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에 관하여
시아버님이 향년 64세로 돌아가셨다. He passed away. 어느 날 갑자기 소화가 안 된다고 하시더니, 그러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시더니, 곧 괜찮아질 거라고 하시더니, 소파에 앉아 있다 갑자기 픽 하고 쓰러지셨다. 응급차가 왔고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의사는 밤 10시 49분에 사망 선고를 내렸다.
아버지는 건강한 분이셨다. 늘 자신의 건강을 자부했고 먹는 걸 좋아하셨다. 호탕하셨고 손주, 손녀를 끔찍이 아끼셨다. 특히 당신의 친아들, 즉, 우리 남편을 지극히 사랑했다. 절대 병원 신세 지지 않고 산에 들어가 살다가 어느 날 조용히 죽길 바란다는 그의 소원은 비슷하게 이뤄진 것 같다. 남은 유족에게는 단 한 번의 인사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채, 말 그대로 '생이별'을 해야 했다.
우리 남편은 3일을 자지 못했다. 바닥에 등을 대고 눕는 것도, 페트병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는 것도 죄스럽게 느껴져 울기만 했다. 화장을 하고 아버지를 가족묘에 안치하고 나서 병이 나서 앓아누웠다. 그리고 다음 날, 겨우 몸을 일으켜 일터로 나가 일을 했다. 나는 가만히 지켜봤다.
'생'에 대해 생각했고,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애도'란 무엇인지, '위로'란 무엇인지 생각했다. 음울하고 암울하고 공허하고 미련하고 비참했다. 시아버지가 남긴 유품을 봤다. 새것이 많아도 쓰지 못하고 보관만 하다가 가버렸다. '삶'이란 결국 보관하다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누릴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내 물음표들을 다 소화하기도 전에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은 '공감'이었다. 나의 남편, 즉, 시아버지의 아들은 깊은 '애도' 중이었으므로 나는 그 슬픔에 '동참'해야만 했다. 그의 곁에는 나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아빠란 존재는 커다란 '산'이었으므로 그는 차가운 바람을 맞고 덜덜 떨어야 했다.
시아버지는 굉장히 엄격하고 고집스러운 분이셨다.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서 그냥 뭔가 주는 쪽을 택했다. 김밥이나 떡, 하다 못해 사탕 같은 것들을 대뜸 내밀었다. 그게 뭔지 몰랐지만 이제 와 보니 그 어쭙잖은 행동들이 모두 사랑의 한 형태였다. 우리는 평생을 사랑할 줄 모르다 그렇게 헤어지기도 한다. 어릴 때, 내 아버지가 그랬다. 친아버지는 사랑을 받고 표현해 본 적 없이 세상을 살다 그냥 갔다. 아무도 아빠의 죽음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나만 아프고 나만 슬픈 시간을 그냥 지나왔었다. 아빠들은 다 그런 걸까. 사랑이라는 게 너무 생소해서 변두리만 맴돌다가 마침표를 그냥 찍어버리는 걸까.
'공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남편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껏 시아버지와 함께한 모든 날들에 내가 동참한다. 그냥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며 추억을 회상한다. 남편이 아버지에 대해 오래도록 말하도록 시간을 내어준다. 그 이야기의 순간에 마치 내가 함께 있었던 것 마냥 동의하고 동감한다. 나는 사실 이해되지 않고 감동이 없더라도, 남편의 '애도' 의식에 온전히 함께한다. 남편의 아빠가 마치 내 친아빠인 것처럼, 시아버지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한다. 그게 애도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꼭 죽음이 아니어도, 한 사람의 슬픔에 공감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내 일이 아니면 차갑고 무심하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으로 타인의 상실을 바라본다. 하지만 죽음, 상실, 아픔은 모두에게 공동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타이밍만 다를 뿐, 삶에서 겪는 퀘스트다. 그 애도의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당사자는 그 기간을 주변의 도움으로 잘 건너가야 한다는 것이다. 상실은 내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 같은 아픔을 준다. 그 기간을 통해 사람은 '생'에 대해 배우고 성숙되어 간다.
나도 관계의 상실을 겪고 오랜 기간 우울의 시간을 건넌 적이 있다. 미숙한 사랑을 했기에 헤어짐이 너무 아팠던 지난 날의 내가 가엽게 느껴진다. 하지만 고통의 시간을 잘 건너온 지금의 나는 한층 성숙하고 멋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 지난 아픔과 상실을 이야기해도 더는 심장의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 감사와 또 미안함만 남아 있을 뿐이다. 나의 미숙했던 태도를 견뎌 준 그대에게 가슴 깊이 감사를 느낀다. 그대가 행복하고 잘 되기만을 기도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더는 상처를 돌려주지 않으며 '그때는 그것이 우리에게 최선이었다.'며 미소 짓는 내가 서있다.
상실, 애도, 죽음이라는 문턱 앞에서 우리는 서로 뭉쳐, 아픔을 같이 느껴야 한다. 그 기간이 조금 길어지더라도 그 아픔에 머무를 수 있다. 우리는 그러려고 태어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아파한다면 나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고 싶다. 나의 남편의 애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계속되어도 버틸 수 있다면, 언젠가는 보내줄 수만 있다면 괜찮다. 15년이 넘도록 친아빠를 잊지 못한 나처럼 말이다.
나는 당신이 그 어떤 상실과 아픔에도 결국엔 이겨내 날아오르기를,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 오늘도 그 꿈에 나를 놓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