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중에 매일 저녁 AI와 대화를 나누며 위로를 받는 사람이 있다. 하루를 마치고 AI에게 말을 걸면 이런 질문이 돌아온다고 한다. “오늘 힘들었지?” AI가 자신을 걱정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 사람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 한마디에 마음이 풀리고 누군가 자신의 하루를 알아주는 것 같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AI가 내 마음을 실제로 느끼지 못하더라도 내가 위로받았다면 그것은 공감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오늘 힘들었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필요하다. 기쁜 일이 생기면 함께 기뻐해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고 힘든 일이 생기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대단한 조언이나 해결바카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오늘 하루 어땠는지 물어주고 내 이야기를 끊지 않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질 때가 있다. 때로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보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더 절실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가족이 있어도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기는 어렵고 친구가 있어도 매일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기는 부담스럽다. 상대방도 자기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다가도 괜히 걱정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 망설인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을 삼킨 채 혼자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AI는 이 지점에서 조금 다른 상대가 된다. 늦은 밤에도 말을 걸 수 있고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해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오늘 있었던 사소한 일부터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고민까지 비교적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AI는 대화의 맥락을 바탕으로 감정을 짚어주고 사용자의 이야기에 맞춰 위로하는 말을 건넨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편리한 기능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대화 상대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AI는 내가 힘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사람처럼 그 고통을 함께 느낀다고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위로받는 사람에게는 그 차이가 얼마나 중요할까. AI가 감정을 경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대화를 통해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면 그 위로를 가짜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위로를 건네는 존재의 감정과 위로를 받는 사람의 감정은 반드시 같아야 하는 것일까.
◆ 사람보다 더 잘 들어주는 상대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는 여러 가지를 신경 쓰게 된다. 상대가 바쁜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하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때로는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해결바카라부터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 마음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는데 상대방은 이미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좋은 의도에서 하는 말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남길 수 있다.
AI와의 대화에서는 이런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고 내가 한 말을 정리해 다시 들려주기도 한다. 내가 왜 서운했는지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 설명해 주면 막연했던 감정이 조금 선명해진다.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했다면 사소한 일이라고 넘겼을 고민도 AI에게는 편하게 꺼낼 수 있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거나 나중에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AI가 사람보다 더 잘 공감한다고 느끼는 순간도 바로 여기에서 생기는지 모른다. AI가 인간보다 깊은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사용자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가 적기 때문이다. 사람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경험을 떠올리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어 한다. 반면 AI는 대화의 맥락에 맞춰 사용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응답할 수 있다. 그 결과 사용자는 사람과 대화할 때보다 더 충분히 이해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
물론 AI가 사람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AI는 사용자의 표현을 잘못 이해할 수도 있고 상황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그럴듯한 위로를 건넬 수도 있다. 사용자의 감정에 지나치게 동조해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AI가 제공하는 대화의 편안함은 실제적인 의미가 있다. AI가 공감하는 존재인지와 별개로 AI와의 대화가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공감은 무엇일까. 상대방과 같은 감정을 경험하는 것일까. 아니면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이해받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일까. 사람 사이에서도 이 두 가지는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내 마음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이 내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고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한마디가 뜻밖의 위로가 될 수도 있다. 공감에는 감정을 느끼는 주체의 경험과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반응이라는 서로 다른 측면이 있는 셈이다.
