종이는 주인의 주소가 버젓이 드러난 전화요금 고지서 봉투였다. 골목 양쪽 촌로들의 좌판마다 그렇게 생활의 흔적이 묻은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다섯 골목이 만나는 지점에는 가져오는 것이면 무엇이든 튀겨 주고 볶아 주는 뻥튀기 가게가 있었다. 우리말이 아직 서툰 외국인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돕는 손놀림이 재빠르고 인사도 밝았다.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걷는 것은 마음이 울퉁불퉁해지는 일이었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그 모습을 마음에 새겼다. 딸보다 더 새까만 머리카락을 보면 마음이 가뿐해졌다가, 목덜미 아래로 둥글게 굽은 등을 바라보면 멍든 사과처럼 시큰했다. 해가 갈수록 등은 조금씩 더 굽어 갔다.

굽은 등허리로 균형을 잡느라 두 팔은 늘 몸 뒤로 처져 있었다. 걸을 때에도 팔을 앞뒤로 휘휘 내젓지 못했다. 근육이 빠져 앙상해진 팔에는 도무지 살이 붙지 않았다. 지병 탓에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한 까닭이었다.

힘줄이 불거진 팔뚝으로 한창 일하던 시절, 어머니는 자가용도 없이 먼 길을 이고 지고 다녔다. 그 덕에 사남매가 장성했다. 머리에 이고 팔에 들었던 보퉁이의 무게만큼 어머니의 청춘과 기력도 빠져나갔다.

애지중지 외아들로 자란 아버지와 여섯 살에 친어머니를 잃고 새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자란 어머니는 살림과 가족을 돌보는 방식이 달랐을 것이다. 결혼 뒤 육아와 가사는 대부분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머니가 몸져누웠을 때조차 아버지가 밥상을 차리던 기억은 거의 없다.

보폭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어머니가 앞서 걷고 내가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며 뒤따르다 보면 금세 자리가 뒤바뀌었다. 걷다 뒤돌아보면 어머니는 오 미터쯤 뒤처진 채 어서 가라고 손짓했다. 그러고는 굽은 허리를 뒤로 힘껏 펴며 말했다.

“아이고, 허리야.”

턱이라도 만나면 수레를 끄는 딸이 제대로 올라서는지 끝까지 지켜보았다. 이깟 턱이야 문제없건만, 어머니 눈에 반백을 넘긴 딸은 아직도 조심하라고 일러야 하는 아이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다시 어머니의 뒤를 따라 걸었다. 닳을 대로 닳은 신발 뒤축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 신발 안 버리고 또 신으셨어요?”

낡은 신발을 보니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장터에서 볼멘소리를 할 수는 없어 마음을 눌러 가며 말했다.

“멀쩡한 신발을 왜 버린댜. 이 신발이 젤 편하당게. 아직 신을 만혀.”

어머니는 ‘시장표’ 그 신발만 고집했다. 가벼운 운동화나 밑창의 요철이 군화만큼 깊은 신발을 사 주어도 어머니의 손이 가는 것은 언제나 시장표 단화였다. 새 신발은 한두 해쯤 상자 안에서 묵혔다가 신던 것이 다 닳아야 비로소 나왔다. 아끼지 말고 신으라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집에서 그 신발을 순간접착제로 붙일 때마다 나는 한숨을 푹푹 쉬었고, 어머니는 딸의 낯빛을 살폈다. 그 눈길이 또 영 마음에 걸렸다.

걸음은 비척비척했고 뒤축은 자꾸 땅에 끌렸다. 바른 걸음걸이를 알려 준들 그대로 할 수 있으랴. 노쇠한 몸은 마음을 따라주지 못했다. 모녀는 마주 보며 헛웃음만 지었다.

장터를 누빌수록 수레는 차츰 버거워졌다. 수레를 가득 채우고도 장바구니를 하나 더 꺼냈다. 어머니는 딸의 손에서 기어이 장바구니 하나를 받아 들었다. 허리가 아파 오래 걷기도 수월하지 않으면서 팔 아픈 딸 걱정부터 했다.

“내가 장바구니 맡을 테니 지갑만 잘 갖고 계시다가 물건값만 치러요.”

그 역할에는 모녀의 마음이 척 맞았다. 어머니는 셈이 빠르고 빈틈이 없었다.

“명절에 반찬 뭐 해 먹을래?”

“엄마가 알아서 사세요. 내가 뭘 알아요?”

알아도 모르는 체했다. 어머니가 고른 것을 먹고 싶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굽은 등이 조금은 펴지는 듯했다.

장을 다 보고 나서야 딱 한 가지를 말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찹쌀 도넛이었다.

“엄마, 찹쌀 도넛 사 줘요. 우리 애들이 도넛 좋아하잖아요. 좀 사다 주려고요.”

그러면 어머니는 외손주들을 위해 지갑을 푸지게 열었다. 나는 아이들을 핑계 삼아 어머니가 좋아하는 찹쌀 도넛을 넉넉히 샀다. 몸에 좋은 것만 챙기기보다 때로는 입맛 당기는 것을 넉넉히 먹게 하는 편이 더 살뜰했다.

명절 음식 만들 걱정은 나중 일이었다. 묵직해진 장바구니를 나누어 들고 어머니와 대목장을 나섰다.

돌아가는 길에는 어머니의 걸음에 내 걸음을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