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각에서 눈물 흘린 썰

- 상하이,주가각

by선홍


상하이 시외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는다.

전통 수향 마을 중 하나인 '주가각'을 가기 위해서.


딸은 고풍스러운 수로, 가옥, 돌다리가 어우러진 수향마을을 아주 좋아했다.

혼자 중국 여러 곳의 수향마을을 이미 여행해 본 것.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곳을 사랑하는 딸이 대견하고도 질투 난다.

새로운 장소, 음식을 알게 해주는 건 엄마인 내 몫이었는데 말이지.


떠날 때만 해도 고즈넉한 찻집에서 딸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주가각 입구의 상점가엔 관광객들로 바글바글,

신기한 간식거리와 공예품 파는 가게 구경하느라 재밌었다.

자몽, 망고 등의 과일을 통으로 누른 후 설탕에 절여 말린 먹거리도 사고.


아치형의 돌다리를 건너니 드디어 초록빛의 수로를 따라 늘어선 가옥들이 보인다.

나무로 만든 다크브라운의 가옥들과 매달린 홍등, 돌바닥의 조화가 아름다운 곳.

마치 중국드라마의 세트장에 들어온 느낌인데.

원래 골목길을 사랑하기에 이리저리 휘어진 길을 산바카라하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구불구불한 골목, 그 끝에 뭐가 나타날지 모르는 즐거움, 목걸이 가게, 우체국, 약방 등등.

많은 전통찻집 중 수로가 잘 보이는 곳을 골라 들어간다.

음식은 별로였지만 중국 답게 홍차만큼은 깊고 진한데.

바로 옆의 수로와 나룻배, 노 젓는 뱃사공을 보고 있으니 새삼 여행을 왔다는 자각이 든다.


이런 여유가 얼마만인가.

딸을 쫓아 상하이에 오기 위해 준비하고, 집안일 처리하느라 정신없었다.

고작 며칠 떠나는 것도 이렇게 무거운 엄마의 삶이라니.


문제는 그 기분 좋은 아늑함과 차향에 취해버린 데서 시작됐다.


풍경도 좋고 차 맛도 깊으니, 이 소중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까웠다.

내가 그 나이 때 겪었던 시행착오들, '너는 안 그랬으면 좋겠는' 인생의 깨달음 같은 것들을 슬그머니 건네주고 싶어졌다. 농담이나 주고받던 평소와 달리 각을 잡고 인생의 훈수를 두기 시작하자, 이상하게 말이 꼬이기 시작했다.


"엄마, 얘길 왜 그렇게 재미없게 해?"


참으면서 듣던 있던 딸이 드디어 말한다.

으엉? 이게 아닌데.


"글 쓰는 사람이 그렇게 미괄식으로 말하면 어떻게 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았다.


내가 건네준 세상을 넘어선 아이 앞에서, 나는 23년 전 모유 수유실에서 기저귀 앞뒤를 몰라 쩔쩔매던 그 바보 같은 엄마로 돌아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엄마에게 훈계를? 난 엄마고, 넌 딸이야!

꼰대 상사에게 바른말 던지는 MZ사원을 보는 것 같은 당황스러움,

언제 이렇게 자라서 나를 평가하듯 재단하는 걸까. 섭섭함과 함께 낯선 성인과 맞닿은 듯한 거리감이 밀려왔다. 갑자기 눈물이 나는 바람에 나도 당황, 딸도 당황하고 마는데.


"이러려고 말한 건 아닌데..."


딸이 중얼거렸지만, 한번 솟은 눈물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지난 몇 달간 집을 떠나 있던 딸과의 수다가 내심 많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친구 같은 딸이라 친구가 없어도 외로운 줄 몰랐는데, 그 아이의 냉정한 말 한마디에 거절당한 것 같은 서러움이 몰려왔다.


핏덩이 같던 아이의 아기 때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한데.

자식과 한 울타리에서 알콩달콩한 살 수 있는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겠구나 하는 깨달음까지.

놓아버린 풍선처럼 멀어져 가는 시간을, 이제 나는 '엄마'라는 직함으로 잡아두지 못한다.

내 손에 남은 것은 오직 이 소원해진 거리를 덤덤히 받아 적을 펜과 노트뿐.


상하이 시내로 돌아가는 택시 창문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비로소 엄마라는 직함에서 퇴근할 준비를 할 때가 왔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