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포스터 만들기, 대학 강의하며 확인한 한 가지

인덕대학교 AI 포스터 특강·멘토링 회고, 그리고 신작

by엘리사
디자인 비전공자 학생들도
그럴듯한 AI 포스터를 만들 수 있을까?


올해 여름은 인덕대학교 학생들과 보냈다. 「2026학년도 글로벌 트렌드 콘텐츠 역량 강화 프로그램」에서 AI 포스터 제작 트랙을 맡아, 6월에 특강으로 먼저 인사를 했고 7월 마지막 금요일부터 8월 셋째 금요일까지 매주 세 시간씩 네 번의 멘토링을 이어 갔다. 숫자로 적으면 짧아 보이는데, 금요일이 올 때마다 한 주가 이렇게 빨랐나 싶었다.


이 프로그램은 작년에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 첫해에는 해외 포스터 비엔날레 수상작을 초청해 보여주고 특강을 듣는, 참여자도 디자인 전공자가 대부분이었다. 올해는 여기에 AI 트랙이 생기면서 문이 꽤 넓어졌다. 디자인과가 아닌 학생도 신청할 수 있었고, 포토샵을 한 번도 열어 본 적 없는 학생도 자기 포스터를 만들어 전시까지 해 보자는 게 목표였다.





디자이너 사라진다는 호들갑 금지!


멘토링에 앞서 전 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두 시간짜리 특강이 한 번 있었다.


새 AI 모델이 업그레이드 될 때마다 디자이너의 일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말이 심심찮게 SNS에서 돌아다닌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말이지만 강의실에 앉은 학생들 중에는 그런 불안을 안고 온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프닝은 조금 반대로 가 보기로 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보면, 도구가 좋아질수록 자기 생각을 가진 사람의 자리는 오히려 더 또렷해지더라는 이야기로.



강의에서 내가 가장 강조한 문장은 이것이었다.

“AI는 내 사고를 확장하는 파트너이고, 진짜 작품은 그 너머에서 시작된다.”



특강 후반부에는 내가 실제로 포스터 한 장을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줬다. 키워드를 뽑고, 무드보드를 만들고, 스토리를 입히고, 미드저니와 GPT와 나노바나나 중 무엇을 어디에 쓸지 정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서 마무리하기까지. 작업 과정을 통째로 보여주는 건 남에게 바카라상 서랍을 열어 보이는 기분이라 늘 조금 민망하다.




마지막 슬라이드에는 이렇게 적었다.

가장 좋은 출발점은 트렌드가 아니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다.




화면 속 그림이 벽에 걸리기까지


멘토링 첫날, 미드저니를 처음 켜 본 학생이 여럿이었다. 인터페이스를 설명하는 동안 표정이 반쯤 굳어 있던 학생들도 막상 엔터를 누르고 나서는 눈이 동그래졌다. 조명도 그럴듯하고 질감도 살아 있는 이미지가 몇 초 만에 뜨니까. 몇 년 전 내가 처음 미드저니를 켰을 때 딱 그런 얼굴이었을 것이다.


툴의 장벽은 정말로 낮아져 있었다.



학생들이 자기 경험을 꺼내고, 메타포를 고르고, 이미지의 구도와 색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쁜 결과물을 그냥 사용하는 대신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요”라며 다시 만드는 학생도 생겼다.


멘토링 중


비전공 학생이 브랜드 심벌을 만들고, 포스터와 굿즈까지 연결해 하나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며 꽤 놀랐다.


미적 감각이란 마치 '윌리 웡카의 골든티켓'처럼 일부 사람에게만 지급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사례를 보고, 차이를 비교하고, 왜 좋은지 말해보고, 직접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면 감각도 자란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나오는 '골든 티켓' - 이미지 출처: 지디넷코리아


물론 네 번 만에 학생들 모두가 천재 크리에이터가 되는 기적까지 일어나지는 않았다. 대신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를 발견하는 눈이 생겼고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프로세스가 생겼다. 나는 그 변화가 훨씬 현실적이고 반가웠다.


돌이켜 보면 네 번의 금요일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프롬프트 요령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그림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걸 그대로 그리지 말고, 뭐에 빗대 볼까요?"


질문에 답을 찾은 학생들은 그다음부터 속도가 붙었다. 사람을 상품처럼 평가하는 슬롯를 컨베이어 벨트와 인형뽑기 기계로 풀어낸 학생이 있었고, 새로운 시작 앞의 두려움을 선인장 숲을 지나는 아이의 일러스트 연작으로 만든 학생도 있었다. 다들 같은 도구를 썼는데 도착한 곳은 전부 달랐다.


좋은 도구를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어디로 데려갈지 정하는 일이다. 학생들은 여행과 슬럼프, 기후 위기와 딥페이크, 브랜드와 취향처럼 저마다 다른 출발점을 작품으로 발전시켰다.


같은 AI를 사용해도 결과가 전혀 다른 이유는
각자 보고 있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1:1 멘토링 중


후반 멘토링은 전시를 위한 인쇄 디테일의 시간이었다.


같은 이미지를 AI로 여러 번 고치면 화질이 뭉개질 수 있다는 것

화면에서 멋있던 어두운 부분이 인쇄하면 뭉칠 수 있다는 것

출력 파일은 CMYK로 바꿔서 저장해야 한다는 것


등등..


마지막 주에는 해상도가 모자란 파일 몇 개를 받아 개인적으로 구독하고있는 유료 업스케일 툴로 직접 키워서 주기도 했다.


