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의 오토바이 택시 이야기
퇴근 시간이다. 부리나케 가방을 챙겨 회사 앞 오토바이 택시 승강장으로 간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는 시간이다. 조금만 늦어도 오토바이가 돌아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주황색 조끼를 입은 기사들이 오토바이에 제각각 걸터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앞쪽에서 출발 준비를 하던 기사 아저씨가 나를 먼저 알아본다. 눈이 마주치자 씩 웃는다. 나도 손을 들어보인다. 오토바이를 타겠다는 신호다. 아저씨는 곧장 오토바이를 몰고 내 쪽으로 다가온다. 이제는 목적지를 말할 필요도 없다. 뒤에 올라타면 오토바이는 곧장 우리 집을 향해 달려간다. 자동차들이 꼼짝없이 서 있는 도로를 오토바이는 잘도 빠져나간다. 자동차 창문 너머로 바라보던 거리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자동차들이 하나둘 뒤로 밀려난다.
나는 아직 자전거도 못 탄다. 두 바퀴로 균형을 잡고 달리는 일은 영 자신이 없다. 그런 내가 오토바이 뒤에서는 속도감을 즐긴다. 직접 운전할 용기는 없으면서 달리는 기분은 포기할 수 없다니. 어쩌면 오토바이 택시는 내게 꽤 근사한 대리만족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오토바이를 탈 때마다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무서워서 좀처럼 타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나도 처음에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기만 해도 온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손님용 헬멧이 늘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운전이 서툴러 보이는 기사나 바쁜 시간에는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려는 듯 속도를 높이는 기사도 있다. 비가 내린 뒤에는 미끄러운 노면과 고인 물, 움푹 팬 도로까지 살펴야 한다. 좁은 도로에서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여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지금도 아슬아슬하다.
오토바이와 가까워진 건 탄자니아 생활 덕분이었다. 그때는 동네 곳곳을 오갈 만한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아 어딘가로 가려면 오토바이 택시나 바자지라고 부르는 삼륜차를 타야 했다. 무섭다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처음 오토바이 택시에 올라탔을 때는 손으로 어디를 잡아야 할지 몰라 어정쩡한 자세로 달렸다.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있어서인지 내리고 나면 근육통이 생길 정도였다. 그래도 한적한 길을 자주 달리다 보니 어느새 드라이브라도 하는 듯 슬슬 긴장이 풀렸다. 오토바이 뒤에 앉아 바람을 맞는 일이 즐거움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방콕에 처음 왔을 때도 남편은 자동차 대신 오토바이를 몰았다. 첫째가 아직 아기였을 때다. 함께 나가야 할 때면 아기띠에 아기를 안고 남편 뒤에 올라탔다. 아이는 오토바이의 잔잔한 진동을 느끼며 아빠 등에 기대어 쌔근쌔근 잠들곤 했다. 우리 셋이 함께 누렸던 그날의 바람이 아직도 생생하다.
방콕의 출퇴근길은 자동차를 타고 있으면 끝이 보이지 않는다. 멀지 않은 거리인데도 앞차의 꽁무니만 바라보며 한두 시간을 보내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차 옆으로 쌩 하고 지나가는 오토바이가 부러워진다. 도무지 공간이 없어 보이는 차들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간다. 사람 한 명 겨우 지날 것 같은 골목길로도 거침없다. 요리조리 틈을 찾아 앞서 달리는 오토바이들을 보고 있으면 당장 차 문을 열고 뒤에 올라타고 싶어진다. 복잡한 도로와 좁은 골목이 얽힌 방콕에서 오토바이가 사랑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것은 동네마다 정해진 장소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오토바이 택시다. ‘윈(วิน)’이라고 부르는 승강장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동네 골목 입구나 큰길 주변에는 지정된 오토바이와 기사들이 어김없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 동네에도 늘 같은 얼굴들이 그 자리를 지킨다. 윈의 기사들은 주변 길을 훤히 꿰고 있다. 어느 골목이 막히는지, 어디에서 공사가 시작됐는지, 평소에 차가 몰리는 길이 어디인지 잘 알고 있다. 큰길이 막히면 어느 골목으로 돌아가야 할지 판단도 빠르다. 동네의 윈 기사들은 이 도시의 틈을 읽는 사람들이다.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출근한 아침과 달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혼자다. 익숙한 윈 기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차례를 기다렸다가 오토바이 뒤에 올라탄다. 조금 전까지 멀게만 느껴졌던 집이 금세 가까워진다. 오토바이는 막힌 도로 사이로 틈을 찾아 달린다. 나는 오늘도 그 틈에 실려 집으로 돌아간다.
★ 이방인의 메모
방콕의 오토바이 택시 승강장과 그곳에 소속된 기사들은 흔히 ‘윈(วิน)’이라고 부른다. 윈은 동네 골목 입구나 큰길 주변 등 정해진 장소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정식으로 등록된 공공 오토바이 택시는 노란색 번호판을 사용하며, 운전기사는 공공 운전면허를 갖춰야 한다. 기사 정보와 주황색 조끼, 차량 등록 정보도 서로 일치해야 한다.
윈은 동네마다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기사들이 주변 도로 사정에 익숙하다. 요금은 이동 거리와 구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탑승 전 목적지를 말하고 요금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앱을 통해 오토바이 택시를 호출하는 방법도 있지만, 동네 윈은 승강장에서 바로 이용할 수 있다는 편리함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윈 기사들이 입는 주황색 조끼에도 거래 가격이 붙는다는 점이다. 조끼에는 소속 윈과 기사 번호가 표시되며, 정식 운행에서는 해당 조끼와 기사·차량 정보가 일치해야 한다. 태국 교통 당국은 등록된 기사가 다른 사람에게 조끼를 빌려주거나 판매하거나 대신 사용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지역에서 조끼를 사고팔거나 빌려주는 비공식 거래가 이루어져 왔다. 특히 역이나 대형 상업시설, 주요 도로 주변처럼 손님이 많은 윈은 그곳에서 일할 기회 자체에 가치가 붙기 때문이다. 방콕 도심의 번화한 구역에서는 조끼 한 장 값이 5만 바트에서 많게는 30만 바트, 우리 돈으로 약 200만 원에서 1,000만 원을 넘기도 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