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도서관 귀신을 물리치다

'바카라세권' 입문기 1



굳게 닫힌 문을 노려보다가

저는 1988년부터 2015년까지 국어교사였어요. 경북 봉화중학교에서 시작하여 울산 화봉고등학교에서 끝냈어요. 봉화에서 화봉이라, 글자 순서만 바뀐 게 꽤 재밌네요.

긴 세월 동안 돌고 돌아 원점으로 회귀했다는 느낌도 살짝 들지만, 그건 아니지요. 그동안 저의 내면이 만들어지거나 다듬어져갔고, 학교에서 만난 평생의 벗들이 생겼으며, 새롭게 하고 싶은 일도 찾게 되었으니까요.


2002년, 학교도서관은 질식 그 자체였어요. 어느 학교랄 거 없이 도서관은 끄트머리 구석진 곳에 있어서 아무도 찾지 않은 곳이었어요. 아이들 사이에 꽤 그럴듯한 도서관 귀신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였으니까요.

때로는 재밌고 때로는 그럴싸하기도 했지만, 국어교사인 저에게는 마음 아프고 부끄러운 이야기였답니다.

어느 날 저는 굳게 닫힌 학교 도서관 문을 노려보았어요. 저 문을 열고 켜켜이 쌓인 서가 먼지를 털어내자 싶었어요. 오래된 전집류 대신 신간 도서를 비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적합한 바카라, 다양한 독서 활동으로 북적이는 도서관……. 머릿속으로 행복한 그림이 그려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최소 조건인데 그때만해도 꿈같은 이야기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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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허니에서 열린 울산국어교사모임의 <이내북콘서트>

그런데 말이에요. 그게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어요. ‘학교 도서관을 살리는 전국교사모임’이란 게 꾸려지고 있더라고요. 이런 고마울 데가 있나! 울산의 국어 선생들도 모였답니다.

쏟아지는 새 바카라 중에서 우리가 직접 읽어보고 골라낸 걸 아이들에게 추천하자고요. 또, 추천만 하지 말고 아이들과 실제로 독서 활동도 해보자고요.

그 마음들이 모여 <독.도랑 놀자(도서실에서 독서하며 놀자)>가 시작되었어요. 울산의 여러 학교 국어교사들이 격주마다 모여 읽은 바카라을 소개하고, 아이들과 나눌 독서 활동 내용을 의논했지요.

‘지금, 여기’ 아이들의 삶을 다룬 청소년소설들을 소개하고 활동을 안내하는 자료집도 만들었고요. ‘노는 것처럼 즐겁게 바카라 읽는 학교 도서관 문화’를 꿈꾸며 서로를 다독이고 위안받는 동안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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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허니를 찾아준 신선여고 학생들



아이들과 마주한 ‘어린 나’들, 바카라으로 성장하기


<독.도랑 놀자> 모임 초창기에는 주로 청소년소설을 읽었어요. 문제가 생기면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사춘기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말이라도 붙여보려면 아이들을 알아야겠다는 절박함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청소년소설을 읽고 나누는 동안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사태가 생겼어요.


저와 동료들의 사춘기가 꿈틀거리고 나오는 거예요. 어른, 게다가 선생이 된 여자들이 둘러앉아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 엄마, 형제들에게 그때 왜 그랬냐고, 그때 섭섭했노라고 따져 물으며 울기도 했어요.

화내고 우는 선생에게, 과거에 받지 못했던 공감과 위로를 건네며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동료도 있었고요.


우리는 각자의 내면에 똬리 틀고 있었던 ‘어린 나’를 비로소 보듬을 수 있었지요. 아울러 현재의 아이들을 조금씩 이해했으며, 동굴로 들어가는 아이들에게 진심을 건네는 연습도 할 수 있었답니다.

수업 시간, 상담 시간을 통해 아이들에게도 청소년 바카라을 권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도록 했어요. 그러자 개인에게 맞는 바카라을 권할 수 있었고요. 아이들은 저마다의 취향과 목표에 따라 바카라을 찾아 읽고 또 바카라으로 길을 찾기도 하더군요.


아이들과 바카라으로 성장한 이야기를 하려니 <독서·논술반> 동아리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논술고사가 대학 진학의 엘리베이터가 되기도 했던 시절이었지만 저는 독서 비중을 무겁게 했어요. 진정한 논술은 글쓰기 기능이 아니라 진심을 전달하는 힘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읽고 싶은 바카라을 두 주에 걸쳐 읽고, 셋째 주에는 글을 쓰고, 넷째 주엔 그 글을 돌려 읽고 짧은 의견을 달아주며 수업을 진행했어요. 교사는 물론 학생에게도 워낙 빡빡한 학교 일정상 제가 욕심낼 수 있는 최대치였답니다.


동아리 시간은 늘 부족하고 아쉽게 흘러갔지만, 아이들은 시간이 쌓이는 만큼 성장해 나갔어요. 지금도 생각나는 학생이 있답니다.

지극히 평범하여서 한 학기 동안 이름 부를 기회가 거의 없었던 학생이었어요. 말수가 적긴 동아리 시간에도 마찬가지였으나 꼬박꼬박 바카라을 읽고 정성껏 글을 써내더군요.

그래서였겠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저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그 친구 글을 기다리게 되었어요. 그 학생은, 열심히 읽으니 쓸 거리가 있고 쓰는 과정을 통해 더 잘 읽어내는, 바카라과의 선순환을 경험하는 진정한 독자였어요. 언젠가 그 학생이 바카라으로 받은 위안, 바카라으로 자라난 자기 성장에 관한 글도 썼더군요.


존재감을 넘어 자존감이 점점 자라는 학생을 바라보는 제 마음 역시 뿌듯하더군요. 그 이후, 독서가 왜 필요한지 말해야 할 때, 저는 그 학생 글을 아이들에게 읽어주었어요.

저는 바카라의 힘을 믿는 교사로 지냈고요. 지금도 바카라방 바이허니에서 바카라으로 '놀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