모니터 안에서 완성된 것 같던 그림이 종이 위의 작품이 되기까지, 생각보다 챙길 게 많다. 학생들 대부분이 그 과정을 처음 겪는 거라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만든 작품들이 지금 인덕대학교 은봉관 1층 복도에 걸려 있다. 매니저님은 전시 공간이 다소 소박하다고 미리 말씀해 주셨는데,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풀고싶은 이야기가 한 컷의 작품이 되어 본인의 이름과 함께 벽에 걸려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엔 내 차례


이 전시에는 학생들 작품 옆에 강사들의 작품도 함께 걸린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나도 신작을 내기로 했다.


나는 그동안 사람이 아닌 것에 얼굴을 주는 작업을 해 왔다. 브랜드를 사람으로 그려 보기도 했고, 김밥과 빙수와 불닭볶음면을 하이패션 화보의 주인공으로 세워 보기도 했다. 얼굴이 생기면 그 대상의 성격이 갑자기 가까워지는 게 좋아서, 꽤 오래 그 방식에 빠져 있었다.


이번에는 그걸 한번 뒤집어 보고 싶었다. 얼굴이 없는 것에 얼굴을 주는 대신, 처음부터 얼굴로 태어난 것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그렇게 떠올린 게 탈이었다.


봉산탈춤 - 출처: 나무위키


탈은 얼굴을 가리고, 입을 연다

탈춤은 원래 꽤 짓궂은 무대였다. 계율을 어긴 승려와 거들먹거리는 양반이 탈을 쓴 광대들 앞에서 신나게 놀림감이 됐다. 맨얼굴로는 차마 못 할 말을 탈 뒤에서는 할 수 있었던 거다. 얼굴을 가리는 물건이 오히려 입을 열게 해 준다는 게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 탈을 쓰고 살까.


우리는 옷과 장신구로 자신을 표현한다. 취향을 보여주고, 소속과 지위를 드러내며,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조정한다. 자신감을 보여주기도 하고, 불안을 포장하기도 한다. 잘 차려입은 날의 나는 분명 나이지만, 동시에 내가 선택한 하나의 역할이기도 하다.


나만 해도 아침마다 옷장 앞에서 한참 서 있는다. 오늘 누구를 만나는지, 어디에 가는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 계산하면서 옷을 고르고, 가방을 고르고, 귀걸이까지 고른다.


과거의 탈이 역할과 욕망,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는 얼굴이었다면 오늘날의 의복과 장신구는 신분과 취향, 욕망과 불안을 감추고 드러내는 또 하나의 탈이 아닐까.


이 생각에서 《현대의 탈》 시리즈를 시작했다.


한국의 무형유산인 탈과 탈춤 문화에서 색과 형태, 패턴과 상징을 가져오되 전통 탈을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았다. 각 탈의 특징을 해체해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 장신구의 언어로 옮겼다.


이 시리즈의 시작으로 봉산탈춤의 탈 세 개를 골랐다.







목중 탈, 숨길 생각이 없는 욕망


현대의 탈 – 목중, 2026, Elissa

목중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주홍빛 얼굴과 금색 원형 장식, 흰 눈, 그리고 청록색의 풍성한 질감이었다. 이 강렬한 색과 형태를 현대적인 패션 이미지로 다시 구성했다.


봉산탈춤의 목중은 계율을 깨고 자신의 파계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인물이다. 종교적 위선과 타락을 풍자하는 동시에,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욕망의 해방을 보여준다.


목중 탈의 풍성함과 부피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주홍색과 금색은 더 화려하게, 청록색의 질감은 더 풍성하게 부풀렸다.




말뚝이 탈, 크게 부풀려서 웃기기


현대의 탈 – 말뚝이, 2026, Elissa

말뚝이탈의 짙은 초록 얼굴과 흰 점과 선, 짚모자의 재료성은 전혀 다른 패션 이미지로 옮겨졌다. 짚의 질감은 거대한 리본 헤드피스가 되었고, 얼굴의 과장된 조형은 팝적인 비례와 실루엣으로 확장됐다.


말뚝이는 웃음과 익살로 권위를 무너뜨리는 인물이다. 정면으로 싸우기보다 능청스러운 말과 과장된 행동으로 양반의 허세를 드러낸다. 주인을 모시는 척하면서 주인을 대놓고 놀리는, 탈춤판의 분위기 메이커 같은 인물이다. 말뚝이가 한마디 할 때마다 양반의 체면이 조금씩 무너진다.


말뚝이 작업은 세 작품 중 가장 유쾌하다. 거대한 리본과 과장된 비례는 우스꽝스러운 동시에 당당하다.




노장 탈, 단정한 얼굴의 뒷면

현대의 탈 – 노장, 2026, Elissa


노장은 오랜 세월 수행을 쌓은 늙은 승려인데, 젊은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면서 한순간에 무너진다. 존경받는 얼굴과 흔들리는 속마음이 한 사람 안에 같이 들어 있는 인물이다.


노장탈의 검은 얼굴과 흰 점, 붉은 입술을 보면서 강렬한 그래픽 패턴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검은 바탕 위에 흩어진 흰 점은 의상의 촘촘한 도트 무늬로, 얼굴을 가로지르는 붉은 선은 옷의 파이핑과 귀걸이로 옮겼다. 탈의 눈썹으로 표현되는 흰 털은 넓은 챙을 따라 흐트러진 장식으로 바꾸었다.


커다란 검은 모자와 부풀어 오른 소매, 얼굴을 에워싼 흰 술 장식은 결코 근엄하지 않다.






작품은 현재 인덕대학교에서 직접 볼 수 있다.


전시 정보

「2026 글로벌 트렌드 콘텐츠 역량 강화 프로그램」 작품 전시

장소: 인덕대학교 은봉관 1층 복도 (L층에서 한 층 위)

기간: 2026년 9월 22일 화요일 오전까지

관람 시간: 09:00–18:00

온라인 전시: 전시 보러 가기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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