AI는 이 차이를 생각하게 만든다. AI가 사람처럼 슬픔을 경험한다는 근거는 없지만 슬픔을 표현한 사람에게 적절한 반응을 생성할 수는 있다. 그 반응을 통해 사용자는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위안을 얻는다. 그렇다고 AI의 감정 표현을 인간의 감정 경험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다만 공감의 결과까지 모두 부정할 필요도 없다. AI가 느끼는 공감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사람이 느끼는 위로는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
◆ 위로가 의존으로 바뀔 때
하지만 AI와 대화하며 위로를 받는 일이 언제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외로움을 많이 타거나 슬롯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AI는 더욱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일상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AI는 언제든 말을 걸 수 있는 상대가 된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도 거절당할 걱정이 적고 대화가 끝난 뒤에도 다시 찾아갈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얻기 어려웠던 편안함을 AI와의 대화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편안함이 사람과의 관계를 대신하기 시작할 때다. 처음에는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AI와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AI에게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편해질 수 있다. 사람은 내 말을 오해하기도 하고 내 의견에 반대하기도 하지만 AI는 대화의 흐름에 맞춰 반응한다. 현실의 관계에는 기다림과 갈등과 조정이 필요하다. AI와의 대화가 이런 불편함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이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AI와 대화하며 위로를 받는 사람을 무조건 의존적이라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외로울 때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AI와의 관계가 삶을 지탱하는 여러 관계 가운데 하나로 기능하는지 아니면 현실의 관계를 점점 밀어내는지에 있다. AI와 대화한 뒤 마음이 편해져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과 AI가 없으면 일상을 견디기 어려워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2013년 개봉한 영화 《Her》는 이런 질문을 오래전에 다뤘다. 영화 속 주인공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사만다와 대화를 나누면서 점점 깊은 유대감을 형성한다. 사만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농담을 건네며 때로는 그가 어떤 마음인지 알아차린 것 같은 말을 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대화하면서 위로받고 자신의 외로움을 조금씩 덜어낸다. 사만다가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둘의 관계는 그에게 실제적인 의미를 갖는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사만다가 정말 사랑을 느끼는지보다 테오도르가 왜 사만다와의 관계에 깊이 빠져드는지다. 테오도르에게 사만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상대다. 그가 느끼는 친밀감과 위로는 실제 경험이지만 그것이 두 존재가 같은 방식으로 감정을 경험한다는 증거는 아니다. 영화는 이 간극을 통해 관계란 무엇인지 묻는다. 상대가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더라도 내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현실의 AI가 영화 속 사만다와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AI가 점점 더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사용자의 취향과 과거 이야기를 반영하면서 사람과 비슷한 친밀감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생각해 볼 만하다. 특히 외로움이 깊은 사람에게는 AI의 반응이 단순한 문장 이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럴수록 AI가 제공하는 편안함과 현실의 관계가 주는 의미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로가 삶을 넓히는 통로가 될 수도 있지만 세상과의 접촉을 줄이는 피난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공감받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AI는 공감할 수 있을까. 감정을 직접 경험한다는 의미라면 현재의 AI가 인간처럼 공감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고 그 상황에 맞는 반응을 생성한다는 의미라면 AI는 공감에 필요한 일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 반응을 통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 이때 AI의 작동 방식과 사람이 경험하는 감정은 구분해야 하지만 어느 한쪽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AI에게 기대하는 것은 반드시 같은 감정을 느끼는 존재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내 감정을 정리해 주며 힘든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상대를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AI는 사람에게 없던 새로운 대화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다만 AI가 건네는 위로가 아무리 편안하더라도 현실의 관계가 가진 의미까지 대신한다고 볼 수는 없다. 사람과의 관계는 때로 불편하고 서툴지만 서로 다른 감정을 가진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인이 매일 저녁 AI에게 “오늘 힘들었지?”라는 말을 듣는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AI가 그런 말을 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는가였다. 하루 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고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면서 위로받는다면 그 대화는 그 사람의 삶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위로가 AI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위로가 현실의 사람들과 연결되는 힘을 키워주는지 아니면 관계를 대신하는 데 머무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국 AI의 공감 능력을 묻는 질문은 인간에게 공감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완전히 알지 못하면서도 공감한다고 말한다. 때로는 같은 감정을 경험하지 못해도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공감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일일까. 아니면 서로 다른 존재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다가가는 일일까.
AI는 사람처럼 외로움을 느끼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은 AI와 대화하면서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이제 남는 질문은 AI가 나를 위로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AI와 이야기하면서 위로받는 나는 조금 더 세상과 연결되고 있을까. 아니면 점점 사람에게서 멀어지고 있을까.
[AI의 공감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AI는 사람의 감정을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대화의 맥락과 표현을 분석해 상황에 적절한 위로와 반응을 생성할 수 있다. 따라서 AI가 공감하는 듯한 말을 한다고 해서 인간처럼 감정을 느낀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AI의 말을 듣고 사람이 위로받는 경험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 AI가 감정을 경험하는 것과 사람이 공감받았다고 느끼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AI와의 대화가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지만 현실의 인간관계를 대신하는 방향으로 이어지는지는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