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씨앗, 문명을 묻다 18
수확한 작물이 어떤 음식이 되는지는 씨앗을 고르는 일과 무관하지 않았다. 쌀은 밥이나 떡이 되고, 콩은 삶아 먹거나 메주를 쑤는 데 쓰이며, 카사바는 삶거나 튀기고 가루로 가공하기도 한다. 같은 작물이라도 조리법에 따라 맛과 식감이 달라지고, 음식에 따라 알맞은 특성도 달라진다. 농민이 다음 해에 심을 씨앗을 남길 때 밭에서 자란 모습과 수확량만 살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거둔 작물을 먹고 조리하면서 얻은 경험도 어떤 작물을 계속 기를지 판단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많이 거두는 작물이 언제나 생활에 가장 알맞은 것은 아니다. 수확량이 많아도 먹는 사람이 선호하지 않거나, 음식을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가거나, 저장과 가공에 적합하지 않으면 재배를 이어 갈 이유가 줄어들 수 있다. 반대로 수확량이 조금 적더라도 밥맛이 좋고, 삶았을 때 식감이 알맞으며, 장이나 떡을 만드는 데 잘 맞는 작물은 집안의 식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농민에게 작물은 밭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이면서 가족이 먹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식량이었다. 두 가지 쓰임이 맞물리는 곳에서 씨앗을 남길 이유가 생겼다.
벼를 예로 들면 이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논에서 자라는 벼의 모습만으로 밥맛을 모두 판단하기는 어렵다. 낟알을 거두고 도정한 뒤 물을 맞추어 밥을 지어야 찰기와 식감, 향 같은 특성이 드러난다. 같은 쌀이라도 밥을 지었을 때 서로 다르게 느껴질 수 있고, 그 차이는 매일 먹는 사람에게 중요하다. 농가에서 여러 계통의 벼를 재배했다면 수확 상태뿐 아니라 밥을 지은 결과도 비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경험이 다음 해의 종자를 남기는 판단에 반영되었다면, 부엌에서 얻은 평가는 논의 선택과 연결되었을 것이다.
현대의 연구에서도 벼 자원마다 밥맛과 관련된 특성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발표된 국내 연구는 재래 벼와 야생벼를 포함한 여러 벼 자원을 평가해 밥맛과 관련된 특성의 차이를 살폈다. 이 연구는 과거 농민들이 어떤 이유로 특정 벼를 골랐는지 직접 증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벼의 유전적·생물학적 차이가 밥을 지었을 때의 품질 차이와 연결될 수 있으며, 먹는 품질이 오늘날에도 벼 자원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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