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가을 하늘에 주홍빛 감

by해윤이

수원화성 창룡문과 동북공심돈 사이, 성벽 바깥쪽에는 감나무가 몇 그루 서 있어 성안을 산바카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감을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풍경입니다. 파란 하늘에 주홍색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 말입니다. 저는 혹시 떨어진 감이 없나 성벽 구멍으로 내다보기도 합니다.


제가 감을 좋아하는 이유는 감이 아름답고 풍요로워 보여서만은 아닙니다. 어린 시절 저희 집 뒤란에는 대봉감나무 네 그루와 넓적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감나무는 새순이 나오면 오월의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입니다. 감꽃이 하얗게 피고 열매가 밤톨만큼 자라면 감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지요. 떨어진 감은 며칠 지나 말랑하게 익으면 떫은맛이 사라지고 달콤해집니다.


간식거리가 귀하던 시절에는 그 떨어진 감도 맛있는 간식이었습니다. 감이 누르스름해지면 어머니는 항아리에 소금물을 만들어 붓고 떫은 감을 넣어 두셨는데, 이를 '침 담근다'라고 했습니다. 며칠이 지나면 떫은맛이 빠지고 달콤한 간식으로 변했지요. 어린 시절에는 감나무 밑을 자주 찾았습니다. 감이 익었나 올려다보기도 하고, 떨어진 감이 말랑하게 익었으면 얼른 집어 들곤 했습니다. 반으로 갈라 혀끝으로 맛을 본 뒤 달콤하면, 껍질 부분을 손으로 오므려 입으로 쪽 빨아먹던 추억도 있습니다. 감이 주황색에서 주홍색으로 물들어 갈 때는 감나무만 보아도 행복했습니다.


된서리가 내리고 나면 감을 땄습니다. 감 따는 날은 집안의 큰 행사였습니다. 감나무 밑에는 울긋불긋한 감잎이 살포시 내려앉아 있었고, 온 가족이 바구니를 들고 모여들었습니다. 큰오빠가 사다리에 올라 감을 따서 내려주면 저희는 바구니에 받아 담았습니다. 가끔 오빠가 홍시를 조심히 건네주면 그걸 받아먹느라 다음 감을 늦게 받아 혼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지요. 그런 저를 보며 흐뭇하게 웃던 오빠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감을 다 따고 나면 나무 꼭대기의 감 몇 개는 까치밥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부지런히 물렁한 감과 단단한 감으로 가렸습니다. 가장 단단한 감은 껍질을 벗겨 곶감을 만들고, 감 껍질과 얇게 저며 썬 감은 채반에 널어 감말랭이로 말렸습니다.


날씨가 추워지고 하얀 눈이 내릴 때, 따뜻한 아랫목에서 차갑고 말랑한 연시를 꺼내 먹던 달콤한 맛과 행복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는 자식들이 배곯으면 안 된다며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도록 과일나무를 심어 놓으셨습니다. 앵두나무, 포도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감나무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감입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해마다 대봉감 두 박스를 삽니다. 연시가 되면 한 개씩 꺼내 먹는데, 며느리도 대봉감을 좋아해서 지난해부터는 며느리 몫으로 한 박스를 더 삽니다. 명절 무렵에는 곶감도 두 박스 구입합니다. 그래야 감에 대한 갈증이 풀리고 기분도 상쾌해집니다.


감을 좋아하는 이유가 효능 때문은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꾸준히 먹으며 자랐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감에는 비타민 C와 비타민 A(베타카로틴)가 풍부하고 식이섬유와 칼륨도 들어 있어, 감기 걱정 없이 겨울을 나는 데 한몫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감의 떫은맛을 내는 타닌은 철분 흡수를 방해할 수 있고, 덜 익은 감이나 곶감을 빈속에 많이 먹으면 속이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변비가 있는 분이나 철분제를 드시는 분은 양을 조절해서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감이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는, 예전에 안 먹던 남편도 요즘은 감을 아주 좋아합니다.


저는 산바카라길에서 감나무가 보고 싶어 그 길을 자주 걷게 됩니다. 파란 하늘에 주홍색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를 바라보며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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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경이로운 삶을 기록하는 사람. 23년째 교실 밖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배움의 현장을 지켜왔고, 그 시간 속에서 발견한 삶의 이야기들을 글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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