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카지노 알람이 울렸다. 연재글 발행일 안내였다. 매주 알람을 받고 지우면서 오래도록 글을 쓰지 못했다. 아빠가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실려갔다는 글을 쓴 게 작년 8월이었다. 그 사이 계절이 두 번 바뀌었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매번 지우던 알람을 오늘은 지우지 못했다. 노트북을 켜고 앉으면서도 꼭 써야지 생각한 게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빈 여백만 보다 노트북을 덮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다.
아빠가 두 달의 대학병원 생활을 끝내고 요양병원으로 옮긴 지 6개월이 지났다. 병이 다 나아서 아니, 조금이라도 호전되어서 나왔다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진단명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던 대학병원에서 보낸 두 달의 시간 동안 아빠는 자기 호흡이 어려워 중환자실에서 2주를 보냈고 기관삽관을 했다. 콧줄로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을 보내면서 병명이 나오면 수술을 하든, 약을 먹든 차도가 있겠지 희망을 가졌다. 그건 나와 아빠, 다른 가족 모두가 가진 희망이었다.
아빠의 가장 큰 희망은 증세가 호전되어 절개한 기관을 막고, 호흡기를 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었다. 그러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고 했다.
대학병원을 나오기 일주일 전, 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검사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한 검사에서 아빠의 진단명이 나왔다. (의사들마저도 이것저것 해도 원인이 안 나오니 뭐라도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라는 생각 같았다. 아빠의 주치의는 더 이상 안 나오면 다른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해서 다른 의사의 소견도 들어보라고 추천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검사에서 병명을 찾았다.
(산발성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ALS) 일명 루게릭이라 불리는 병이다. 대체로 많은 병이 그렇겠지만 이 병 역시 왜 걸리는지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다른 병과는 다르게 치료제도 치료법도 명확하지 않다. (물론 또 그런 병이 있겠지만 내가 잘 모른다.) 명확한 건 루게릭은 완치가 없다는 것. 그저 증상을 늦추고 더 나빠지지 않게 유지하는 게 유일한 치료다. 호흡기를 뗄 수 있을 거라는 아빠의 희망은 사라졌다.
요양병원으로 옮긴 뒤 만난 의사는 말했다. "아버님은(환자분은) 아시겠지만,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이세요." 이 말을 이렇게 듣다니. 그 순간 어느 바카라 몇 페이지쯤에서 읽었음직한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어야 했다. 아빠는 지금이 가장 좋은 순간이다. 증상을 늦출 순 있지만 멈출 순 없다. (무엇보다 루게릭은 신체기능은 점차 마비되는데 마지막까지 인지 기능에는 문제가 없어서 재앙의 병이라 불리기도 한다.)
루게릭의 증상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대부분은 신체 마비 증상이 먼저 나타난다. 그런데 아빠는 호흡과 연관된 근육의 마비가 먼저 진행됐다. 모든 병이 나쁘지만, 모든 아픔은 슬프지만 무척 이기적이게도 나는 잠깐 나쁜 생각을 생각했다. 차라리 암이었으면. 적어도 아빠가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을까. 아무런 준비 없이 기척도 없이 119에 실려온 8월 중순부터 아빠의 일상은 멈췄다. 집은 방치되었고, 아빠가 일구던 텃밭은 시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전 아빠가 아끼던 시골집은 더 이상 아빠집이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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