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온 주말 내내 휴대전화만 봤다

by정세복

지원이 본가에 내려온 건 석 달 만이었습니다. 금요일 밤 열한 시 가까이 되어 현관문을 열자 엄마가 거실 소파에서 일어났습니다. "왔어? 밥은?" 지원은 기차에서 김밥을 먹었다고 했고, 엄마는 "그래도 뭐 좀 먹어" 하며 냉장고에서 사과와 배를 꺼내 깎았습니다. 지원은 가방에서 역 앞 가게에서 산 핸드크림을 꺼내 식탁에 올려 두었습니다. 엄마는 "뭘 이런 걸 사 와" 하고 웃었습니다.

과일 접시를 내려놓은 뒤로 엄마는 소파 끝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여다봤습니다. 지원이 기숙사 이야기를 꺼내자 "응, 응" 하고 대답은 했지만 눈은 화면에 가 있었습니다. 지원은 사과 두 쪽을 먹고 씻으러 들어갔습니다. 나와 보니 엄마는 같은 자리에서 여전히 화면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토요일 아침은 시작만 평소 같았습니다. 엄마는 지원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여 놓고 깨웠습니다. 밥상 앞에서 "학교는 괜찮아? 밥은 잘 챙겨 먹고?" 하고 물었습니다. 지원이 룸메이트가 새벽마다 알람을 세 번씩 끈다는 이야기를 시작하려는데 엄마의 휴대전화가 진동했습니다. 엄마는 화면을 보더니 "잠깐만" 하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찌개가 다 식을 때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녁에는 둘이 늘 같이 보던 주말 드라마를 틀었습니다. 지원은 지난주 줄거리를 엄마에게 물어볼 생각이었습니다. 드라마가 20분쯤 흘렀을 때 또 전화가 왔고, 엄마는 베란다로 나가 유리문을 닫았습니다. 지원 혼자 드라마를 끝까지 봤습니다. 지난주 줄거리는 끝내 묻지 못해서, 누가 누구와 왜 싸우는지 반쯤 모른 채로 봤습니다. 다음 회 예고가 나올 때까지 엄마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엄마가 거실 불을 끄러 나왔을 때 지원이 물었습니다.

"엄마 요즘 바빠?"

"아니, 그냥. 일찍 자."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지원은 「그냥」이라는 말을 이불 속에서 몇 번이나 되짚었습니다. 그 말이 자기를 피하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일요일 아침, 지원이 일어났을 때 엄마는 집에 없었습니다. 식탁에 쪽지가 있었습니다. 「잠깐 나갔다 올게. 국 데워 먹어.」 지원은 혼자 국을 데워 먹었습니다. 식탁 한쪽에는 금요일에 올려 둔 핸드크림이 상자째 그대로 있었습니다. 엄마는 점심 무렵 돌아왔고, 장바구니도 없이 빈손이었습니다. 어디 다녀왔냐고 묻자 엄마는 "응, 볼일 좀" 하고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지원은 더 묻지 않고 점심상에 수저를 놓았습니다.

일요일 점심을 먹으면서 지원은 속으로 이유를 셌습니다. 요즘 내가 연락을 덜 해서일까. 지난번 통화를 바쁘다고 빨리 끊어서일까. 엄마가 뭔가 서운해서 저러는 거라면 그 이유를 찾아 먼저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기차 시간은 오후 네 시였습니다.





「바빠?」가 묻지 못한 것


토요일 밤의 질문부터 다시 보겠습니다. 「엄마 요즘 바빠?」는 걱정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엄마가 「아니」라고 하면 더 이어 갈 데가 없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지원이 정말 하고 싶던 말은 따로 있었습니다. 「오늘 밤엔 엄마랑 얘기 좀 하고 싶어.」 그 말 대신 나온 「바빠?」는 엄마에게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엄마도 「그냥」이라는, 아무것도 내주지 않는 말로 답할 수 있었습니다.

지원이 그 밤에 바란 장면은 꽤 구체적이었습니다. 거실에 둘이 앉아 드라마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 동네 이야기로, 지원의 학교 이야기로 넘어가는 늦은 밤. 지원은 내려간다고만 했지, 그런 밤을 기다린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엄마는 딸이 그 장면을 품고 기차에 탔다는 걸 모릅니다. 모르는 걸 채워 주지 못했다고 엄마를 탓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서운한 마음은 남습니다.





서운함에 붙은 설명


지원의 주말에는 두 가지가 한데 붙어 있습니다. 하나는 서운함입니다. 석 달 만에 왔는데 엄마와 이야기를 거의 못 했습니다. 이건 지원이 직접 겪은 일이고, 서운한 게 당연합니다. 다른 하나는 그 서운함에 재빨리 붙은 설명입니다. 「엄마가 나한테 뭔가 서운해서 저런다.」 이쪽은 지원이 확인한 적이 없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멀게 느껴지면 우리는 이유를 먼저 찾고, 그 이유를 자주 내 쪽에서 찾습니다.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고칠 수 있으니까요. 고칠 수 있다고 믿으면 조금 덜 불안합니다. 하지만 지원이 이유를 세는 동안 엄마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이틀 내내 엄마를 보면서도 엄마의 주말이 어땠는지는 몰랐습니다.

둘을 떼어 놓으면 할 수 있는 말이 달라집니다. 「엄마 나한테 화났어?」는 짐작을 확인해 달라는 말입니다. 엄마는 그 짐작부터 아니라고 해명해야 합니다. 「이번엔 엄마랑 얘기를 많이 못 해서 서운했어」는 내 마음만 건네는 말입니다. 엄마는 하고 싶은 만큼만 답할 수 있고, 하지도 않은 잘못을 해명할 일도 없습니다. 물론 엄마가 딸에게 함부로 말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그건 사정과 상관없이 따로 짚을 일입니다. 이번 주말의 엄마는 딸을 반겼고, 찌개를 끓였습니다.





올라가는 기차에서


엄마는 역까지 차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차 안에서도 엄마의 휴대전화가 한 번 울렸고, 엄마는 신호에 걸렸을 때 화면을 확인했습니다. 지원은 창밖을 봤습니다. 플랫폼에서 엄마는 반찬 가방을 건넸습니다. 멸치볶음과 깻잎, 지원이 지난번에 맛있다고 한 오이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엄마는 지원의 패딩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려 주었습니다. "도착하면 연락해." 엄마는 기차가 움직일 때까지 손을 흔들었습니다.

기차가 출발하고 30분쯤 지나서 지원은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보내기 전에 한 번 소리 없이 입으로 읽어 봤습니다. 엄마 얼굴을 보고는 끝내 못 한 말이었습니다.

"엄마, 이번엔 엄마랑 얘기를 많이 못 해서 좀 서운했어. 무슨 일 있으면 다음엔 그냥 말해 줘."

보내고 나서 지원은 반찬 가방을 무릎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답은 한 시간 뒤, 기차가 거의 도착할 무렵에 왔습니다.

"미안해. 요즘 외할머니 일 때문에 엄마가 정신이 없었어. 다음에 내려오면 얘기할게."

서운함에 붙여 둔 설명 하나를 떼어 내면, 그 자리에 무엇이 남나요?










이 글은 《사랑은 고통을 없애지 않는다》 1장을 바탕으로 새로 썼습니다. 글 속 인물과 장면은 지어낸 예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