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은 것만 당연하게 생각해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나면 응당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었던 것처럼 생각한다. 나쁜 우연이 닥치면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냐고 원망한다. 좋은 우연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나쁜 우연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순응한다면 성숙한 삶 아닐까. 꼭 성숙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땅을 살면서 우리 모두가 그런 마인드라면 조금은 편하지 않을까. 상대에게 아픔을 덜 주지 않을까. 우리가 서로에게 사랑하고 베풀고 미안해하며 감동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내게 일어난 일을 몇 가지 나열해 본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누가 내다 버린 쓰레기가 차 하부에 걸려 하부 바닥이 찌그러졌다. 이틀 정도 그냥 타고 다니다가 오늘 갑자기 하부에서 끌리는 소리가 나서 기아오토큐 수리점에 내방했다. 총 수리비 75만 원을 내야 한다. 당장 타고 다닐 차가 없어서 대충 테이핑 해서 집으로 귀가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부품이 도착하면 3시간 이상 맡겨서 수리해야 한다. 보험처리가 아예 되지 않는다. 이 일은 내게 나쁜 우연일까? 이렇게 생각해 본다.
사람이 다치지 않아서 감사하다. 전기차인데 배터리까지 손상이 가지 않아서 감사하다. 차를 잠시라도 테이핑 해서 타고 다닐 수 있어서 감사하다. 더 오래 끌지 않고 지금이라도 수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95만 원이 아니라 75만 원인 게 감사하다. 다른 전기차 차주는 출고 한 달 만에 배터리가 파손되어 2500만 원 수리비가 청구되어 그냥 차를 폐기했다고 한다. 나는 그에 비하면 정말 다행인 것이다.
우리는 주로 상향비교를 하는데 익숙하다. 이미 가진 것들은 당연하고 없는 것들은 불편하다. 없는 것들을 채우려고 애쓰다 보니 시간도 체력도 소진된다. 최근에 읽은 '초역 명상록-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진정한 풍요는 많은 소유에 있지 않고 오히려 욕망을 줄임으로써 찾을 수 있다.
픙요는 채워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워서 완성된다는 말이다. 진정한 행복은 외부에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채워지는 것이다. 타인과의 비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며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서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봐야 한다. 이전에는 화를 쉽게 내었다면 지금은 한두 번은 유하게 넘어갈 줄 아는 자신을 기특하게 여겨야 한다. 이전에는 타인에게 쉽게 휘둘리고 상처를 받았다면 지금은 거를 줄 아는 태도에 감탄해야 한다. 이전에는 음식 앞에 와르르 무너지던 내가 이제는 원하는 만큼만 섭취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성장되어 갈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행복은 세 가지 요소가 있으면 완성된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관계성), 내가 유능하다는 느낌(유능성),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다는 느낌(자율성)이다. 어디에도 외부의 조건은 없으며 모두 내면에 해당하는 요소다. 행복은 해외여행이나 승진, 연애, 돈, 지위, 직함 등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렇더라도 지속시간이 짧다.
쾌락과 행복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쾌락은 아주 짧고 강력하고 쉽게 소멸한다. 계속되는 자극이 필요해진다. 행복은 일시적이지 않고 집착이나 중독이 없으며 늘 좋은 기분을 유지해 준다. 또 타인에게 듣는 내용이 슬롯에 해를 주거나 불쾌한 내용이 아니며 감동이 되며 많은 이들에게 유익이 된다. 현대에는 쾌락의 요소들이 난자하다.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있고 피곤할 땐 그것을 쉽게 짚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내려놓지 못해 끊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결정하지 못하며 미루고 미룬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서 고민한다.
나는 늘 갑자기 결단을 할 때가 많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인스타그램을 삭제한 뒤로 지금까지 1년 이상을 하지 않는다.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상처를 주고받던 관계를 갑자기 용기 내 끊었다. 스크롤을 한없이 내리는 행위를 갑자기 끊었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다가 운동 중에 갑자기 글을 써야겠다는 욕망이 일어서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화를 내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이 생겨 욱하는 성질을 조금은 꺾었다. 강박이나 불안이 올라올 때, 표출하기보다는 심호흡을 하고 약을 찾아 먹었다. 아침 공복에 마시기 힘든 올리브유를 꾹 참고 삼켰다. 이 모든 일을 계획한 게 아니라 그냥 했다. 어느 날, 마음이 생겨서 바로 실행했다. 어떤 이유나 동기부여 없이 그냥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다는 욕구를 실현했다.
중요한 것은, 갑자기 결단한 행동이라도 결과는 내 바카라임이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수 있고 이전보다 더 쾌락을 추구하는 행동으로 발전할 위험성이 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나는 결단한다. 우리는 언젠가는 벼랑 끝에 선다. 유익하지 않은 행동들이 내 삶을 갉아먹는 걸 자신이 제일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끊어야 하고 내려놓아야 하고 흘려보내야 하고 지켜만 봐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선하고 아름다우며 누가 봐도 그럴 듯‘ 한 일 들이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나는 갑자기 학자금 120만 원을 일시불로 갚았다. 몇 년을 미루던 일이었는데 그냥 하고 싶었다. 날아갈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 우리는 어떤 결단을 하고 나서 잠시는 해방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또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는 내 바카라임이며 충분히 잘했으며 지속 가능할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강인하며 세상은 살만하다.
나쁜 우연이 우리 삶에 찾아와도 우리는 선한 삶의 방향을 지속해야 한다. 외부의 환경은 언제는 바람처럼 풍향을 바꿀 수 있지만 내면은 평온하고 잔잔할 것이다. 어떤 돌이 던져져도 깊숙하게 내려 보낼 것이다. 좋은 우연도 나쁜 우연도 결국에는 내 삶에 일어나야 했을 일이다. 순응하고 인정해야 내가 할 일을 찾을 수 있다. 나만 꼭 좋은 일만 있으란 법은 없다.
인생은 좋은 날과 덜 좋은 날의 연속이다.