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를 위한 명상 프로그램_1주차 수업
지난주, 자려고 일찍 누웠는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
조카 D의 어릴 적 앳된 얼굴이 화면 가득 떠올랐다. 웬일로 이 시간에 전화를? 궁금한 마음에 서둘러 슬라이드를 밀었다.
“이모, 저한테 몇 분만 시간 내주실 수 있으세요?”
얼마든지. 그녀의 귀여운 부탁에 고개를 끄덕였다.
첫째 조카 D는 나에겐 각별한 아이다. 상경해 처음 몇 년을 언니 집에서 신세 질 때 함께 살기도 했고, 무엇보다 은근 대화가 잘 통한다. 아, 처음으로 함께 술을 마신 날 홀로 감격에 겨워했던 기억도 난다. 지금은 편입시험을 준비하느라 휴학 중인 대학생인데, 여름에 가족 여행으로 떠난 베트남에서도 영어 단어 앱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D는 공부하는 데 집중이 너무 안 된다고 했다. 엄마한테 하소연하니 나한테 물어보라고 했단다. 이모는 명상을 하니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순간, 나 인생 성공했네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고민이 있을 때 연락하고 싶은, 그런 어른이 되었구나 싶어서.
개인적인 흐뭇함은 잠시 미뤄두고 일단 조카에게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잘 챙겨 먹는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일곱 시간 이상 자고 있었고, 밥은 엄마가 챙겨주니 거르지는 않았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도 물어봤다. 요즘처럼 집중하기 어려운 시대가 있었던가. 그런데 휴대폰 보는 것까지 체크하는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몇 가지를 확인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기 어려웠다.
마침 나는 비슷한 질문을 붙들고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주의를 모으고, 흩어진 마음을 다시 작업으로 데려올 수 있을까, 하는.
파트너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 <스튜디오 피스피스>는 불교의 오래된 지혜를 기반으로 제품을 디자인하고 경험을 설계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명상 수업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주로 원데이 클래스로 해왔지만, 꾸준히 일상에서 반복할 때 진정 빛을 발하는 명상이기에 한 번의 수업으로는 아쉬움이 많았다.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명상에 깊게 들어갈 수 있도록 거들고 싶었다.
그 생각이 차곡차곡 쌓여 4 주 동안 네 번 만나는〈창작자를 위한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집중, 감각, 영감, 지속이라는 흐름으로 창작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몸과 마음을 살펴보는 수업이다.
20년 넘게 창작자로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마음의 부침이 있었던가. 물론 일만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살면서 겪어온 어려움을 불교와 수행을 통해 이해하고 다루는 법을 조금씩 배웠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낯선 불교의 용어와 수행의 과정을 창작자의 언어로 풀어보고 싶었다.
정식으로 수업을 열기 전에 참여자들의 경험과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 파일럿 수업을 준비했고, 곧 시작될 시점이었다. 무엇보다 첫 시간이 ‘집중’에 관한 것이었으므로 조카의 기습 고민 상담에도 나름대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수업을 준비하면서 읽었던 바카라이 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요한 하리가 쓴 『도둑맞은 집중력』이다.
작가는 우리가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를 단순히 스마트폰을 많이 쓰거나 의지가 약한 탓으로 돌릴 수 없다고 말한다. 현대 슬롯의 여러 조건이 우리의 주의력을 구조적으로 훼손하고 있으며, 집중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개인의 습관뿐 아니라 환경과 슬롯 시스템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집중력의 문제를 개인의 바카라임으로만 넘겨서는 안 된다는 말에 동의했다. 동시에 수업에서는 각자가 바꿔볼 수 있는 가까운 조건부터 살펴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충분히 자고 쉬는지, 작업 중 얼마나 자주 다른 일로 주의를 옮기는지, 하루의 모든 틈을 새로운 정보로 채우고 있지는 않은지.
