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맞닿음

두 아버지의 딸을 향한 마음

by능수버들


나태주 시인의 문장을 옮겨 오다


아버지는 점점 치매가 깊어지셨다. 엄마만 알아보시고, 그토록 애지중지 여기셨던 딸도 낯선 사람일 뿐이었다. 평소 글씨도 단정하고 문장력도 좋은 분이셨기에, 아버지의 마음을 짐작하고 싶어 워드로 글을 하나 옮겨 적었다. 나태주 시인의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의 프롤로그였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끝에 아버지의 뜨거운 감정이 내 마음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글 속 문장 하나하나가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가슴에 콕콕 박혔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딸들은 애당초 꽃다발로 왔고 그 향기로 왔다...
딸들아, 너희가 있어 아비의 생은 조금쯤 더 따뜻하고 넉넉해질 수 있었단다.
고맙구나,
딸아.
너를 내 딸로 만나서 참 행복했다.”


이태 전에 아버지가 급성 폐렴으로 돌아가신 후, 다시 나태주 시인이 쓴 글을 읽었다. 마치 아버지가 내게 남긴 마지막 편지 같았다. 글 속 문장 하나하나가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가슴에 콕콕 박혔다.


"비록 이다음에 아비 없는 세상이 온다 하더라도 너무 울거나 너무 힘들어하지는 말아 다오.
다만 잘 살아라. 네 인생의 꽃을 피우다 오너라.
언젠가 어두운 밤길을 걷다 문득 누군가 너를 바라보는 것 같거든 하늘의 가장 밝은 별 하나를 떠올려다오.
그 별 속에, 아비의 마음이 너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딸에게 맞닿은 두 아버지


사위도 딸 못지않게 좋아하셨던 아버지. 내게 수호신이었던 아버지. 온기 가득한 아버지를 닮아 나는 아버지로부터 애틋한 사랑을 배웠다. 지금은 별이 되셨지만 아버지가 내게 보여주신 사랑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서 빛을 내고 있다.


이제는, 남편이 딸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우리 아버지의 그 마음을 종종 본다. 남편은 몸이 불편해진 이후에 딸이 주는 감정 하나하나에 의미 부여를 한다. 퇴근하는 딸의 정겨운 목소리, 그 전화 목소리 톤으로 딸의 마음 상태를 세심하게 감지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딸의 아빠. 딸과 통화 후 하루를 잘 살아 냈다는 뿌듯함으로 딸의 아빠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또 다른 한 남자가 딸을 통해 다시 살아가고 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


남편이 쓰러진 지 1년 8개월 만에 아버지 장례식을 치렀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라고 피천득 선생님이 찬양해 마지않았던 그 찬란한 오월에, 아버지는 급성 폐렴으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치매로 기억과 말을 잃으셨지만 건강하신 편이었는데 급작스럽게 먼 길을 떠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