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 범블에 가입한 날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는 막막함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무인도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헬기가 지나가기를 바라는 기분? 로또 1등 당첨 용지를 찾으려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기분?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희망, 또는 기약 없는 미래의 배우자를 찾는 심경이 그렇지 않을까. 특히 자연스러운 만남의 계기도, 소개팅을 부탁할 인맥도 고갈관 30대 후반이라면.
그래서 그 막연함을 줄이고자 이상형이라는 명목으로 만난 적도 없는 이를 구체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상형 따위, 아무 의미 없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익혔으면서도.
데이팅 앱을 시작했을 때, 나는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그렸다.
헛헛한 하루의 끝에서 온기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주말에 당연한 듯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 손을 잡고, 입맞춤하고, 밤새 껴안을 수 있는, 서로에게 유일한 사람.
언제부턴가 늘 엄마 되기를 꿈꿨지만 현실적으로 재혼은 어려울 테니, 사랑만으로도 오래도록 연결될 수 있는 오직 나만의 사람.
도쿄에 살지만 일본어보다는 영어가 편한 내게 적합한 앱은 오로지 틴더(Tinder)와 틴더의 공동창업자 설립한 범블(Bumble)뿐이었고, 그중에서 여성이 먼저 행동해야 관계가 시작되는 범블에 이끌렸다.
사실, 범블을 다운로드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혼 직후 충동적으로 스와이프를 하다 ‘누군가도 나를 이토록 심드렁한 표정으로 왼쪽으로 치우고 있겠지’ 하는 자괴감을 견디지 못해 며칠 만에 탈퇴했을 뿐.(물론, 대화하다 인스타그램까지 주고받은 연하의 이탈리아인과 연락이 흐지부지된 실망감도 한몫했다)
시간이 흘러, 더 짙어진 외로움과 절박함을 품고 돌아와서일까. 아니면 주변에 데이팅 앱으로 배우자를 만난 지인이 넷을 넘어서면서 의욕이 상승했기 때문일까. 오랜만의 영작임에도 불구하고 프로필이 술술 써졌다.
얼굴이 작게 나온 전신사진과 측면 사진으로 다섯 장을 채우고, 오랜만에 써 보는 영어 이름을 넣고, 온라인 게임을 밝힐 용기는 없어, ‘한국인 작가 겸 번역가’라는 다소 자의식 과한 타이틀을 달았다.
학력, 종교, 키, 음주와 흡연 여부, 추구하는 관계 등 세부적인 질문에도 솔직히 답했다.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라는 주관식 질문 앞에서는 조금 고민했지만, 이내 ‘진정성(sincerity)’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데이팅 앱에서 진정성 찾기라니, 헛웃음이 새어 나오려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았다. 현지 가이드를 찾는 여행자나 육체적 관계에만 편중된 사람, 조작된 사진이나 거짓 정보 뒤에 숨은 사람이 있다면 부디 나를 피해가 주기를 바랐다.
범블의 친절한 안내대로 빈칸을 채우고 보니, 어느새 제법 길고 성의 있는 프로필이 완성되어 있었다.
이제, 무한한 스와이프의 굴레에 스스로를 내던질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