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듬다

_ 보듬는 마음

by유재은


보듬는 마음은 아름답다. 누군가를 안아주는 응원. 하염없는 정서적 지지. 한결같은 마음의 시선. 보듬고 어루만지는 사랑. 이러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눈부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조용했고 다분히 진지한 아이였다. 외갓집에 다녀오던 늦은 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잠에 곯아떨어진 동생들 곁에서 말없이 한강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날 있었던 어른들의 일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들을 하며 조금씩 자라났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되어 차를 몰고 같은 장소를 지나는 밤이면 어린 내가 떠오르곤 한다. 마포대교에 진입하면 창문에 코를 박고 센티한 순간을 보냈던 그 아이는 어떤 마음의 시간을 보냈을까. 좀처럼 마음 이야기를 하지 않던 그 시절의 나는 아마도 그렇게 나를 보듬고 살아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수업을 할 때 조용한 아이를 보면 마음이 기운다. 나도 모르게 작게나마 보듬으려 한다.


작은 나로 살아가던 시간에 바카라은 나를 지켜주는 친구였다. 어쩌면 그토록 어려운 환경에서도 굳건하게 살아가는지, 등장인물들의 반짝이는 미소와 묵묵한 걸음이 환한 등대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들어주는 사람으로 살아가다가 어쩐 일인지 나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대학 1학년 동아리에서 만난 남편과의 만남에서였다. 처음으로 사적인 자리에서 마주했는데 나도 모르게 긴 말을 이어가는 내가 낯설고도 편안했다. 그 후 함께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시작한 지 34년, 여전히 그는 나를 보듬어준다. 그것이 내가 넘어지고 흙투성이가 되어도 털어내며 웃을 수 있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흔들려도 다시 곧게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의 바탕에는 한 사람이 있었음을 살수록 깊이 느끼게 된다.


올해는 기회가 되는 대로 나가서 걷겠다고 생각한 만큼 주말의 하루는 집에 있지 않으려 하고 있다. 특별히 무언가를 정하지 않고 그날의 마음에 따라갈 곳을 정해 함께 음악을 들으면서 번갈아 운전을 한다. 봄의 여정은 남편과 대학 시절에 자주 갔던 곳들로 이어지고 있다. 창경궁과 대학로, 인사동과 삼청동, 종로와 광화문. 그러다 지난주에는 낙산 공원의 성곽길을 손 잡고 걸었다. 마주한 야경은 감탄할 만큼 아름다웠지만 그곳에 이르기까지 경사로와 계단이 쉽지 않은 체력이 되다니. 세월을 고스란히 얹고 헉헉 대는 우리는 그곳에서 제법 나이 많은 축에 속했다. 푸릇했던 생의 계절은 어느새 가을로 물들어가고 있지만 청춘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 속에 있으니 괜스레 푸릇푸릇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 멀리 여행을 떠나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도 괜찮다. 소소한 나들이만으로도 달뜨고 행복한 마음. 이번 주는 어디로 가냐고 묻는 남편은 외향적인 사람이라 늘 집에만 있으려고 하던 내가 나간다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따라 환해진다. 말없이 걸어도 좋은 사람과 함께 하면 모든 곳이 특별하다. 반짝이는 두 딸이 같이 한다면 행복의 풍선은 몇 배로 커져 두둥실 날아오르고 말이다. 둘이 보듬다 어느새 넷이 보듬고 있는 우리. 삶은 작은 기쁨과 커다란 슬픔을 몰고 오기도 하지만, 함께 하는 찬란한 동사의 순간들이 있기에 더없이 소중한 날들이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

쫓아내지 말고 품어주어라

아주 예쁜 돌이 된단다


햇빛 뒤에 그늘이 있는 건

사랑스러운 모습이야

밝은 미소를 짓지 않아도

사랑할 이유가 많단다


너의 웃음과 조화로운 너의 눈물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어

흐린 날도 화창한 날도 시린 날도

끼우고 나면 다 퍼즐이 될 거야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

겁내지 말고 마주 앉아라

찬란한 그림이 된단다


(…)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딨어

슬프고도 외로운 밤이

찾아오지 않는 날

모든 게 애틋할 거야"



_ 요즘 내가 무한 재생하고 있는

악동뮤지션의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