벅찬 희망의 이야기
사내아이를 출산했다는 소식에 어머님은 분만실 앞 복도에서 춤을 추셨다.
평소 체통을 중히 여기시던 어머님이 남의 이목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덩실 어깨춤을 추신 것은 4대 독자 귀한 손주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비로소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하는 중대한 숙제가 마무리되었다.
첫째로 딸을 낳았던 내게 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효도를 한 셈이었다.
아들은 잘 먹고 잘 자는 순한 아이였다. 어찌나 잘 웃던지, 아이의 까르륵거리는 웃음소리는 온종일 집안 구석구석을 굴러다녔다.
물고 빨며 귀애하시던 시부모님은 손자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옆에 끼고 주무셨다.
다행히 버릇없이 자란 것 같지는 않았다.
학교 공부도 곧잘 해서 한동안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학부모 모임에 가면 묘하게도 아이 성적에 따라 엄마들의 서열이 정해지는 분위기였다. 내 옆으로 엄마들이 붙어 앉아 공부 비결을 묻기도 했다.
우쭐해진 나는 분위기에 휩쓸려 겸손함을 잃고 말았다. 은연중에 잘난 척하면서 속물근성을 드러냈는지도 모른다.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함께 걷던 분이 건넨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전 다시는 이런 모임 참석 안 할 거예요. 이쁘기만 한 멀쩡한 내 자식이 이런 모임만 다녀오면 미워지거든요. 괜히 남의 자식과 비교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려고요."
생각 없이 쏟아낸 내 쓸데없는 말들이 혹여 상처가 되었을까 마음이 쓰였다. 내가 쏟은 말을 죄다 쓸어 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자랑스럽던 아들은 간 데 없이 사라졌다.
딱히 이유도 없었다. 마치 심술 맞은 마녀가 마법의 지팡이라도 휘두른 것 같았다.
눈빛부터 달라진 아이의 몸속에는 전혀 다른 영혼이 들어앉아 있었다.
아들은 공부를 놓았고 나는 아들을 놓았다.
자랑할 거리가 없어지자 자연스레 학부모 모임에도 발길을 끊었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말수가 줄어들었다.
새들의 지저귐도 시끄럽게만 들렸고, 시리도록 파랗던 하늘도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의 찬란했던 한 세상이 닫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근 성당에서 열린 학부모 강연을 찾았다.
강사는 두 자녀를 키운 경험담을 풀어놓았다.
한때 크게 엇나가다가 극적으로 정신을 차린 둘째 아들의 반전 성공담이 주를 이뤘고, 딱히 내세울 것 없는 큰아들의 이야기는 그냥저냥 밥 먹고 사는 정도라며 짧은 웃음으로 어물쩍 넘겨버렸다.
그런데 나를 사로잡은 것은 화려한 둘째가 아닌 큰아들의 이야기였다.
제 밥벌이를 하고 산다는 말.
그 말은 내게 지푸라기가 아닌 굵은 동아줄이 되어 내려왔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희망이 생겼다.
나는 동아줄을 부여잡았다. 제 손으로 밥벌이만 제대로 한다면, 더 이상 아들에게 욕심부리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대입을 치른 아들에게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학교를 권했다. 확실한 기술 하나 익혀두면 적어도 먹고사는 걱정은 안 해도 되리라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정직한 땀방울에 대한 대가는 확실히 보장되리라 기대하면서, 나는 타인의 시선 대신 실리를 택했다.
아들은 군말 없이 내 의견을 따랐다. 그동안 부모 속을 태우며 공부를 소홀히 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뜻이라고 했다. 늦게나마 철이 든 것 같아 고마웠다.
아들이 처음으로 배운 기술은 용접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제 적성에 맞고 매우 흥미롭다며 배움에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자격증도 단번에 따냈고, 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취업한 뒤로는 회사를 우선하는 성실한 자세로 인정받는 일꾼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가끔씩 마주하는 아들의 붉게 그을린 얼굴은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했다. 하지만 그 안쓰러움조차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집안 행사로 친지들이 모인 날이었다. 먼 친척 한 분이 아들에게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모인 이들의 시선이 아들에게 쏠리자 나는 괜히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아들은 의아해하는 친지들 앞에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직업을 이야기했다.
남들 보기에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촌들 사이에서 내 아들이 혹여 기죽을까 걱정했던 내가 오히려 부끄러웠다.
아들에게 자신의 일은 남들보다 '못한 일'이 아닌 그저 '다른 일'일 뿐이었다.
아들의 당당함에는 돌아가신 어머님의 영향도 컸던 것 같다.
4대 독자인 데다 한집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어머님께 아들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집안의 자랑거리인 국내 최고 명문대를 수석 졸업한 손주보다 내 아들을 더 치켜세우신 어머님의 지극한 사랑은 아들의 마음에 단단한 자존감을 세워준 모양이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더없이 좋은 짝을 찾아 가정을 꾸린 아들은 이제 아들 둘을 둔 어엿한 아빠가 되었다.
애교 가득한 딸을 기대했던 아들 내외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남겠지만, 하늘에 계신 어머님은 그곳에서도 더덩실 춤을 추고 계실 것이다.
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다 기적 같다. 제 몫의 삶을 선하고 반듯하게 살아내는 아들이 이제는 자랑스럽다.
지난날, 내가 잡았던 동아줄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기대와 욕심을 다 내려놓게 하며 나를 주저앉혔던 아들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고 진짜배기 행복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만약 아들이 아무런 고비 없이 평탄하게 자라 누구나 부러워할 성공을 거두었더라면, 내가 누리는 지금의 행복과 깊은 감사함은 없었을 것이다.
끝없는 욕심으로 늘 무언가를 아쉬워하며 만족할 줄 모르는 헛헛한 부모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누군가와 아들 이야기를 나눌 때면 다시 말이 많아진다. 주저함이 없다.
예전 강연에서 들었던 큰아들처럼 그냥저냥 밥 먹고 살 뿐이지만, 나는 그분처럼 감추듯 지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에 당당히 내놓고 자랑한다. 벅찬 희망의 이야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