하지만 환경을 정리해도 마음은 계속 움직인다. 휴대폰을 치우고 알림을 꺼도 어제의 후회와 내일의 걱정은 찾아온다.
조카에게도 그런 스트레스가 있었다. 시험을 망칠까 봐, 떨어질까 봐 불안하다고 했다. 어차피 안 될 것 같으니 편입 준비를 그만두고 싶은데, 막상 그만둔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도 걱정된다고 했다.
나는 일단 그만둬도 괜찮다고 말했다. 솔직히 사람들은 너의 일에 네가 걱정하는 만큼 관심이 없다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시험을 중도에 포기했다고 해서 너를 덜 사랑하게 되지는 않을 거라고.
다만 이왕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니 시험은 쳐보면 어떠냐고 말했다. 고3 때보다 더 열심히 했다고 하니, 결과를 미리 정해놓지 말고 한번 응시해 보는데 의의를 둬보자고. 떨어진다고 인생은 결코 망하지 않고, 길게 보면 합격 여부보다 무언가를 위해 애써본 경험이 더 오래 남아 진짜 자산이 되니까.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서 명상도 권했다. 시험 결과를 지금 알 수는 없지만, 아직 오지 않은 결과를 걱정하느라 흩어진 마음을 지금 하는 공부로 데려오는 연습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길게도 말고, 딱 5분만. 5분도 어렵다면 3분만이라도 호흡에 집중해 보라고 했다.
살아 있는 한 호흡은 언제나 곁에 있으니 특별한 도구도, 장소도 필요하지 않다.
방법은 간단하다. 편안히 앉아 눈을 감고, 숨의 감각이 잘 느껴지는 한 곳에 주의를 둔다.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 그곳에서 어떤 감각이 느껴지는지 살펴본다.
그러다 보면 십중팔구 딴생각이 떠오른다. 어제 있었던 일, 지금 걱정하는 것, 불안한 내일. 어느 순간 호흡을 잊고 그 생각을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러면 다시 돌아와 호흡에 집중한다. 그게 다다.
집중하고, 흩어지면 알아차리고, 다시 돌아오는 일.
잡념이 생겼다고 명상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 생각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얼마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우리의 연습은 그 반복에 있다.
첫 번째 수업에서도 조카 이야기를 곁들였다. 공부하는 조카와 창작하는 우리가 하는 일은 달라도, 눈앞의 일에 머물고 싶지만 마음은 자꾸 다른 곳으로 흩어진다는 경험은 함께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우리가 집중하기 더 어려워졌는지, 그런 환경에서도 우리가 바꿔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주의력을 되찾기 위한 호흡집중명상을 20분간 함께 했다. 고즈넉한 한옥에서 여러 명이 함께하는 명상에는 힘이 있었다. 초심자 혼자서는 10분을 넘기기도 어렵지만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이다. 도반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수업 말미, 우리가 바꿔볼 수 있는 작은 조건들을 실험해 보는 과제를 내주었다.
하루 한 번 이어폰 없이 걷기, 기상 직후, 잠들기 전 30분 동안은 화면을 보지 않기, 메일을 정해진 시간에만 확인하는 것 등. 일상의 모든 틈을 정보로 채우지 않고 주의를 흩어지게 하는 알림을 최대한 막아보자는 의미였다.
거기에 매일 5분의 호흡집중명상까지.
수업에서 한 번 경험하는 것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각자의 작업실과 바카라상 앞에서도 해보고, 어떤 날에는 쉬웠고 어떤 날에는 어려웠는지 다음 시간에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맞는 집중의 조건도 조금씩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조카에게는 자신 있게 권했지만, 막상 수업을 마치고 나니 궁금해졌다. 이 작은 실험과 짧은 수행이 사람들의 일상에 어떤 도움이 될까. 나 역시 같은 과제를 해보며 한 주를 보내려고 한다.
다음 주가 기대된다. 우리는 어떤 일주일을 보내고 다시 만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