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10/17(Sat) Battle of Plassey

byAndrew Oh

플라시 전투(Battle of Plassey)는

1757년 6월 23일 인도 벵골에서 벌어진 전투로,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하는 결정적인 출발점으로

평가됩니다.








단순한 군사적 승리라기보다 돈·금융·매수·정치공작을 이용해 훨씬 큰 군대를 무너뜨린 사건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당시 벵골은 인도에서도 매우 부유한 지역이었습니다.


벵골의 통치자 시라지 웃 다울라와 영국 동인도회사가 충돌했고, 영국 측 지휘관은 로버트 클라이브였습니다.


병력만 보면 영국 동인도회사 측은 약 3,000명,

벵골 측은 약 5만 명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클라이브는 정면승부만 준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벵골군의 유력 지휘관 미르 자파르(Mir Jafar) 등과

비밀리에 접촉해, 시라지 웃 다울라를 배신하면

그를 새로운 벵골의 통치자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실제 전투가 시작되자 미르 자파르를 비롯한

상당수 병력이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았고,

결국 벵골군의 지휘체계가 붕괴했습니다.

영국이 압도적인 병력 차이를 뒤집을 수 있었던

핵심 배경입니다.


전투 이후 미르 자파르는 벵골의 나와브가 되었지만

영국 동인도회사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됐습니다.


영국은 이를 통해 벵골 정치와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했고, 이후 벵골에서 막대한

세수와 부를 확보하면서 상업회사였던

동인도회사가 영토를 지배하는

정치·군사세력으로 변해갔습니다.


특히 앞에서 질문하신 ‘자본 조달’이라는 관점에서

플라시 전투가 아주 중요합니다.


영국은 처음부터 본국의 세금만 가지고

인도를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벵골을 장악한 뒤 현지의 세금과 부를 확보하고

그 돈으로 인도인 세포이 병력을 고용하고

다시 다른 인도 지역을 정복하는 방식이

가능해졌습니다.


즉,


영국의 초기 자본·동인도회사 플라시 승리

벵골의 세수·부 확보 현지 군대 유지

추가 정복 더 많은 세수 확보

라는 일종의 ‘정복이 다음 정복의

비용을 조달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플라시 전투는 “영국군 3천 명이

5만 명을 이긴 전투”라고만 이해하면 핵심을 놓칩니다.


금융력, 현지 엘리트와의 거래, 내부 배신,

동인도회사의 군사력이 결합하면서 영국이

인도에서 제국을 구축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얻었다는 점이 더 중요합니다.


원하시면 다음으로 “플라시 전투 벵골 세금징수권

(디와니) 영국 산업혁명의 자본축적”이 실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까지 이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세계의빌런_영국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Andrew Oh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공저: GYBM인재사관학교 /2026년 5월 출간

10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8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83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10/17(Sat) 1億총옥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