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나쳐 걷는 사람들
1년이 넘게 출근길을 걷다 보니 여러 사람들과 마주친다. 시내를 가로지를 때는 지나는 사람들이 있는 편이지만, 원문고개로 들어서고부터는 마주치는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 다들 굳이 걸어 다녀야 할까 하고 생각이 드는 길이기 때문일까?
사실 그 고갯길은 걷기에 최적화된 길은 아니다. 도로를 중심으로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에 틈틈이 가로수들이 서 있어, 앞에서 사람이 마주 온다면 서로 살짝 양보가 필요한 길이다. 고개의 꼭대기에는 큰 교차로가 있어 늘 조심하며 건너야 한다.
교차로를 지나 내리막으로 접어들면 길은 도로에서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고, 풀숲에 점점 가까워진다. 이곳은 길 양쪽으로 풀이 울창하다. 날이 따뜻할 때는 색색의 나비를 만나기도 하고, 요즘은 참새떼가 나무에 앉아 재잘거려 나무에 참새가 앉은 건지, 참새에 나무가 덧붙은 건지 구분이 안될 때도 있다. 철마다 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이슬을 머금고 빛날 때는 사진을 찍어 무슨 꽃인지 찾아보기도 한다. 내리막 역시 사람이 많지 않아 크게 노래를 따라 부르며 걸을 수도 있어서 좋지만, 풀이 무성해질수록 내가 걸을 길이 좁아진다.
때가 되면 길을 따라 풀을 베는 작업이 시작된다. 걷는 사람이 많이 없는 길인데도 풀이 무성해지면 어떻게 알고 작업을 한다. 풀을 베고 나무를 정리하는 날이면 평소보다 훨씬 짙은 나뭇잎 냄새가 난다.
그 냄새를 따라 내리막으로 들어서면 이미 작업 중인 분들이 각자 맡은 구역을 정리하고 계신다. 톱니날이 달린 길쭉한 기계로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풀을 베는 작업자를 만나면, 작업을 멈추고 내가 지나갈 때까지 잠시 기다려준다. 나무를 정리하는 작업자를 만나면, 내 머리 위로 나뭇가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또 잠시 멈춰 기다려준다. 그럴 때마다 작은 마음을 담아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이 길을 계속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만들어주시는 수고에 감사하며 계속 길을 걷는다.
어떤 날에는 아저씨 한 분이 두꺼운 바퀴의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길에 올랐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시나 보다 생각하며, 상대적으로 몸이 가벼운 나는 아저씨를 먼저 지나쳐 오르막을 걸었다.
평소처럼 고개를 넘어 내리막 끝 부분에 이르렀을 때쯤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걷고, 이 길은 사람이 드문 곳이라 사람과 마주칠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인기척에 놀라 뒤돌아보았다. 아까 지나쳤던 아저씨가 내리막부터는 자전거를 타고 내려와 금방 따라온 것이었다. 아저씨는 벨을 울리지 않고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배려해 주셨다. 나는 갑작스레 놀라 반사적으로 인사를 하며 먼저 가시라고 웃으며 길을 비켜드렸다.
며칠 뒤 다시 그 아저씨를 만났다. 그날도 내가 먼저 지나쳐 올라갔고, 내리막에서 다시 마주쳤다. 이번에는 아저씨가 먼저 말을 걸며 “저번에도 걸었던 아가씨 맞죠?”라고 물으셨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얼른 길을 비켜드렸다.
아저씨의 얼굴에 ‘왜 걸어 다녀요?’라는 물음이 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옆 길로 빠져나왔다. 사실 누가 그렇게 묻는다면 나도 특별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제일 큰 이유는 그냥 걸으면 좋아서인데, 이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저씨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 뒤로 만난 또 다른 사람은 오르막 꼭대기에서 전도하시는 분이다. 이분이야말로 나보다 더 규칙적이신 분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어떤 루틴을 갖고 그 꼭대기에 서 있는 듯했다. 항상 정장을 차려입고 몸에 큰 푯말을 걸고, 지나가는 차들에게 인자한 표정으로 손을 흔드신다.
나는 종교가 없어서, 처음에는 길 가는 나를 붙잡아 전도하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이 있었다. 하지만 지나갈 때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늘 축복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길을 양보해 주셨다. 이제는 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목례를 건네며 지나간다.
걸어 다니며 마주친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모두 각자의 이야기와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려고, 건강을 위해, 혹은 자신만의 신념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도 나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할까 하는 궁금함이 든다.
그리고 모두 하나같이 양보해 주고 배려해 준다. 나를 마주쳤을 때 잠시 길을 멈추고 내가 먼저 지나가도록 기다려준 사람들도 있다. 이런 경험은 넓고 쾌적한 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마음들이다. 보통 사람끼리 서로 양보를 나누며,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내가 걷는 걸 좋아하는 이유 중 작은 한 부분이 바로 이런 순간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