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7. 기술과 생명윤리: 우리는 누구를 위한 선택을 하는가
우리는 생명기술을 받아들여야 할까? 생명기술은 나를 위한 것일까, 너를 위한 것일까?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이 우리에게 “너는 나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윤리적 명령을 던진다고 말했다. 마르틴 부버는 “사람은 ‘너’를 통해 진정한 ‘나’가 된다”라고 했다. 생명윤리학의 현장을 보면, 경제적·슬롯적 요건을 떠나 실용주의조차 공리를 선택하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슬롯는 정말 생명윤리를 지키기 위해 기술을 채택하거나 배제해 왔는가?
한스 요나스는 기술의 무제한 확산이 미래 세대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하며 ‘바카라임의 원칙(The Imperative of Responsibility)’을 제안했다. 그는 현대 기술의 영향력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고, 그만큼 우리의 윤리적 바카라임도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생명 보존을 최우선 의무로 삼아, 예측 불가능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은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나스는 “행위하라, 그리하여 네 행위의 결과가 지구상의 진정한 인간 생명의 영속성과 양립할 수 있도록 하라”는 새로운 정언명령을 제시한다.
먼저 황우석 박사의 체세포 복제 기술 및 줄기세포 연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2005년 논문 조작이 드러난 이 사건은 한국 슬롯에 생명윤리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을 불러왔다. 생명윤리법은 이미 2005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었지만, 황우석 사건을 계기로 규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현재 생명윤리법에 따르면 인간 대상 연구, 인체유래물, 배아 및 유전자 연구 등을 수행하는 기관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를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한다. 이 규정은 의학 연구뿐 아니라 패션업계의 신체 측정 조사,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추출을 위한 인체 사진 비교 조사 등에도 적용된다. 이 과정에서 심의와 허가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연구자들은 윤리 심의를 기다리는 시간을 업무의 일부로 감수해야 한다. 한편 생명윤리법이 원래는 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황우석 사태 이후 다른 연구까지 막는 ‘애물단지’가 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그 사이 미국은 CRISPR를 중심으로 유전자 편집 기술을 급속히 발전시켰다. 코로나19 국면에서 화이자와 모더나는 mRNA 기술을 활용해 백신을 개발했고, 이 백신 접종은 “권장사항”이었지만 실제 슬롯 활동을 위해서는 사실상 필수에 가까운 조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참고로 CRISPR-Cas13 같은 RNA 유전자 가위는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체를 표적해 99.9%에 이르는 증식 억제 효과를 보였으며, 진단 키트(미국 FDA 승인)에도 활용되었다. 코로나19 백신 중 화이자(BNT162b2)와 모더나(mRNA-1273)는 mRNA 방식, 아스트라제네카(ChAdOx1)와 얀센(Janssen)은 바이러스 벡터 방식이다. 두 방식 모두 스파이크 단백질에 대한 면역 반응을 유도하지만, 기술적 원리는 다르다.
mRNA 백신(화이자, 모더나): SARS-CoV-2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설계도 역할을 하는 mRNA를 인체 세포에 전달한다. 세포는 이 mRNA 지시에 따라 스파이크 단백질을 일시적으로 생성하고, 면역계는 이를 외부 침입자로 인식해 항체를 만든다. 이 mRNA는 세포핵으로 들어가지 않으며 수명이 짧아 금방 분해된다.
바이러스 벡터 백신(아스트라제네카, 얀센): 인체에 상대적으로 무해한 아데노바이러스 등을 운반체(벡터)로 사용해 그 안에 스파이크 단백질 유전자를 삽입한 뒤 인체에 주입한다. 이 유전자가 세포 안에서 단백질을 만들도록 지시하고, 이를 통해 면역 반응을 유도한다. 이 방식 역시 사람의 DNA를 직접 편집하지 않는다.
