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이 명상이 될 때

창작자를 위한 명상 프로그램_2주차 수업

by아나타

처음 이 수업을 기획한 건 현대무용을 하는 지인 B와의 가벼운 대화에서였다.

밥을 먹고 근황을 나누다가 B가 준비하고 있는 수업 이야기를 들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거나 일상에서 신체활동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수업이었다. 이를 위한 자격요건을 갖추려고 수업 참관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현대무용이 무대에 올리는 공연뿐 아니라 이런 식으로 활용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자 순간 ‘나도?’ 하는 생각이 스쳤다. 무용과 명상을 연결해 보면 어떨까.


충분히 말이 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해온 위빠사나 명상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는 수행이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뿐 아니라 걷고 먹고 일하는 일상에서도 몸의 감각과 마음의 반응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렇다면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는 동안에도 명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B와 이야기하며 떠올린 움직임은 정해진 안무를 따라 하거나 어떤 동작을 해내는 것이 아니었다. 각자의 몸에서 시작되는 움직임을 따라가 보는 것으로, 그런 움직임이라면 명상과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전에도 이런 수업이 있었을까. 우리가 검색한 범위에서는 비슷한 수업을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좋았다. 우리는 깃발을 꽂아보자며 의기투합했다.

본격적으로 수업을 만들기 전에 실제로 이 아이디어가 작동하는지부터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B의 집에서 둘만의 모의수업을 해보기로 했다.


며칠 뒤 편안한 바지를 입고, 1+1 하는 아이스크림과 함께 그녀의 집을 찾았다. 거실 중앙에 따뜻하게 자리 잡고 있던 낮은 테이블은 일찌감치 치워져 있었다. 둘이서 움직이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거실이 이렇게 넓은 줄 몰랐다며 B가 웃었다.

우리는 몸을 풀기 전에 녹차와 초코맛 파인트 아이스크림을 각자 하나씩 끌어안고 입부터 풀었다. 이번 수업을 잘 만들어서 여기저기서 해보면 좋겠다는 부푼 꿈부터, 특히 스님들과 함께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입안에 남은 아이스크림 맛을 느끼며 이런저런 달콤한 상상을 했다.

그리고 움직일 시간이 되었다.

동작은 앉은 자세에서 천천히 시작되었다. 몸의 구조를 새삼스럽게 살펴보게 하는 B의 안내가 좋았다. 내 어깨가 어디에 있고, 팔뚝과 팔꿈치를 지나 그 끝에 손이 달려 있다는 것.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알아차리는 일이 낯설어진 몸을 하나씩 움직여보았다.

최소한의 안내만 있을 뿐 정해진 동작은 없었다. 그 안에서 몸이 가는 대로, 다음 동작을 미리 정하지 않고 움직였다.

그때 B가 준비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뭐라 규정하기 어려운 장르의 음악이었다. 불 옆에서 춤을 추는 태초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지금 내 움직임도 그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점점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해 갔다. 다른 사람을 의식할 필요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살면서 이런 식으로 움직여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우리 대부분은 늘 어딘가에 가거나 무언가를 하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나 역시 운동을 할 때 바른 자세를 만들려고 거울을 수시로 들여다보지 않았던가.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출 때조차 이렇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첫 경험이었다. 강렬한 해방감이 따라왔다. 팔을 어디까지 뻗든, 몸을 어느 쪽으로 기울이든 상관없었다. 나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동작은 점점 커지고 반경도 넓어졌다. 때마침 빠른 음악으로 바뀌자 과감하게 방방 뛰기도 했다. 몸에서 열이 나고 호흡이 점차 가빠졌다. 움직임이 커질수록 몸의 감각도 선명해졌다.

음악이 다시 바뀌고 조용한 리듬으로 돌아왔다. 동작 역시 느려지고 잦아들었다. 우리는 천천히 드러누웠다.

바닥에 닿는 몸의 무게, 등 아래의 딱딱함, 풀린 긴장감. 움직이는 동안과는 또 다른 감각들이 찾아왔다. 들어오고 나가는 숨의 흐름을 선명히 느끼며 생각했다.

‘이거 좋다….’


30분가량의 실습이 끝나고 나는 이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근처 카페에서 빠르게 수업의 틀을 정리했다. 이름은 ‘관찰되는 몸: Sati in Motion’으로 정했다.

이후 지인들과 지인의 친구들을 모아 한 연습실에서 모의수업을 했다. 내가 움직임과 명상을 연결한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B가 실습을 진행했다. 마지막에는 모두 바닥에 누워 몸관찰 명상을 했다. 반응은 좋았다. 야외에서도 해보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원데이 클래스로 모집을 시작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번번이 인원이 부족해 수업은 열리지 못했다. 명상도 낯선데 몸까지 움직여야 한다니, 선뜻 신청하기 어려운 것일까 짐작했다.

그러다 〈창작자를 위한 명상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이 수업을 다시 떠올렸다.

처음 움직였을 때의 경험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잘하려고 애쓰거나 정해진 모양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렇게 움직이는 동안 몸의 감각과 마음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 창작을 하는 사람들과도 이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우리는 머리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산바카라하거나 머리를 감거나 설거지를 하는 동안 문득 생각이 정리되고 아이디어가 떠오른 경험이 있지 않은가. 바카라상 앞에서 오래 고민하는 것 외에도 해볼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수업을 준비하며 몸과 인지의 관계를 다룬 바카라을 읽고, 걷기와 창의적 사고의 관계를 살핀 연구도 찾아보았다. 몸의 상태와 움직임을 바꾸는 일도 창작이 일어나는 조건을 바꾸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창작과 움직임, 현대무용과 명상이 하나의 수업으로 꿰어졌다.


그리고 어제, 수업이 있었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4층의 연습실을 빌렸지만 커튼으로 볕과 거울을 가리고 조명도 낮췄다. 움직이는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공간이길 바랐다.

참여자들은 B의 안내를 따라 저마다 몸을 움직였다. 정해진 동작이 없으니 누구의 움직임을 따라갈 필요도 없었다. 모두 적극적으로 아무렇게나 움직였다.

자기 몸에 집중한다고 해도 마주치는 시선까지 어쩔 수는 없었다. 눈이 마주치면 까르르 웃음이 났다. 그 웃음이 되려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 같았다.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처음 B의 집에서 느꼈던 자유로움이 떠올랐다. 그때는 이런 식으로도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는데. 이번에는 같은 공간에서 각자 다르게 움직이면서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어색하고 낯설만도 한데 열성적으로 참여해 준 모두에게 고마웠다.

수업을 마치며 과제를 내주었다. 작업하다 막히는 순간이 오면 앉아서 계속 고민하는 대신, 10분간 몸을 움직여보기.

스트레칭이든 걷기든 상관없을 것이다. 몇몇은 오늘처럼 움직여보고 싶다고 했다. 작업에서도 달성해야 할 목표가 많은데 운동에서조차 그러는 게 늘 부담스러웠다고. 어떤 목적도 갖지 않고 움직이니 몸도 풀리고 마음도 부드러워진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이 이렇게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분도 있었다. 함께하니 본인도 움직여지더란 말이 좋았다.


나 역시 그래보면 어떨까.

검도도 웨이트도 계속하겠지만, 글이 막히거나 디자인을 하다가 떠오르는 게 없으면 그저 몸이 가는 대로 움직여보는 거다. 움직인다는 사실에 집중하고, 그에 따라 일어나는 감각과 마음을 살피면서.

그래, 나도 한 주간 그렇게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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