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운 자리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by황보람

선쥰이를 킥복싱 도장에 보내놓고

바로 앞 공원에 와 평상에 누웠습니다.

나무들이 조용히 나를 내려다봅니다.


나무들은 언제부터

지켜본 것일까요.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도입부에는

즐비한 나무들의 시선이 오래도록 이어집니다.


나무는, 인간들이 살고 살아있고 죽고 죽이는 모든 것을 봅니다.

그저 지켜봅니다.


나무는 모두 보았지만 그 어느 것에도 의미가 없습니다.

나무는 침묵합니다.


오히려 나무의 시선조차,

제발 누군가라도 목격해 주길 바라는 저의

인간적 기대였을까요.


죽으면 수목장을 하고 싶었습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가장 적합한 것 같았거든요.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 돈희가 죽었을 때

화장한 재를 한동안 방에 두었다가

며칠 뒤 뒷산 나무 아래 묻어주었는데, 마음이 꽤 평안했습니다.(이거 불법일 거예요. 아마도)


나무의 입장에서 보니, 수목장이란 것도 좀 거추장스럽지 않나 싶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나를 위해 존재하고

이 세상 그 무엇도 나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정말

마음껏 살아가도 좋을지 모릅니다.


그 어떤 시선에도

바람처럼 걸림 없이

아무 미련 없이 떠나는


이제 선준이 킥복싱 수업이 끝날 시간이네요.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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