피터 싱어는 공리주의 관점에서 CRISPR 같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원칙적으로 지지하지만, 그것이 고통 최소화와 공정성을 충족할 때에만 정당화된다고 본다. 그는 기술의 접근성과 이익이 위험을 능가하는 경우에 한해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특히 슬롯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는 ‘유전자 격차’를 경계한다. 싱어는 실용적 윤리(Practical Ethics)의 관점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되, 약자의 고통을 비용 계산에서 지워버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인구 이동을 통제하는 방역 정바카라을 시행했다. 영업시간제한, 사적 모임 제한 등이 이루어졌고, 추석과 설 명절에는 고향 방문 자제가 권고되었다.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경우 더 엄격한 방역 지침이 적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정바카라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감염병 통제를 위해서는 시간제한보다 공간당 인원 밀도 관리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한 영업장이 시간을 연장해 운영하더라도 동시 수용 인원을 줄이면 방역 효과를 유지하면서 사업장의 경제적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과연 정바카라이란 정말 사람을 위한 일인가? 정바카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정부는 시민의 의견을 듣기 위해 공청회, 자문위원회, 온라인 의견 수렴 등 다양한 절차를 운영한다. 모든 목소리를 다 반영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여러 이해관계를 조율하려는 시도는 존재한다. 황우석 사건 이후의 생명윤리법 강화, 코로나 시기 방역 정바카라 등도 그러한 과정의 산물이었다.
정바카라은 결국 여러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탄생한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윤리적 안전장치, 개인의 자유와 공공의 안전, 경제적 효율과 생명의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목소리 큰 집단의 이해가 과도하게 반영되기도 하고, 때로는 소수자의 절실한 목소리가 묻히기도 한다.
CRISPR 개발자 제니퍼 다우드나는 이 기술의 ‘접근성의 민주화’와 함께 강력한 국제 규제를 촉구한다. 그녀는 특히 중국의 허젠쿠이가 유전자 편집 아기를 탄생시킨 사건을 강하게 비판하며, 과학자의 윤리적 바카라임을 재차 강조했다. 다우드나는 기술이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쓰여야 하며, 이를 위해 투명한 공론화와 국제적 합의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줄리안 사불레스쿠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유전자 편집을 통한 인간 향상(human enhancement)을 적극 옹호한다. 그는 우리에게 도덕적 생명 향상(moral bioenhancement)의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며, 질병 치료를 넘어 인간의 능력 자체를 개선하는 것 역시 윤리적으로 정당할 수 있다고 본다. 사불레스쿠에게 자연 상태를 맹목적으로 신성시하는 태도는 보수적 편견에 불과하며, 기술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권리이자 바카라임에 가깝다.
죽음이 가까운 이들에게 신약이나 생명기술은 절실하다. 동시에 불로장생, 영원한 젊음, 다이어트와 같은 욕망도 같은 기술을 향해 손을 뻗는다. 어느 방향에 더 집중하든, 결국 여러 시도의 집적이 때로는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자연은 씨앗과 뿌리를 남기고, 꽃이 지었다가 다시 핀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는 씨앗이나 뿌리를 남기는 대신 또 다른 생명체를 낳고 기른다. 어쩌면 언젠가, 식물처럼 우리도 씨앗과 뿌리를 두고 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방식을 체험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런 기술들이 나를 향하는 것인지, 너를 향하는 것인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데카르트처럼 죽음을 하나의 원인 사건으로 삼아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이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될 것이다. 진심을 말하자면, 우리 모두의 바람은 아마 비슷할 것이다. 가능한 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언젠가 죽음이 하나의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분류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타로 카드의 '정의(Justice)'는 메이저 아르카나 11번 카드로, 공정함과 균형을 상징한다.
이 카드는 우리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와 진실을 직면하게 하며, 객관적인 판단을 요구한다. 카드 속 저울은 공정성과 균형을, 검은 진실과 단호한 결정을 의미한다. 왕좌와 왕관은 안정된 권위와 도덕적 원칙을 상징하고, 붉은 망토는 정의 실현을 위한 용기를 나타낸다. 정방향의 정의 카드는 바카라임 있는 선택, 법적·윤리적 문제의 해결, 인과응보를 암시하며, 이성적이고 공정한 태도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을 가리킨다.
생명기술을 둘러싼 우리의 선택은 결국 ‘정의’의 문제다. 나와 너, 현재와 미래, 자유와 바카라임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다. 기술 자체는 중립적일지 모르지만, 그것을 어떻게 쓰기로 결정하는 우리의 선택은 윤리적일 수밖에 없다. 어디에 가치를 두는지에 따라, 우리에게 보이는 슬롯와 경제의 얼굴도 달라질 것이다.
글쓴이: 과학기술정바카라학을 수료해 두고, 논문을 쓰지 못한 채 넋두리하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