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
나는 17개월 된 아들을 잘 키워보려고 애쓰는 한 여성이다. 육아와 자아성찰이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쓰려고 한다. 육아를 하는 사람, 하려고 준비 중인 사람, 육아와 상관없는 사람에게 이 글이 위로가 되길 소망한다.
엊그제는 아이가 열이 39도가 넘어 새벽 2시에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갔다. 여러 검사를 걸친 후 그저 열감기라는 답만 얻고 집으로 돌아왔다. 해열제를 먹이고선 하루를 버티고 지방에 있는 집으로 데려와 아이를 재웠다. 열이 40도가 넘었다. 혹시나 열경련이 일어날까 봐 남편은 아이 곁을 떠나지 못했다. 그는 기도보다는 즉각적인 정보가 필요했다.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계속 서치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못난 나는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해주지 못했다. 나는 매달려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발 이 작은 생명을 도와달라고.
불안한 새벽이 지나고 있었다. 아이는 2~3시간마다 뒤척이며 우는 소리를 냈고 나는 당장 달려가서 열을 체크하고 해열제를 다른 종류로 2시간마다 먹였다. 더 이상 울 힘도 남아있지 않아 축 쳐진 그 작은 어깨를 보며 나는 더 작아졌다. 거실로 나와 아이의 옷을 개다가 눈물이 터졌다. 아,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부모가 된다는 것이 이렇게 큰 바카라임인지 모르고 살았구나.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이렇게 소중한 존재였었겠구나. 아이의 옷이 그날따라 작게 느껴졌다. 아이의 애착 이불을 가만히 만졌다. 아이는 얼마나 세상이 두려웠으면 이 천 조각에 얼굴을 묻으며 그렇게 오래 매만졌을까. 제발 집에 두고 나오라는 말에도 굳이 이 작은 이불을 어린이집에 가져가겠다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픈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며 피곤도 잊은 채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었다.
살면서 이렇게 최선을 다해본 적이 없다. 살면서 이렇게 사랑하고 애틋하고 미안해하고 상처를 주고 다시 사과를 반복한 적이 없다. 아이라는 존재는 타인과는 아예 다른 그 무언가다. 나의 제2의 자아이기도 하고 평생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아이는 어른과는 달라서 마음이 깨끗하다. 보는 것, 먹는 것, 만지는 그 모든 것들에 감사해하고 신기해한다. 아주 작은 음식에 만족하고 잠시의 산바카라에 큰 기쁨을 누리는 존재다. 우리 모두 그런 존재였다. 세상을 알아갈수록 우리는 덜 유난스럽고 평범하게 살기 위해, 튀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아이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법을 자연스레 잊어버렸다.
당신이 이제 부모가 되었다면, 다시 아이의 눈높이로 돌아가야 한다. 소꿉놀이에도 진심으로 이입해야 하고 아이의 관심사에 동참해야 한다. 당신이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될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참 다양한 모습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마음이 아프고 그러면서 또 낫고 또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사랑의 형태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다. 죽을 때에 가장 미안해할 한 존재가 있다면 내가 낳은 자녀다. 그런 자녀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엄청난 바카라임이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원래 자유로운 존재였다. 이기적이고 독재적이고 뭐든 마음대로 하던 존재였다. 공복에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기도 하며 미성숙한 인격으로 상처를 여기저기 내며 살았다. 어느 날, 부모가 되는 순간, 그 모든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내 삶이 아이에게 본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모습을 보고 아이는 자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성장해 이 슬롯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슬롯가 더 아름답고 행복해지려면 가정에 단단히 뿌리내린 존재들이 모여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은 아이를 슬롯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 모든 것(일, 사람, 관계 등)에 감사하며 기꺼이 손을 내밀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다.
나는 아픈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무너졌다. 아이에게 소홀하고 잔인했던 지난날이 스쳐 지나가며 미안함이 몰아쳤다. 내 안의 속상함, 미안함, 자바카라감의 부정적 소용돌이가 새벽이 지나도록 출렁거렸다. 그리고 나는 다시 세워졌다. 더 나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열망, 더는 같은 상처를 반복하며 되돌려 주지 않겠다는 의지, 남편과 서로 존중하고 져주고 배려하는 모습을 본보기로 보이겠다는 결심 같은 것들이 내 안에 하나씩 세워졌다.
유독 슬픔이 가득했던 새벽이 지나고 아이의 열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밤 사이 내 노고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이에게 열이 떨어진 것만으로도 그 모든 게 보상이 되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무 소득이 없지만 한 사람을 키워내는데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다음 날, 자신이 피곤할 걸 알면서도 곁을 가만히 지키는 존재가 되었다. 마음 졸이며 아이가 낫기를 바라는 엄마가 되었다. 청승맞다는 걸 알지만 미안함과 소중함, 고마움에 작은 발을 몇 번을 만지는 어른이 되었다.
한 사람이 다 성장하기까지 너무도 많은 수고와 손길이 필요하다. 나도 그렇게 신세를 지고 이렇게 자랐는데 나 자신을 소홀히 여기고 아프게 할 때가 많다. 누군가도 그렇게 자라난 귀한 존재일 텐데 그 존귀함을 알아보지 못하고 상처되는 말을 함부로 쏟아낸 나였다. 사람이 그렇게 소중하고 존중받아 마땅한 보석이다. 이 땅에 많은 보석들이 자신의 가치를 알지 못한 채, 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것 같다. 우리는 이제는 알아야 한다. 아주 많은 눈물이 모여 이렇게 자라났다는 것을.
"아가야. 널 위해 쏟는 마음이 조금도 아깝지가 않다. 그저 네가 아프지 않기를,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며 늘 감사하기를 바랄 뿐이야. 만약 살아가면서 불행과 아픔이 있더라도 삶에 대한 마땅한 세금 같은 거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감당할 수 있었으면 해. 아픔의 시간이 지나면 한층 성숙해진 널 보게 될 거야. 고열에 시달리느라 고생한 너에게 정말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