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시나요?

비노무사, 비회계사라고 하지는 않으시죠?

by윤지아

나는 올해로 기업법무만 12년 차인 법무팀 팀장이다.

이전 온라인 게임에서는 직급이 과장이었는데, 이번 회사에서는 직급 없이 “님”제로 통일되어 있고, 팀장급만 팀장이라 불린다고 한다.

이직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직급은 그저 그 회사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일곱 번의 이직을 하며, 어딘가에서는 님으로, 어딘가에서는 매니저로, 어딘가에서는 실장님으로 불렸다.

직급뿐만 아니다. 팀 이름도 회사의 문화에 따라 다양했다.

법무팀, 법무관리본부, 법무유닛, 법무행정실, 법제협력팀 등등.

그러다 보니 팀 이름이라던가, 내 직급 따위는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단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딱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

였다.


그렇다. 난 내가 이 회사에서 뭘 하는지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내 회사생활의 목적이라고나 할까?

남들은 연봉상승을 위하여, 회사의 네임밸류를 위하여 이직할 때, 나의 이직의 기준에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부분은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가장 핏 되는 포지션인가'였다.


기업법무팀에서 하는 일을 크게 보면

계약서 검토..................... 유 팀장 픽 선호업무
법률 질의응답.................. 유 팀장 픽 선호업무
특허출원 검토
신사업리스크 검토
송무 (소송업무 전반)
등기, 주주총회.................. 비선호업무
기타 등등......................... 이직을 고려하게 만듬

등등이 있다.


가끔 채권업무가 법무업무에 포함된 회사들이 있는데, 그런 곳들은 지원조차 하지 않는다.

그 일을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하기 싫어서다.

과거 대기업 송무팀 소속으로 채권업무를 2년간 했던 적이 있는데, 수학처럼 딱딱 떨어지는 업무가 매력적이긴 했지만, 반복적인 그 일이 좀 재미가 없었다.(개인의 취향이다) 물론 그 업무가 더 적성에 맞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좀 더 고민하고 판단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지금은 대기업 계열사까지 오게 되었고, 직원들의 아리송한 질문들(법자 들어간 건 다 물어봄)에 대답을 해주거나, 계약서를 수정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이렇게 내 업무로 꽉 채운 하루가 꽤 재밌고 보람차다.



그런데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회사명"이나 "전문직명"이다.


내가 이렇게 무슨 일을 하는지에 집착하는 반면, 일반 사람들은 일이 아닌 회사명만 궁금해한다.

누군가 넌 무슨 일 해?라고 물어보면, 보통의 사람들은 "회사명"이나 "전문직명"을 말한다.

애초에 직업이 뭐냐는 질문 자체가

"너 어디다녀?" ("어디" = 회사명)이다.

그리고 대답도 대부분 이렇다.

응~ 나 삼성 다녀.
-> 이경우 삼성에서 그 사람이 뭘 하는지는 전혀 안 중요하고, 그냥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삼성"에 꽂힌다.
응~ 나 변호사야.
-> 전문직은 이렇게 한마디로 뭘 하는 사람인지 요약할 수 있어 좋다.

사실 영어권은 다르다.

What's your job?로 직업을 물어보면,

대답은 직무로 대답한다.

I'm an engineer.

I'm a designer.


이 뜻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문직을 제외한 온라인 게임인의 경우 온라인 게임의 네임밸류로 사람을 판단할 뿐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 게 중요한지가 가장 중요한 나는, 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말이 구차하고 길어질 수밖에 없다.

어 000 앱을 운영하는 핀테크회사 법무실에서 기업법무업무를 해.

이러한 구차함 때문에 금번 이직한 회사는 대기업 계열사라 나도 그냥 “회사명” 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있긴 하다.


무슨 일을 하는지 중요하고 너무나도 말해주고 싶지만, 뭐라 한마디로 표현할 길이 없어 아쉽다.

변호사처럼 딱 떨어지게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패러리걸(paralegal)이란 용어가 있긴 하지만, 말해도 잘 모를 터이고, 어차피 이 용어는 우리나라에선 법무법인 내 어시스턴트로 더 흔하게 쓰인다.

기업 내(in-house) 법무담당자를 표현하는 변호사가 아닌 직원은 역시 웃프게도 비변호사가 딱이다!!


그러나 나만 애쓸 뿐 사실 듣는 사람 입장에선 법무팀이나 인사팀이나 재무팀이나 뭐 큰 관심 없이 그냥 회사원일 뿐이다.



나는 내 일에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며 자부심을 느낀다.


온라인카지노스토리 작가소개란의 직업을 넣을 때도 열심히 커서를 아래로 내려 살펴봐도 정답은 그렇다.

나는 단지 "회사원"을 찍을 수밖에 없다.

특수하고 전문적이라 자부해 온 나의 업무를 단지 "회사원"이라 표현해야 할 때의 허탈함.


어젯밤, 아이를 재우면서 일곱 살 우리 딸이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는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될 거야?"

나는 아이를 쓰다듬으며, 엄마는 이미 다 커서, 지금이 엄마의 이다음이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는 또 물었다.

"그러면 엄마는 뭐가 됐어?"

또다시 할 말이 없어진다.

이거 참... 이럴 때만큼은 변호사 자격증이 너무나도 탐이 난다.

(한마디로 뭘 하는지 표현할 수 있다니 너무나 편하잖아!)

그 단축적인 표현이 갖고 싶어 변호사 자격증을 탐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기업법무의 업무는 변호사의 업무와 겹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확실히 난 변호사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난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기업 내 법무 담당자다.

딸이 조금 더 크면 이렇게 대답해 주어야겠다.

"엄마는 회사 법무팀에서 일해. 그리고 이건 엄마가 하고 싶었던 일이고, 엄마는 그 꿈을 이뤘어!"

라고 말이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